[칼럼]<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겨울을 비추는 따사로운 유채화의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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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겨울을 비추는 따사로운 유채화의 감성
  • 김기범 영화 기자
  • 승인 2016.12.07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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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의 시네 리플릿>늦어도 늦지 않는 사랑이라는 한마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 기자) 

▲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어느덧 국내외의 판타지 영화와 드라마에서 무시 못 할 클리셰로 자리 잡고 있는 타임 슬립에는 여러 가지 특성이 공존한다. 

우선 주인공들은 우발적인 사건이나 사고가 발단이 되어 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을 거슬러 과거 또는 미래와 소통하는 신비한 경험을 겪는다. 

<빽 투 더 퓨쳐> (Back to the Future) 에서처럼 타임머신의 제어를 통한 의도적 시간여행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초상현상으로서, 이해하지 못할 일련의 과정에 부지불식간에 말려드는 주인공의 초반 시행착오는 한동안 관객들의 시선 위에서 일치점을 이룬다. 

한편으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할 때 발생하는 인과 관계가 논리적 납득과 설명으로 쉬이 와 닿지 않는, 어설픈 원리의 설정은 굳이 카오스 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관객이나 독자들의 동화에 방해의 여지를 남기는 피로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만큼 타임 슬립 장르의 치밀한 짜임새와 설득력의 유무는 흥행 요소를 규정짓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현재진행형인 이 장르의 존재 의의는 원인과 결과론에 입각한 대중적 스릴러로서의 자리매김만이 아니라, 바로 주인공처럼 지나간 우리의 발자취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매력에 있다. 

실제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자신의 지나간 인생이 남긴 오점이나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채 떠나보낸 주변인에 대한 애타는 회한 등은 이야기 속의 주인공에 대한 연민뿐만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심리적 카타르시스까지 동반한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의 기욤 뮈소가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는 기존의 타임 슬립과는 구분되는 감성적 터치를 표방한다. 

원작 소설이 갖고 있던 간결한 문체와 스피디한 플롯에 비해 적어도 한 박자 늦춰진 홍지영 감독의 섬세하고 예리한 필치는 기존의 판타지 장르가 분출했던 급박한 스릴을 최대한 탈피, 한 편의 유채화와 같은 멜로드라마의 구성에 힘을 쏟는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는 만들어진 시점을 근간으로 하기에 과거와 현재를 이루는 시간적 배경도 소설보다 9년이 늦어지지만, 대부분의 상황은 원작에 최대한 충실한 편이다. 

남녀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길게 늘여 놓았던 원작의 샌프란시스코와 올랜도는 시차와는 상관없는 서울과 부산으로 옮겨지고,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가 하는 캘리포니아의 포도 농장이 제주도의 한라봉 농장으로 바뀌는 한국식 변주는 어찌 보면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럽다. 

대개의 타임 슬립 영화나 시대극이 그렇듯, 과거에서 보여지는 80년대의 한국적 정서나 대중문화의 디테일에 상당 부분 신경 쓴 흔적도 역력하다. 

다만, 동성애자나 히피들과 같은 미국 내 비주류 문화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거리와 명소들을 내세움으로써 이질적이고도 이단적인 해방구가 자아냈던 현실과 초현실 사이의 애매한 분위기는 원작과는 달리 많이 희석된다. 

영화화 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역시 따져보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타임 슬립 장르처럼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에 있어 허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이 경우에는 애당초 원작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여타 비슷한 장르에 비한다면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는 원작과 영화 모두 그 논리적 구멍이 크다고 할 수 없으며, 분석적 시각으로 골똘하게 바라보는 관객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이야기에 대해 날카로운 파헤침을 피해갈 수 있는 촘촘한 구성이나 이를 뒷받침할 화려한 시각 효과 대신, 보는 이들의 감정의 정화를 이끌어내는 차분한 화면 구성이 돋보인다. 

사랑하는 이를 가슴에 담아 둔 채 현재의 사랑을 지키려는 김윤석과 역시 자신만의 또 다른 아픔을 숨기고 젊은 날의 사랑을 지키려는 변요한의 만남과 대립은 결국 다른 듯하면서도 같을 수밖에 없는 두 운명의 본질을 보여준다. 

30년의 시대 간극을 오가며 그 다른 듯하면서도 같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두 남자의 개성 어린 동병상련의 연기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하지만 주인공의 가장 친한 친구 역을 맡은 김상호와 안세하의 역할이 원작과는 달리 다소 비중이 줄어들며 희화화된 측면은 무시할 수 없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에서 남자 주인공과 연인 사이의 매개로서 보이지 않게 이야기를 추동하는 중추는 바로 친구이기 때문이다. 

대신 신인으로서 연기력을 상쇄하는 풋풋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지닌 채서진에 대한 감독의 선택은 감성적인 멜로에 보다 힘을 실으려는 의도에 부합된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에서‘당신’이란 단어는 비단 연인뿐만 아니라, 유일한 우정을 간직하는 소중한 친구,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가족 등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잊고 있었던, 아니 차마 사랑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 수많은 관계들을 다시 느끼고자 하는 절실한 뉘우침과 희생을 질박하면서도 동시에 세련되게 그려가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의 간결한 영상은 관객들의 마음에 세찬 겨울바람과 같은 큰 파동보다는 늦가을의 따사로운 햇살처럼 잔잔한 동요를 불러일으킬 만하다. 

12월 14일 개봉한다. 12세 이상 관람가. 

 

뱀의 발 : 원작 소설의 여주인공이 가진 이름으로 불쑥 나타난 한 여자가 담배를 쥔 모습이 부자연스럽다. 담배는 역시 꼭 끊어야할 만큼 몸에 해롭다.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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