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그늘③]전국 곳곳 테마사업…신격화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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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그늘③]전국 곳곳 테마사업…신격화 ‘여전’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12.24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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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서 영정 모시기도…'박정희는 살아있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지난 2015년 11월 13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하 박정희) 등굣길 걷기 체험 행사가 열렸다. 지역기관단체장과 도·시의원을 비롯해 숭모단체, 상모사곡동 새마을회, 구미초등학교 총동창회 관계자 등이 참석한 이 행사에는 박 전 대통령의 모교인 구미·정수초등학교 학생 260여 명도 함께 했다. 이들은 박정희 생가 앞에서 구미초등학교까지 6.3킬로미터를 2시간 넘게 걸어, 정장을 입은 박정희가 한 손을 들고 한 손은 뒷짐 진 모습의 동상이 서있는 구미초등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다음 날에는 경북 구미시 공단동에 위치한 ‘박정희소나무’에 탄신 98주년의 의미를 담아 막걸리 98리터를 주는 행사가 열렸다. 행사에 참여한 남유진 구미시장은 “어린 시절 이 소나무 아래에서 소를 데려와 풀을 뜯게 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는 마치 전설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이하 박근혜)이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로 추락했다. 그럼에도 박정희는 여전히 살아있다. 〈시사오늘〉이 지난 13일 찾은 TK(대구·경북)는 딸에 대한 실망과 분노, 안타까움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오묘하게 뒤섞인 모습이었다.

“박정희가 무슨 죄가 있노? 호부견자(虎父犬子) 아이가. 그런데 왜 여기 와서 불을 싹 질러놓고. 미친X이지 그게.” 

▲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박정희 생가 ⓒ 시사오늘

이날 박정희 생가는 일반인 출입이 통제돼 있었다. 지난 1일 벌어진 방화 사건으로 인해 내부가 모두 불에 탔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가 앞에 있는 ‘보릿고개 체험장’에는 박정희가 즐겨 먹었다는 막걸리와 두부를 즐기는 관광객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 중 한 관광객은 ‘호부견자(虎父犬子)’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하며 박정희와 박근혜를 떨어뜨려 놨다. 

▲ 생가 근처에 세워진 박정희 동상 ⓒ 시사오늘

생가에서 나와 300미터 정도를 걸어가면, 박정희의 동상이 있다.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대리석 위로 거대한 박정희 동상이 서 있다. 이 동상 뒤로는 ‘새마을노래’가 새겨진 비석이 있고, 실제로 새마을노래가 흘러나온다. 기자가 사진기 셔터를 연신 눌러대자, 옆을 지나가던 한 할아버지가 한 마디 던졌다.

“젊은 사람이 기특하네. 사람이 뿌리를 알아야 되는 기라. 저 앞에 한 번 서봐라. 내가 한 장 찍어줄게.” 

▲ 동상 뒤로는 총 사업비 792억 원이 들어가는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조성사업이 한창이다 ⓒ 시사오늘

동상 뒤로는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조성사업이 한창이다. 내년 예산으로만 47억2000만 원이 배정된 이 사업은 총 사업비 792억 원(총 공사비 620억 원, 부지매입비 172억 원)이 들어가는 매머드급 공사다. 면적은 25만949제곱미터(7만5912평), 건축면적 1만58제곱미터(3042평)에 달한다. 경상북도와 구미시는 이 공원을 ‘새마을운동을 한자리에서 보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종합테마공원’으로 꾸밀 예정이라고 밝혔다. 

▲ 청운각에는 박정희 육영수 영정이 모셔져 있다 ⓒ 시사오늘

구미시에서 자동차로 1시간여를 달려가면, 경북 문경시의 ‘청운각’에 닿을 수 있다. 청운각은 박정희가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문경초등학교에 부임해 1937년부터 1940년까지 4년간 하숙을 했던 곳이다. 겉보기에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건물이지만, 안쪽을 들여다보면 박정희와 육영수 여사(이하 육영수)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영정 앞에 놓인 방명록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남긴 ‘각하, 박근혜 대통령께 큰 힘을 주십시오’, ‘민족의 영웅, 깊이 잠드소서’ 등의 메시지로 가득하다. 

▲ 청운각에 있는 ‘박근혜 오동나무’는 봉황이 내려앉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 시사오늘

건물 뒤편에는 ‘박근혜 오동나무’가 있다. 오동나무 옆에 있는 팻말에는 ‘오동나무는 봉황이 내려앉는다는 상서로운 나무로, 박근혜 대통령과 연관 지어 국가 최고 권위자인 대통령을 상징하며 세인의 발길을 끌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하지만 청운각에 머물던 당시, 박정희는 아직 육영수와 만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 2015년 개관한 서울 신당동 박정희 가옥 ⓒ 시사오늘

박정희의 흔적은 서울에서도 찾을 수 있다. 2015년 개관한 서울 신당동 박정희 가옥은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계획했던 곳으로, 1958년부터 1961년까지 3년 3개월 동안 거주했던 집이다. 박정희 가옥에 들어가면 해설사가 박정희와 육영수의 연애스토리에서부터 1961년 5월 16일 오전까지의 사건을 생생히 설명해준다. 특히 박정희의 서재에는 5·16 당시 박정희가 입었던 군복과 쿠데타 소식을 전해주던 라디오도 전시돼 있다. 

▲ 5·16 당시 박정희가 입었던 군복 ⓒ 시사오늘

또 서울시 중구는 박정희 가옥 주변에 300억 원이 들어가는 역사문화공원 조성을 추진 중이다. 중구에서는 박정희 가옥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만큼, “장소적 특수성,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역사적 의미를 살려 주차장 지상에 만들어지는 공원을 한데 묶어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해 지역 주민들의 쾌적한 커뮤니티 중심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여전히 ‘박정희 신격화’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 시사오늘

서울 마포구에서는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이 위용을 자랑한다. ‘박 대통령은 편지를 많이 쓴 사람이다. 대통령에 있을 때도 그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는 기위의 고하나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꼭 답장을 써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박 대통령의 개인적 청렴성은 널리 알려져 있다. 러닝셔츠를 헤지도록 입고 허리띠도 너덜너덜 할 때까지 바꾸지 않았다. 체질적으로 호사스러운 것에 거부감을 느꼈던 듯하다’ 등의 문구 아래 전시된 물품들은 박정희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한다. 

▲ 서울 강북구 북한산의 도선사는 박정희 육영수 영정을 모시고 있다 ⓒ 시사오늘

서울시 강북구 북한산에 위치한 도선사에도 박정희가 살아 숨 쉰다. 도선사의 명부전을 들여다보면 박정희와 육영수의 영정이 봉안돼 있다. 육영수는 1960년대 도선사를 찾아 7일간 석불전에서 기도를 올리고 ‘대덕화’라는 법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희 사위 신동욱 박사가 펴낸 〈신이 된 대통령〉에 따르면, 박정희 영정을 모신 사찰은 전국에 42곳에 이른다. 대부분 박정희가 생전에 방문했거나, 박정희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어진 지도자’로 모시는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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