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의 딸에서 터키 대중음악 '파실'의 디바로…'칸단 에르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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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의 딸에서 터키 대중음악 '파실'의 디바로…'칸단 에르체틴'
  •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17.01.16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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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의 지구촌 음악산책(7)> 터키 대중 유목민족 음악 '파실'의 디바, '칸단 에르체틴' (Candan Erçetin)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선호 음악 칼럼니스트)

▲ 터키 대중음악 ‘파실’의 디바라고 불리는 '칸단 에르체틴'. ⓒ김선호 음악 칼럼니스트

역사가 만드는 문화

여행은 다리가 떨릴 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떨릴 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돈만 많다고 여행이 즐거운 것은 아니다. 나이가 너무 들어 걷지 못하거나 건강이 좋지 않아서 문화와 예술을 체득하러 다닐 수 없다면 그것은 즐거운 여행이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차라리 집에 누워서 연속극이나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같은 여행 프로그램이나 보는 게 낫다. 일단 건강해야 여행에 수반된 문화와 예술의 체험이 가능하다. 쉽게 말해서 뭐니 뭐니 해도 다리가 튼튼하고 봐야 여행이 재미있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파서 죽겠는데 무슨 얼어 죽을 문화고 예술이 흥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벽에 ‘무슨 무슨 칠’을 할 때까지 건강하고 오래 사시기를 기원한다. ‘무슨 무슨 칠’이 뭐냐고 묻지는 마시고...

어느 곳을 여행하든 현지의 음악을 경험하는 것은 그곳의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어떤 이는 야한 ‘밤문화’를 즐기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도 하는데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터키를 여행한다면 파실(Fasil)을 경험하는 것이 그 지름길이다. 하기는 파실도 ‘밤문화’의 일종이기는 하다. 그러면 파실은 무엇일까? 오늘날 이스탄불 젊은이들은 유럽음악과 다분히 미국적인 음악에 상당 부분 경도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유럽인들이 가장 쉽게 여행할 수 있는 유럽의 동쪽 끝이 터키라는 점에서 유럽 여행객들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 이로 인해 록과 재즈, 전자음악 등과 같은 장르의 요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전통성이 강하고 음악적 감성이 풍부한 터키음악은, 이스탄불 대중문화의 심장이며 단위세포이기도 한 메이하네(meyhane, tavern : 노천 식당 또는 연주가 가능한 까페)에서 터키 전통 대중음악 '파실'로 이어지고 있다. 파실의 연주에는 류트와 비슷하게 생긴 현악기 우드(중동 음악 어디에서나 빼놓을 수 없는 악기이다), 북의 일종인 다부카, 그리고 소프라노 클라리넷, 바이올린이 등장한다. 파실은 1950년대와 60년대에 유행하던 터키 사랑 노래와 적절히 믹스되어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때로는 광란에 가까운 아라베스크적인 북의 두드림이 섞이기도 한다. 여기에 사용된 악기가 다부카이다. 하지만 아라베스크라고해서 중동 지역의 음악은 아니다. 아라베스크는 터키의 통속적인 대중음악의 한 장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아무튼 메이하네에서 연주자는 물론 청중들까지 노래하고 춤추면서 하나가 되는 그런 음악이 곧 파실이라고 보면 뭐 그리 크게 틀리지 않는다.

메이하네의 Fasil

혹자는 터키 유목민족의 애환이 담겨 있는 음악으로, 포르투갈의 바다이야기 파두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코딱지만큼 맞는 이야기이다. 포르투갈 항구 주변의 카페에서 검은 숄을 두르고 애절하게 노래하는 파두와 달리, 파실은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어 노래하고 또 난리굿을 피우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다르기도 하다. 또 터키 집시 음악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파실의 가장 본질적인 원류는 인종적, 역사적인 이질성에서 비롯되었다. 그 이유는 파실을 부르는 장소인 메이하네의 기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메이하네는 오스만제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상적으로 이슬람권에서 음주는 불법이다. 이란의 경우 2015년 음주 3회 누범에게 사형을 집행한 일도 있다. 그러나 터키에서는 소수민족의 하나인 그리스계와 아르메니아계는 메이하네에서 음주가 부분적으로 허용되었고, 이슬람교도들도 비밀리에 이곳을 찾아 술을 마시곤 했다. 물론 터키의 국부로 추앙되며 정교분리를 실시하여 이슬람권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세속적인 국가를 만든 무스타파 카말 시대에는 음주가 용인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도 터키는 술과 관련된 일체의 광고가 금지되어 있고 국민의 87%가 술은 입에도 대지 못한다. 아무튼 이렇게 터키에서 음주 가무가 허용되는 영역의 대표적인 노래가 파실인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파실을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파실은 단체로 어울릴 때는 음악 자체가 때로 정신없기도 하지만, 가수가 혼자 부를 때에는 대단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우며 고혹적이다. 대중적이면서 다분히 통속적인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내용면에서도 잘 뜯어보면 한편의 철학적인 시에 가깝다. 파실을 대표하는 가수를 든다면 칸단 에르체틴(Candan Erçetin)이 있다. 그녀는 이른바 〈파실의 디바〉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이다.

▲ 칸단 에르체틴은 이민자의 딸로 갈라타사라이 스포츠구단의 부사장까지 올랐다. ⓒ김선호 음악 칼럼니스트

이민자의 딸

칸단 에르체틴은 터키 본토와는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불가리아 접경지역 키르클라렐리(Kırklareli)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현재 터키 원자력 발전소 예정부지라서 말이 많은 곳이다. 원자력은 어디를 가든 에너지의 핵심이자 소요의 근원이기도 하다. 1963년생인 그녀는 본래 터키 오리진은 아니고 이민자의 딸이다. 어머니는 코소보의 수도 프리슈티나(Pristina) 출신이며, 아버지 역시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Skopje)가 고향이다. 말하자면 칸단 에르체틴은 실제로 동유럽 출신인 셈이다.

하지만 터키 역사에 비추어보면 뭐 그렇게 별다른 나라에서 이민을 온 것도 아니다. BC 6세기 무렵에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 대제가 현재 터키 서쪽 끝 아나톨리아(이스탄불이 있는 반도)를 지배할 때 흑해 북쪽 스키타이족과 전투를 벌이던 길목이 불가리아, 코소보, 마케도니아, 우크라이나 지역이다. 기원 후 4세기부터 시작된 비잔틴제국은 15세기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터키, 코소보, 마케도니아를 지배해왔기 때문에 이 지역 간의 관계가 그렇게 낮선 곳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13세기 오구즈족(돌궐족의 한 집단) 일파인 카이족이 오스만 왕조를 세우게 되는데, 이 왕조는 14 - 15세기 아나톨리아의 투르크멘은 물론 남동부 유럽의 비잔틴 영토를 차지하고 발칸제국까지 정복했다. 이때부터 마케도니아는 터키 지배를 받아왔고 20세기 초에 와서야 독립하게 된다. 한편 코소보는 국민의 89%가 알바니아계이다. 발칸반도에서 유일하게 알바니아인들만이 이슬람교도들이기 때문에 발칸반도의 다른 국가들보다 아나톨리아의 터키와 종교적으로 더 친밀하다고 한다. 때문에 칸단 에스체틴의 부모가 터키로 이민온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그다지 인종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특별한 이민도 아닌 셈이다.

▲ 관광명소가 된 갈라타사라이 고등학교 정문과 갈라타사라이 스포츠 구단의 로고. ⓒ김선호 음악 칼럼니스트

명문고등학교의 영향

그녀는 갈라타사라이(Galatasaray) 공립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이 학교는 커리큘럼 자체가 프랑스어와 터키어 두 가지 언어로 학습하도록 짜여 있는 특이한 학교다. 때문에 그녀가 프랑스어 노래를 모국어처럼 잘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2003년도에 낸 음반을 들어보면, 프랑스의 과거 유명했던 샹송을 마치 프랑스 사람이 부르듯이 아주 멋들어지게 부른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바로 갈라타사라이다. 갈라타사라이는 터키의 커다란 하나의 집단이다. 이스탄불의 갈라타사라이 지역을 중심으로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과 TV 채널, 그리고 16개의 스포츠구단을 운영하는 종합 스포츠 클럽이다. 특히 갈라타사라이 축구단은 팬이 가장 많은 세계 10대 명문 구단에서 랭킹 7위를 기록할 정도이다. 2~3년 전 통계에 따르면 팬이 5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갈라타사라이를 번역하면 〈갈라타 궁전의 신사들〉이라는 뜻이다. 1905년 처음 고등학교 축구단으로 창단해서 1912년에 스포츠 구단으로 정식 승인을 얻었고, 지금까지 터키의 각종 리그에서 수없이 우승했다. 쉬페르 리그에서 19회 우승, 튀르키예쿠파스 14회 우승, 그리고 유럽 리그인 UEFA 슈퍼컵에서도 우승한 적이 있는 명문 중의 명문 구단이다. 그런데 필자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이 구단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약을 팔고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 이유는 2013년 6월 칸단 에르체틴이 갈라타사라이 스포츠 구단의 이사회에서 부사장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 2003년 발매한 칸단 에르체틴의 프랑스 샹송 음반 표지.ⓒ김선호 음악 칼럼니스트

철학적이며 서정적인 음악성

그러면 이제 그녀의 ‘Her스토리’를 좀 살펴보자. 그녀는 이스탄불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했다. 1991년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이스탄불 시립 음악학교를 졸업하는데 그곳에서는 클래식 오페라를 전공했다. 칸단은 1986년 우연찮게 노르웨이 베르겐(Bergen)에서 열린 유러비젼 송 콘테스트에 터키 대표로 참여하게 된다. 멤버 중에 보컬이었던 멤버 세덴 귀렐(Seden Gürel)이 건축학 시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할 수 없게 되는데, 이 때 칸단이 그 자리를 대신해서 라는 그룹의 한 멤버로 참가한다. 노래 제목은 “핼리(Halley)”였다. 핼리라는 제목은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고 그냥 사람이름이다. 칸단이 뒤늦게 이스탄불 시립음악학교를 가게된 것은 이 일이 있은 후 보다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으려 했던 때문이다.

1996년 1월 그녀는 트라키안을 테마로 하는 "Hazırım (I'm Ready)“ 라는 첫 앨범을 내게된다. 이 트라키안은 인도ㅡ유럽어족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유라시아 유목민을 의미한다. 이 음반은 그해 Alem FM으로부터 터키팝 음반 중 베스트 판매상을 받는다. 이듬해에는 "Çapkın (Womanizer)” 이라는 두 번째 음반을 내는데, 곡은 모두 직접 작곡한 민족 음악을 담고 있다. 이 음반에 수록된 "Yalan (Lie)“ 은 이스탄불FM 으로부터 최고 신청곡상을 수상한다.

이후 거의 매년 빠짐없이 음반을 내게 되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음반은 앞서 잠시 언급한 2003년 발매 프랑스 샹송 앨범이다. 이 앨범에는 ‘Parole’, ‘Ne me quitte pas’ 등과 같은 에디뜨 피아프 시대의 유명한 샹송을 직접 편곡해서 불어로 부른다. 이 음반의 부제는 "Candan chante hier pour aujourd'hui" 인데 해석하면 '칸단은 오늘을 위해 어제를 노래한다' 이다. 어찌 보면 조금은 철학적이고 또 사유적이며 고고학적(?)이다. 그런데 노래가 철학적 문학적 단어는 어울리는데 역사적 고고학적 이라고 하면 어째 좀 이상하다.

이밖에도 그녀는 거의 매년 음반을 내거나 영화음악에 참여 하거나 TV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지속적으로 활동해 왔고, 2013년에는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으로부터 문화 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끝으로, 칸단 에르체틴의 ‘Sensizik(바다)’라는 곡을 유튜브에서 찾아 꼭 들어보시라고 권하면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을 한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나의 상대성이론이 증명된다면 독일은 나를 독일인이라 할 것이고, 프랑스는 세계시민이라 할 것이다. 내 이론이 엉터리로 판명된다면 프랑스는 나를 독일인이라고 할 것이고, 독일은 내가 유대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지금 터키에서 누구도 카단 에르체틴을 이민자의 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녀는 터키의 딸이다.

▲ korkarim(두려움)이 수록된 2002년 발매 음반.ⓒ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김선호 / 現 시사오늘 음악 저널리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문학사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학석사
- 월드뮤직 에세이<지구촌 음악과 놀다> 2015
- 2번째 시집 <여행가방> 2016
- 시인으로 활동하며, 음악과 오디오관련 월간지에서 10여 년 간 칼럼을 써왔고 CBS라디오에서 해설을 진행해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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