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유진산 지도력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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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유진산 지도력은 대단하다”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09.02.1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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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구의 현대정치사 ④노병구, 진산계 일원 되다

신민당 중앙 상무위원으로 발탁

선거가 끝나고 지구당 조직을 마무리하면서 노병구도 부위원장직을 맡으라는 유진산 위원장의 지명으로 나는 김유근, 최종식, 상덕식 등 5명의 부위원장 대열에 끼게 되었다.

위원장이 워낙 거물이다 보니 위원장 댁에 드나드는 사람이 많기도 했지만, 전국에서 야당 대열에 서 있는 국회의원과 지구당위원장 그리고 우리나라의 거물급 정치인들은 거의 유진산 선생 댁으로 밀려들었다. 가끔 지구당 일로 위원장 댁을 찾아 영등포 갑구당 부위원장이라고 하면 저절로 그 집에 드나는 분들과 인사도 나누게 되고 또 친절하게 대해주어 그들에게서 정치권의 모든 것을 들으며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기왕에 다니던 이재형 선생 댁을 이범수 씨와 함께 종종 드나들었다. 1968년 5월 20일, 신민당 전당대회가 열려 유진오 박사가 총재가 되고 유진산 씨가 수석부총재, 이재형 씨와 정일형 씨가 부총재가 되었다.

당의 최고의결기관인 전당대회의 권한을 위임받은 중앙 상무위원회 위원은 국회의원과 지구당위원장 그리고 전당대회 의장단을 비롯한 주요당직자를 포함해 전국에서 300명뿐이었는데, 정치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상무위원이 되고 싶어하고 또 운동도 하는 것 같았다.

그날은 아침 일찍 사직동 이재형 선생 댁을 방문했는데, 이종린 비서와 장 비서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노형은 대단한 실력자이더군요. 어제 밤늦게 운경(이재형 씨의 호) 선생이 유진오 총재 댁에서 총재단회의를 하고 오셨는데, 대문을 들어 서면서 하늘을 보고 한참을 서 있더니 ‘진산이 노병구를 중앙상무위원에 추천해서 오늘 노병구가 중앙상무위원이 됐어. 부총재 한 사람이 고작 15명씩을 추천하는데, 진산의 추천자 명단에 그것도 중간쯤 들어 있었어’ 하면서 심히 놀라워하셨습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농담으로 들었다. 나는 중앙당 부장이나 차장도 한 적이 없는데 중앙상무위원이라니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색을 하며 “오늘 아침 신문에 벌써 났을 텐데 신문도 안 보고 다니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나는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로 나와 신문을 사보았는데, 발표된 중앙상무위원 명단에 분명히 노병구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다. 곧바로 상도동 유진산 위원장 댁으로 달려가니 거기에 와 있던 많은 선배들이 내 손을 잡으며 축하인사를 해주었다.
“뜻밖의 중책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유진산 위원장 앞에 나가 인사를 하자 위원장님은 담담히 말씀하셨다.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맡겨진 책임을 잘하느냐 하는 것이 더 문제인 거야. 이제부터야. 잘해봐.”

나는 많은 사람을 상대해봤지만, 누구에게 예정된 은혜를 베풀 때나 베풀고 난 뒤에는 미리 알려주거나 자랑삼아 자기의 공을 나타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진산 선생은 전혀 사전예고나 사후통고 없이 신문을 보고 찾아간 나에게 너무도 담담하게 말씀하셔서 그분의 인품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그런데 지구당 간부들 사이에서 문제가 생겼다. 당시 부위원장 중에는 내가 30대로 가장 나이도 어리고 또 정당경력도 일천해서 위원장이 노병구만 사랑하고 특별히 봐준다는 불평이 많이 나왔다. 이재형 선생은 나를 중앙당 부장이나 차장 정도로 추천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유진산 부총재가 먼저 중앙상무위원으로 추천했으니 나는 그날부터 유진산 계열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진산계가 됐고 이재형 선생과는 거리를 두게 되었다.

약국에 전화를 걸어 내가 중앙상무위원이 된 것을 이야기하며 집에 있는 신문을 찾아보라고 했더니 경옥도 몹시 기뻐하며 축하한다고 했다. 내가 무엇이 되고자 한 것도 아니고 또 그 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한 것도 아닌데 찾아온 이 결과를 나와 경옥은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들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자고 뜻을 모은 뒤 험난한 정당 생활을 시작했다. 

신민당 선전국 문화부장으로

이후 1969년 전당대회 후 나는 진산계의 추천을 받아 중앙당 선전국 문화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신민당 대변인 겸 선전국장은 송원영(宋元暎)이 맡았고 부국장에 조희철 씨가, 공보부장에 문순구 동지가, 문화부 차장에는 나와 거의 평생을 형제처럼 각별하게 지내는 장승훈 동지가 임명되었다.

그 당시는 당의 역할상 총무국이나 조직국이 중요하지만 정견발표회와 각종 장외집회가 대규모로 열릴 때가 많은 시절이어서 대국민 홍보와 유세를 담당하는 선전국은 당의 중요한 부서였다. 그중에서도 유세를 관장하는 문화부 주무부장으로서 나는 실로 엄청난 일을 맡게 되었다.

문화부는 각종 집회의 장소를 선정하고 연설회의 연사를 선정, 파견하며 연설회를 알리는 홍보요원 양성·선정·파견과 정식연설회가 시작되기 직전까지의 사전연설(아지프로)을 담당했기 때문에 당에 드나드는 많은 정치지망생들이 누구나 그 일을 맡고 싶어하고 탐내며 부러워했다. 많은 정치지망생들이 자기의 숨은 실력을 나타내기 위해 정치집회가 열릴 때마다 마이크를 잡아보려고 선전국 언저리를 돌며 기회를 보아 선전구호나 단 몇 분의 아지프로라도 하게 해달라고 직접 송원영 국장이나 조희철 부국장을 통해서 접근하기도 했으며, 주무부장인 나와 장승훈 차장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접근해올 정도로 비교적 화려한 자리였다.

그즈음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 제3별관에서 신민당 의원들을 배제한 채 공화당의원들만으로 3선개헌안을 밤중에 날치기로 통과시킨 뒤 국민투표를 공고했다. 신민당은 당체제를 3선개헌 반대 투쟁체제로 전환해 전국의 읍 ? 면 단위 이상 도시에서 당력을 총집결해 3선개헌 반대 강연회를 열게 되었다.
 
말 안듣는 의원들도 유진산 앞이면 순순히 복종

당의 총재를 비롯한 전 국회의원과 전직 의원, 원외위원장 전원이 한 조에 3명씩 조를 짜서 유세반을 편성해 전국 각지로 파견하게 되었는데, 서로 자기 연고지로 가고 싶어하기도 했지만 어느 조는 누구 때문에 싫고 어느 조에 누구와 한 조가 되게 편성해달라는 부탁을 만이 받게 되었다. 한다하는 국회의원들도 주무부서인 문화부 부장과 차장에게 필요 이상의 친절까지 베풀면서 부탁을 했다.

많은 정치지망생들이 개헌반대 강연회장 언저리를 맴돌며 마이크를 잡고 싶어했다. 그중에는 여자들도 많았는데, 김윤덕 의원과 정선식 여사가 연설을 아주 잘한다고 송원영 선전국장을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서 칭송을 들었다. 그 후 김윤덕 의원은 비례 국회의원을 거처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역임했다.

어느 날에는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이재형 부총재였다.
“노 부장, 내 유세반에 박병배 의원이 들어 있다는데, 그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줘요. 부탁해요.”

그래서 박 의원을 다른 조로 보내려고 조장들과 상의를 하면 아무도 박 의원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박 의원은 전 경찰국장으로 대전 출신의 국회의원이었는데, 개성이 강하고 고집이 세서 누구하고도 융합이 잘 안 되어 조직의 화합과 통솔이 어렵다고 모두 손을 내저었다.

그래서 이재형 부총재에게 그렇게 말했다.
“다른 조에서도 박 의원을 다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이 부총재님 조에 그냥 둘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재형 부총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 부장, 그러지 말고 박 의원을 유진산 수석부총재 조에 넣도록 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박병배 의원을 유진산 부총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그 조에 편입시키고 발표를 했다. 다음 날, 박병배 의원이 전화를 걸어 몹시 기분 나쁜 어조로 항의를 했다.

“노부장, 왜 하필이면 유진산 부총재 조에 나를 배정했어? 다른 조로 바꿔줘야 되겠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박 의원님, 죄송합니다. 전국 유세반 편성이 끝나서 벌써 결제가 다 났는데 어떻게 바꿉니까? 그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유진산 부총재는 결제를 하면서도 다른 말씀이 없었고, 또 박병배 의원도 아무 소리 못하고 조장인 진산 선생의 지시에 따라 순순히 복종하며 3선개헌 반대운동에 열심이었다고 수행한 사람들이 전했다. 사람들은 웃으며 불평 한마디 못하고 따라다닌 박병배 의원 이야기를 하면서 “역시 유진산 부총재의 지도력이 대단하다”고 놀라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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