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외교 ‘먹통’ ‘불통’…해법은
한-러 외교 ‘먹통’ ‘불통’…해법은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0.09.01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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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 수교 20주년, 외교지평을 넓혀 준 계기
천안함 사태·나로호 책임 공방 등 한-러 파열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답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세종연구소 지역연구실에 한 수석연구위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천안함 사태 등으로 인한 한-러 관계 악화와 관련된 인터뷰 요청에 이렇게 답변했다. 대(對)러 관계가 위기상황이고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인터뷰를 피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오는 9월 30일 수교 20주년을 맞는 한-러 양국은 최근 천안함 침몰 사건, 나로호 실패 책임 공방, 서캄차카 유전개발사업 사업 연장 거부 등으로 인해 양국간 외교 파열음이 장기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MB정부 출범 이후 이 대통령은 대(對)러 관계와 관련,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천명했지만 잇따른 악재로 한-러간 외교 커뮤니케이션은 불통 그 자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우리의 경우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와 미군정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1945년 8월15일 해방 당시부터 주권국가이자 공식적인 외교국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외교는 남북간 휴전 체제로 인해 기껏해야 미국이나 일본과 외교관계를 하는데 그치는 등 자의반 타의반 고립된 외교에 그쳤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서방 자유주의 국가와의 외교에만 치중했던 대한민국은 노태우정권의 북방외교 대원칙인 7·7 선언으로 인해 공산권과 수교를 하며 외교적 지평을 넓혔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주역인 고르바초프의 개방 및 등거리 외교정책과 노 정권의 북방 외교정책의 산물이었던 한-러 수교는 1990년 6월 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호텔 신관 23층 특별실에서 그렇게 역사적인 순간을 맞았다.

서독이 미·소간 긴장완화를 위해 1960년대 후반부터 추진한 동방정책과 유사했던 6공화국의 7·7 선언은 1989년 2월 헝가리 수교, 1990년 9월 한·러 수교, 1991년 9월 남북한 국제연합 동시가입, 1992년 8월 한·중 수교로 이어지며 외교의 새 패러다임을 구축했다.

고재남 외교안보연구원 연구부장은 한-러 수교 20년 의미와 관련, “일제식민지 및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인해 외교권을 상실했던 대한민국이 본격적인 외교 체제로 전환한 기반으로 작용했다”면서 “이를 통해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수립, 외교정상화, 남북한 교류로 이어지는 등 한마디로 말하면 외교지평을 넓혀 준 계기가 됐다”고 자평했다.

 
▲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붉은 광장.     © 뉴시스

수교 20년, 한-러 관계 ‘먹구름’


 20년 전 미지의 땅이자 수많은 청춘들을 매혹했던 혁명의 나라 러시아. 올해로 수교 20주년을 맞는 대(對)러 외교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지난 3월 26일 발생한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발생한 해군 2함대 사령부 소속 초계함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등은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두고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달았고 급기야 미국·영국·호주·스웨덴 등의 전문가 대표가 참여한 민군합동조사단이 원인분석에 나섰다.

민군 합동조사단의 윤덕용 공동단장은 5월 20일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 “해저에서 수거한 파편과 군이 확보한 비밀자료를 분석한 결과 천안함은 북한제 어뢰에 의한 외부 수중 폭발로 침몰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면서 “지난 15일 천안함 침몰 해역에서 쌍끌이 어선이 수거한 순회전 및 역회전 프로펠러, 추진모터와 조종 장치는 북한의 CHT-02D 어뢰의 설계도면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진보시민사회단체 등은 조사 결과에 의문점을 나타냈다. 특히 민군합동조사단에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러시아는 5월 31일 해군잠수함 등이 포함된 본국의 조사단을 파견, 합동조사단의 조사 자료와 관련 증거 등을 본 뒤 6월 7일 귀국했다.

러시아 조사단은 7월 26일 천안함 침몰 사고 원인이 북 중어뢰에 의한 폭발이 아닌 ‘기뢰 폭발’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 한-러 관계에 파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러시아 측이 조사 결과 보고서를 미국·중국 등에는 통보한 반면, 정작 한국 정부에는 통보하지 않아 한국이 러시아로부터 '왕따 외교'를 당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재문 전 한나라당 의원은 천안함 사태와 관련 “러시아와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중립을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북한을 곤란하게 하지 않겠다’, ‘한국을 유리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속내를 가지고 있었다”면서 “그걸 외교통상부가 감지하지 못했다”며 외교부의 대응에 불만을 나타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6월 10일 한국 우주발사체 나로호가 2차 발사에 실패한 뒤 한국과 러시아는 서로 책임 공방을 벌이며 신경전을 펼쳤다. 당초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교육과학기술부는 나로호가 러시아 측이 제공한 1단 로켓 분리 전에 폭발한 만큼 러시아가 3차 발사를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러시아 나로호 1단 발사체 엔진 개발회사 에네르고마시는 나로호 발사 책임 원인을 제어장치 결함으로 지목, 한국 측에 책임을 떠넘겼다. 이는 러시아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3차 발사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 지난 2004년 참여정부 시절 석유공사, SK에너지, 가스공사 등이 참여한 서캄차카 유전개발사업이 MB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3월 러시아 연방 지하자원청으로부터 탐사 라이선스 연장 신청을 기각 당했다.이 대통령은 2008년 7월 G8 확대정상회의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캄차카네프트가즈(KNG)사업 연장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당초 로즈네프트와 석유공사 등 7개 한국기업으로 구성된 한국컨소시엄은 6대 4의 지분으로 캄차카네프트가즈(KNG)라는 공동 운영사를 세웠고 계약기간이 2008년 7월 말 종료됨에 따라 러시아 정부에 라이선스 연장을 신청해 놓은 상태였다. 한 외교전문가는 “이 대통령은 러시아 공식 방문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서캄차카사업의 탐사 라이선스 연장을 요청했지만 결국 사업 연장을 거부당했다”며 “이는 외교적 실례에 해당하고 한-러 외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 이명박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오른쪽).     © 뉴시스

대(對)러 관계, 문제 ‘있다’ vs ‘없다’


 6공화국 출범 이후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 평화 안정 유지와 동구권 국가들과의 외교 정상화에 방점을 찍었던 7·7선언. 사회주의라는 이념과 정략의 틀을 넘어선 지금, 당시 한-러 수교 당사자들은 대(對)러시아 외교와 관련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정재문 전 한나라당 의원은 “요새 윈-윈 외교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한-러 외교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며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1989년 소련의 문을 두드렸을 때 소련은 경제적인 교류를, 우리는 정치·경제적인 교류를 원했는데 당시 한-러간 차관문제가 발생했다.

 우리 측이 러시아에 30억 달러의 차관을 주기로 했는데 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반대여론 때문에 그 절반만 빌려줬다. 그것도 5억 달러는 물자지원이었는데 러시아는 그때부터 기분이 상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간 우리는 무역통상 등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러시아를 봤기 때문에 그쪽에서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 “향후 경제적 교류를 넘어 문화·교육의 교류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반면 고재남 외교안보연구원 연구부장은 “지난 20년이라는 장기간 동안 많은 성과를 냈기 때문에 한-러 외교가 정체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 “국가간 관계는 지속가능한 외교를 지향해야지 단기간 잠깐 상황이 악화됐다는 점 하나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한-러 양국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통해 양국 정상간 한반도, 동북아 지역 및 세계정세 전반에 대한 의견 교환과 민간 부문의 여러 수준에서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기로 했다”며 “오는 9월 30일 한-러 수교 20주년을 맞아 민간차원에서 각종 문화행사를 여는 등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러시아의 볼쇼이 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이 9월 25일부터 30일까지 한·러 수교 20주년 기념으로 <라이몬다>를 공동 진행하고 내달 25~26일에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러시아가 낳은 국보급 발레리나 마야 프리셋츠카야가 설립한 국립 러시안 클래식 발레단이 내한 공연을 갖는다. 

또 오는 10월에는 한-러가 공동 제작한 로미오와 줄리엣, 한국 영화제, 양국이 공동 제작한 연극, 한국음식문화 홍보 행사 등이 예정돼 있는 등 본격적인 한-러간 문화 교류의 물꼬를 트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러 양국의 외교성과를 위해선 남북간 관계 개선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재남 외교안보연구원 연구부장은 “MB정부 들어 러시아 관련 공사 수주 사업의 중단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경색된 대북관계”라며 “한-러 관계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단순히 남과 북의 단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좁게는 동아시아, 넓게는 전 세계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영토조항)와 4조(평화통일조항)에서 보듯 남과 북은 민족과 적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지닌 특수한 관계 때문이었을까.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제창한 ‘비핵·개방3000’이나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의 신(新)평화구상, 그랜드 바겐 등은 일관되게 선(先)핵 폐기, 후(後) 대북지원에 방점을 둔 대북정책이었다.

박정은 참여연대 평화지원팀 간사는 선(先)핵 폐기와 관련, “선핵폐기론을 하나의 인센티브로 생각하는 것은 이 대통령의 신념 같은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지원이 없으면 북한은 몰락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북한을 굴복시키려 한다”고 꼬집었다.

또 대북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에게 먼저 핵 폐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핵 폐기를 위한 남북관계가 돼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는 MB의 대북정책이 지난 10년간의 대북정책을 실패로 규정하고 얻으려고 하는, 즉 반사적 이익을 얻은 구호성 원칙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러시아는 물론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외교의 단선적 외교 방식에서 벗어나 촉매외교·탈근대외교를 지향할 수 있을까. 한-러 수교 20년을 맞아 MB정부의 해법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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