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읍소로 국민을 속이고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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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읍소로 국민을 속이고 당선됐다˝
  • 노병구 전 민주동지회장
  • 승인 2017.03.2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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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구의 가짜보수비판(6)>박정희에 대한 오해와 진실①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노병구 전 민주동지회장)

앞서 잠깐 언급했다시피, 특히 박정희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은 오해가 많다. 긴 독재기간 때문일까. 그 진실을 알고서도 외면하는 이들도 있다. 혹은 공(功)이 있다하여 크나큰 과(過)를 덮어보려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들에게 이 노 아무개가 마지막으로 묻는다. 진정으로 양심에 거리끼는 것은 없는가. 혹은 몰랐다면 지금부터 다시 한 번 그 진실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돌이켜보기 바란다. 죽는 순간까지 박정희에 눈 먼 맹인(盲人)과도 같은 역사의 백치(白癡)로 남을 것인지, 힘들게 일한 만큼 사회에 한 손을 보탰던 위대한 필부(匹夫)로 눈 감을 것인지가 달렸다.

박정희는 해방 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고, 군복을 벗었다. 경제적으로 살길이 막막했는지 백선엽의 주선으로 군무원으로 채용됐다. 문관으로 군대에서 일하도록 길을 터줬지만 봉급을 줄 예산이 없었다. 백선엽은 작전에 쓰라고 배정된 기밀비의 일부를 떼어주고, 미군 고문관을 통하여 얻은 C-레이션(미군전투식량)을 처분하여 그 돈으로 박정희의 생활비를 주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2년이 못가서 6·25가 터졌다. 박정희는 전란 중에 문관에서 현역으로 복귀 했는데, 그래서인지 6·25전쟁 때에도 무슨 큰 무공을 세운 것도 없는 것 같다. 있었다면 대대적인 선전에 이용했을 것이다. 문득 반추해 보면 박정희는 이게 북한과 다를 게 무언가 싶다.

박정희는 태어나서 6·25전쟁이 끝날 때까지, 진정성을 가지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희생 하거나, 공을 세우거나, 봉사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신 휴전 후 군사쿠테타를 꿈꾸며 자유당정권 말기부터 군사반란을 구체화 하려고 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쿠테타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5·16 쿠테타(군사반란)로 합법적으로 세워진 민주당 정권을, 국가안보를 담당한 성스러운 군인이라는 신분과 합법적으로 무기를 다루는 직책을 악용했다. 총·칼을 들이대고 강도처럼 국민에게 겁을 주고, 법적으로 국군통수권자와 이어지는 직계 상사들을 총·칼로 협박하고 쫓아내 하극상(下剋上)으로 대통령격인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자리를 차고 앉았다.

시작이 무법‧불법이었는데 이후엔 더욱 무력에 의한 강권통치로 툭하면 비상조치와 긴급조치, 위술령 계엄령으로 국민을 협박하고, 도처에 고문취조실을 만들어 놓고 국민을 괴롭혔다.

그나마도 쿠테타 후에 자신이 주관하여 만든 헌법상 정해놓은 대통령의 임기가 도래하자 이승만의 실패를 번연히 알면서도, 3선 개헌을 하고 3선 대통령 선거 때 장충단 마지막 선거 유세에서 “이번선거를 마지막으로 다시는 국민 여러분에게 표를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하고, 읍소해 국민을 속이고 당선됐다.<계속>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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