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維新)보다 5·16쿠데타가 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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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維新)보다 5·16쿠데타가 더 문제다˝
  • 노병구 전 민주동지회장
  • 승인 2017.04.0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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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구의 가짜보수비판(8)>박정희에 대한 오해와 진실③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노병구 전 민주동지회장)

박정희는 통일에 대한 생각도 의지도 없으면서, 대통령 직선제를 피하고 대통령 자리를 그냥 차고  앉는선택이 북한의 김일성을 이용하는 것 최선의 선택이라고 내세웠다.

박정희와 김일성이 서로 내밀한 무엇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마치 두 사람간 어떤 일이 있었던것 처럼 7·4남북공동성명 발표 후 박정희가 먼저, 선거도 없이 영구히 대통령 자리를 차고 앉고 다음은 이미 해오던 민주정치를 완전히 뒤엎더니 제왕적 독재권력을 정당화 하는 악법인 유신헌법(維新憲法)을 만든 것이다.

김일성도 박정희의 유신헌법 제정 두어달 후에 자신의 아들에게, 또 그 아들에게 대를 이어 자연 스럽게 독재 권력을 세습하는 입법조치를 완료 했다고 하니 남쪽이나, 북쪽이나, 타락한 독재자들에 의해서 상쳐 투성이의 나라로 전락한 셈이다. 우연 치고는 교감마저 느껴지지 않는가.

 박정희는 왜 그랬을까.

원인은 5·16쿠테타 였다. 쿠테타(반란)는 명백한 중죄인 반란죄(叛亂罪)이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이 박정희의 잘못을 이야기 할때 유신(維新)만이 문제인것 처럼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아니다. 5·16이 더 문제다.
     
모처럼 이루어진 합법정권인 민주당 정권을, 출범한지 단지 9개월 밖에 안됐는데, 무능하고 부정부패한 정권이라고 구실을 만들어 붙여 무너뜨렸다. 이어 군정 2년 동안 그들끼리 권력 다툼 이권 다툼에 몰입하더니, 화폐개혁(貨幣改革)의 실패와 자유당 정권과 민주당 정권이 한국은행에 축적해 놓았던 엄청난 민족자본(民族資本) 2억7000만 달러를 철 없이 날뛰며 일을 저질러 거의 소진했다.

경제질서를 어지럽힌 4大의혹사건(疑惑事件)-(증권파동(證券波動), 새나라자동차, 빠찡꼬, 워커힐사건-등 유례없는 부정부패의 극을 달리다가 국민에게 약속한 기한이 다가오자 그들은 초조했다.

박정희는 혁명공약대로 원대복귀를 하겠다면서, 정치인들에게 9개항의 요구조건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였다. 그들이 물러난 후 다음 정권에서 '5·16쿠테타(반란)의 정당성(正當性)을 인정한다''그동안 그들이 저지른 부정부패(不正腐敗)에 대해 정치보복(政治報復)을 하지않겠다'는 약속이다. 이를 국민앞에서 선서를 하면 원대로 복귀 하겠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박정희와 국가재전최고회의 위원 전원과 당시 내각 각료 전원과 군 수뇌인 합참의장 3군 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그리고 주요 정치인 모두가 참석하여 박정희가 내건 9개항을 받아드리고 지키겠다고 서명하고, 거창한 서약식을 국민 앞에 엄숙하게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 놓고도 박정희는 불안했다. 그리고 정치권의 그 약속을 믿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얼마 후 '군정 2년으로는 時間이 부족하여 혁명공약을 지킬수 없었다'면서 느닷없이 군정을 4년간 더 연장하겠다고, 그 가·부를 국민투표에 붙이겠다고 들고 나왔다.

그 철없는 번의에 대하여 정치권과 국민들이 난리가 났다. 그중에도 미국의 반대가 극심했는데 이것이 결정타였다. 범죄행위로 집권하여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수가 없었던 박정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금의 권좌를 지킬 궁리를 한다.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구차한 변명을 늘어 놓으며, 싫지만 할수 없이 민정에 참가 하기로 방침을 세웠다고 말한다. 전역식에서 '나같은 불행한 군인이 다시는 나와서는 안된다'고 눈물을 떨구면서 예편했다.<계속>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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