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목소리] 건설 현장채용직에게 직접 들은 '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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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목소리] 건설 현장채용직에게 직접 들은 '哀歌'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7.04.11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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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채직 노동자 3人의 이야기…겹겹이 막힌 벽에 암울한 미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경기 불황과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건설업계에도 질 낮은 일자리가 확산되는 눈치다. 대표적인 게 현장채용직(현채직)이다. 현장계약직, 현장근로직, 프로젝트 전문직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현채직은 건설업체가 개별 현장단위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계약직 비정규직을 뜻한다.

구체적인 통계는 찾기 어렵지만 이들이 국내 건설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일례로 지난해 대우건설의 전체 비정규직(기간제 근로자) 2029명 중 500여 명이 현채직으로 집계됐다. 롯데건설은 전체 비정규직 803명 가운데 700여 명이 현채직이다. 적게는 20%, 많게는 80% 이상이 현채직인 셈이다.

그러나 이처럼 건설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현채직은 여느 비정규직과 마찬가지로 항상 고용불안에 노출돼 있다. 한 현장이 마무리되면 계약이 연장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인 데다, 겨우 재계약을 체결해도 정규직 전환과 승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소속 현채직 역시 마찬가지다.

<시사오늘>은 지난 주말과 11일에 걸쳐 여러 건설 현장채용직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애환을 듣고, 그것을 '현채직 노동자 3명의 이야기'로 재구성해 봤다. 정치권과 건설업계가 그들의 슬픈 노래(哀歌)에 귀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준수 48세 남성, 일자리를 잃고 헤매다

▲ 김준수 씨는 "현채직 출신이라는 벽이 높았던 것 같아요. '우리는 메이저, 너는 마이너' 이런 느낌이랄까"라고 토로했다. 사진은 글과 무관 ⓒ pixabay

김준수(가명) 씨의 지갑에는 아직도 '○○건설 현장소장'이라는 명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기자와 소주잔을 부딪친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이름이 적힌 그 명함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더니 이내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김 씨는 올해 초 20여 년 넘게 누비던 건설현장을 강제로 떠나야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잘나가는 대형 건설사에서 한 수도권 지역 건설현장의 소장으로 근무했던 그였지만 '나이 먹은 현재직'이라는 본사 측 직원의 말에 20년의 세월은 허송세월이 돼 버렸다.

"그나마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어요.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능력을 인정받아서 어렵지 않게 계약을 연장했어요. 한 현장이 끝나면 바로 다른 현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죠.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소모품처럼 현장에서 사라졌거든요. 그래도 건축기사 자격증 하나로 꽤 오래 버텼다는 생각이 드네요."

젊은 시절 김 씨가 처음 맡은 일은 '작업 보조'였다. 이후 서울 강남, 부산, 그리고 바다 건너 중동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건설현장이 없었다고 한다. 김 씨가 이토록 땀을 흘린 이유는 오직 하나 '정규직 전환'이었다.

"누구나 다 아는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다들 축하를 해 줬었죠. 지방대 출신이니까 개천에서 용났다고, 열심히 하면 정식으로 채용해 줄 거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끝내 정규직에는 들어갈 수가 없더라고요. 현채직 출신이라는 벽이 높았던 것 같아요. '우리는 메이저, 너는 마이너' 이런 느낌이랄까."

순식간에 실업자가 된 김 씨는 최근 재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현채직이라는 벽과 나이라는 벽은 그에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버겁다고 한다.

"일단 일거리가 너무 없어요.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사람을 많이 안 뽑더라고요. 눈을 낮춰서 지역 건설사에 지원해 면접을 몇 번 보기도 했죠. 경력은 괜찮은데 나이가 걸린다는 답을 들었어요. 정규직들은 내 나이에도 이직 잘 하던데, 나한테는 쉽지 않네요."

박상원 32세 남성, 취업했지만 경력을 잃다

▲ 박상원 씨는 "현채직으로 일하면서 돈은 벌고 있는데 경력을 잃었어요. 내 미래도 잃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사진은 글과 무관 ⓒ pixabay

박성원(가명) 씨는 본지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스마트폰을 쉴 새 없이 만지작거렸다. 박 씨는 채용공고를 살피고 있었다. 기자의 시선이 느껴진 걸까, 그는 짐짓 미소를 지으며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라서 그렇다"며 양해를 구했다.

서울 내 손꼽히는 대학 건축학과 출신 박 씨의 직업은 원래 건설 현채직이 아니라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었다. 벌이는 괜찮았지만 전공을 살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그는 3년 전 한 대형 건설사에 현채직에 지원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직장을 옮기려면 서른 살이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왜 내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할 수만 있다면 돌아가고 싶어요. 현채직으로 들어오니까 내 학력이며, 경력이 다 헛것이 돼 버렸어요. 현장에 가면 현채직이라고 무시를 당하기 일쑤고, 다른 회사에 정규직 지원을 하면 현채직이라는 경력이 발목을 잡아요. 수렁에 빠진 것 같아요."

월급 약 250만 원에 후한 상여금까지, 건설 현채직 벌이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정규직과의 연봉 차이가 커졌다는 게 박 씨의 설명이다. 일은 자신이 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연봉은 본사 직원이 더 받는 현실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리고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월급을 올려준다고 했어요. 복지 혜택도 일반 정규직과 같은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었죠. 그런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정규직 전환 기회를 주겠다는 것도 별 거 없었어요. 서류는 통과시켜주겠다는 정도였어요. 다른 기업에 경력직으로 입사 지원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박 씨가 전공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대학 졸업 전후 따놨던 수많은 건설 관련 자격증 때문이었다. 몇몇 대형 건설사의 경우 신입사원은 무조건 해외지사로 보낸다는 말을 듣고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현채직에 입문한 순간부터 그의 자격증은 자격증이 아니었다.

"요즘 취업이 어려우니까 대학 갓 졸업한 사람들이 현채직을 많이 찾는다더라고요. 절대 들어오면 안 된다고 말리고 싶습니다. 경력이며, 자격증이며 다 '똥'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급해 하지 말고 좀 더 공부하고 기회를 찾아서 정규직으로 가는 게 최고입니다. 나를 보세요. 돈은 벌고 있는데 경력을 잃었어요. 내 미래도 잃은 것 같아요."

이원희 35세 여성, 용꼬리 대신 뱀머리를 택하다

▲ 이원희 씨는 "2군, 3군이라 불리는 회사지만 뿌듯합니다. 용꼬리 대신 뱀머리를 택한 셈이죠"라고 말했다. 사진은 글과 무관 ⓒ 셔터스톡

이원희(가명) 씨는 한 지역 건설업체 본사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노동자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씨의 신분은 대형 건설사 소속 현채직이었다. 그는 용의 꼬리 대신 뱀의 머리가 되는 길을 택했다. 현채직의 벽은 유리천장의 벽보다 높았다는 이유에서다.

"건설현장 체질이 내 적성이라고 생각했어요. 대학을 막 졸업하고는 대형 건설사에 입사 지원을 많이 했어요. 면접도 많이 봤는데 번번이 낙방했었죠. 저보다 먼저 건설사 취업에 성공한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너 여자라서 떨어졌다'고.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지만 제가 지원한 업체에서 인사 담당을 맡은 선배의 말이니까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일단 취업이라도 하자고 마음먹고 들어간 게 현채직이었어요."

건설업계에 만연한 유리천장에 굴복하고 국내 굴지의 대형 건설사 소속 현채직으로 취직했지만 이 씨의 앞에는 더 큰 벽이 존재했다. 단지 현채직이라는 이유로 그는 현장에서 온갖 차별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경험한 것이다. 더욱이 유리천장은 똑같았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뭘 제안하면 현채직은 시키는 일이나 똑바로 하라는 대답이 돌아왔죠. 현장 잡부도 그런 취급은 안 받았을 겁니다. 급기야 제가 맡은 일이랑 전혀 연관이 없는 분양업무를 도우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어요. 따졌더니 여자니까 그런 거 잘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정규직 전환은 되겠지 하는 생각에 4년 정도 버텼어요.

결정적으로 이직을 결심한 건 저랑 비슷한 시기에 현채직으로 들어온 남성 직원이 정규직 전환에 성공한 걸 보고서였어요. 평가가 저보다 낮은 사람이었는데 제가 아닌 그 사람이 정규직이 되니까 더 이상 참을 수 없더라고요."

이후 이 씨는 현재 다니고 있는 지역 건설업체 안전 부문 정규직에 지원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연봉도 대형 건설사 현채직 수준이지만 그는 만족스러워 보였다.

"보통 우리들끼리 2군, 3군이라고 부르는 회사지만 제가 들어오고 크게 성장하는 걸 보니까 뿌듯합니다. 제 능력도 인정받고 있고요. 용꼬리 대신 뱀머리를 택한 셈이죠."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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