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기수론은 젖비린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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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기수론은 젖비린내가 난다”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09.03.05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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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유진산 선생의 신민당총재 취임과 김영삼 의원의 40대 기수론

유진산, 40대 기수론은 ‘구상유취(口尙乳臭)’다.
 
1970년 2월 신민당 전당대회가 열려 유진산, 이재형, 정일형 세 분이 당수경쟁에 나서 2차 투표에서 유진산 327표, 이재형 276으로 유진산 선생이 총재로 선출되었다. 따라서 모든 당직이 개편될 때 나는 송원영 선전국장 밑의 문화부장에서 선임서열인 공보부장으로 바뀌어 임명되었다.

당시 공보부장은 문순구 동지가 맡고 있었는데, 나도 문순구 동지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서열이 바뀌어 발표되었다. 그러자 문 동지는 나를 만나 씩씩거리면서 화를 냈다.

“어떤 놈이 같은 선전국에 있으면서 사전에 아무 말도 없이 이따위 짓을 한단 말이고?”
하지만 나도 모르는 일이어서 그를 위로했다.
“문 부장,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나도 모르는 일이야. 무슨 큰 자리라고 내가 치사하게 운동을 하거나 작용을 했겠나? 전혀 그런 일 없으니 오해 없기를 바라네.”

나는 당권을 잡은 진산계였고 문 부장은 정일형계였는데, 아마도 계보에 따라 넣고 빼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 본의 아니게 상처를 입은 문 부장을 위로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것이 바로 주류와 비주류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1969년 말경, 1971년에 치러질 제7대 대통령선거에 나설 신민당 대통령후보 지명 전당대회에 경선후보로 나서겠다며 40대 초반의 김영삼 의원이 40대 기수론을 선언했다. 김영삼 의원에 이러서 김대중, 이철승 의원도 후보경선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당수가 된 유진산 선생은 40대 기수론에 대해 의견을 묻는 기자들에게 ‘구상유취(口尙乳臭)’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풀이하면 입에서 젖비린내가 난다는 뜻이다. 당내의 많은 노장층은 거의 유 총재와 생각이 같았지만, 젊은 층이나 일반인들은 한편 신선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40대 기수론이 신선감은 있지만 남북이 갈려 있고 삼천만이 넘는 국민의 생존이 걸린 대통령은 철학과 경륜을 겸비한 노련함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구에서는 유진산 선생을 위원장으로 모시는 부위원장으로서, 중앙당에서는 선전국에서 중요한 핵심 부장자리를 지키면서 유진산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세상에서 떠들어대는 진산 선행에 대한 소문이 그분의 인격과는 너무도 상반된 어처구니없는 악선전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전남 광주에서 서울까지 삼선개헌 반대 천리 행군에 참가한 정성태 의원과 그 일행이 안양을 거쳐 시흥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해서 당시 진산 선생의 비서실장이었던 신동준(申東準) 씨와 함께 박카스 몇 상자를 가지고 정성태 의원 일행을 환영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막 한강 다리를 건널 때였다. 라디오에서 “정성태 의원 일행이 시흥을 지날 무렵 무장경찰에게 행군을 저지당하고 일행은 그길로 경찰에 연행 되었다”는 뉴스가 나와 할 수 없이 방향을 바꾸어 몸살이 나서 며칠째 요양 중인 진산 선생을 문병하기 위해 상도동 자택을 찾았다.
 
유진산, “정치인은 변명하지 말고, 자랑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한여름날, 진산 선생은 거처하는 방 창 앞에 있는 큰 정자나무 그늘 밑의 눕기도 하고 앉을 수도 있는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계시다가 우리를 반갑게 맞으셨다. 진산 선생을 만나 모신 지 몇 년이 되었지만 처음으로 조용하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우리는 찾아온 경위를 말씀드리고 병문안을 했다. 그때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선생님에 대한 언론과 세론이 왜곡된 것을 말씀드리며 언짢아하는 나를 보고 진산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셨다.

“병구야, 정치인은 투철한 자기철학에 입각해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그 책임도 당당하게 켜야 하는 거야. 대중에 대한 인기전술이나 사술로서 정치를 하면 당장에는 박수도 받고 인기를 누릴 수는 있어도 결코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했다고 할 수는 없어. 국민은 오늘 속는 것 같지만 역사는 결코 속지를 않는 거야. 오늘 나는 투철한 나의 정치관에 입각해 심사숙고해서 일하는 것이고, 그 책임은 10년, 20년, 아니 멀게는 100년 후 역사가의 평가를 맡기고, 그 역사적 책임을 지고 어떤 비난도 칭찬도 냉혹하게 받아드릴 각오로 하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거야.

오늘 내가 한 정치행위에 대한 곡해나 오해를 예상하고 소나기 사이로 비를 피해 빠져나가듯 약게 처신하려고 하면 아무 일도 못할 뿐 아니라 설사 어떤 일을 했다고 해도 일관성도 없고 더구나 역사발전에는 해를 가져오거나 아무런 반전도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거지. 내가 오늘 한일에 대해서는 먼 훗날 역사가의 평가에 맡기고, 나는 지금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하는 거야. 신문과 방송이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어떤 논평을, 또 어떤 비평을 해도 나는 그것을 변명하거나 자랑하거나 불평할 생각이 없어. ‘변명하지 말라, 자랑하지 말라, 불평하지 말라!’ 이것을 명심해야 해.”

나는 지난날 『삼국지(三國志)』나 일본의 근대화를 이룩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전기 『대망(大望)』을 읽었다. 『삼국지』에서는 구체적으로 그런 말은 없고 등장하는 거인들의 언행에서 그런 뜻을 읽을 수 있었으며, 특히 『대망』에서는 이에야스를 가르치는 승려 스승 ‘즈이후’의 가르침 속에서 감명을 받았다. 즈이후는 이에야스에게 “너는 지도자로서 ①자랑하지 말라, ②변명하지 말라, ③불평하지 말라, 이 세 가지를 명심해서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그 세 가지 교훈을 묵묵히 실천해가는 거인을 처음으로 현실에서 만났던 것이다. 변명과 자랑과 불평을 입에 달고 다니며 거물인 양 거드름을 피우는 정치인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 세 가지 교훈을 묵묵히 실천하는 거목을 보았고, 그날 그 거목 아래서 운좋게도 엄청난 교훈을 얻었다.

나는 크리스찬이다. 『성경』을 보면「누가복음」23장 34절에서 예수께서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한마디의 변명과 자랑과 불평도 하지 않았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못박혀 인간으로서 최후를 맞이할 때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인간 세상에 살면서 변명과 자랑과 불평을 하지 않고 산 사람은 오직 완전한 인격을 갖춘 예수님뿐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진산 선생이 그 세 가지를 모두 지키고 산 완전한 인격자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범인은 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했고, 책임감이 투철했으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모도 고통도 능히 감당하며 산 분이었다고 확신하다. 이런 분이 대통령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나는 했다.

이런 지도자를 올바로 보지 못하고 그의 진실을 투명하게 말하고 보도하지 못한 정치권과 언론문화가 국민의 눈을 가리고, 그 흐려진 눈으로 보고 듣고 판단해 선택한 국운을 나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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