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공판] 특검, 삼성물산 합병 의혹 '제자리걸음'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재용 공판] 특검, 삼성물산 합병 의혹 '제자리걸음'
  • 유경표 기자
  • 승인 2017.06.27 18: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민연금 관계자 "규정대로라면 투자위 심의가 맞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유경표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부정청탁으로 인한 청와대의 지시나 개입이 있었다는 증거가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있다는 특검의 주장이 집요하게 되풀이되는 모양새다.

특검은 당시 합병 찬·반의 키를 쥔 ‘캐스팅보트’ 국민연금공단의 투자위원회 부의 과정이 합병 찬성을 위해 의도된 것이라는 의혹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증언·증거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으면서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된 것’이라는 변호인단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렵게 됐다.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전·현직 삼성 임원 5명에 대한 33차 공판 오전 증인으로 이윤표 전 국민연금공단 운용전략실장이 출석했다.

이 전 실장은 홍완선 전 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합병 찬성 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개입했고, 찬성 의결 후에는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에 전화를 걸어 보고했다고 특검에 증언한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15년 7월 10일 합병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열린 국민연금 투자위에서 전문위 부의가 옳다고 생각해 ‘표결 기권’하기도 했다. 당시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 투자위의 결정은 찬성 8, 기권 3, 중립 1표였고, 반대표는 나오지 않았다.

이 전 실장은 표결에 기권한 이유에 대해 “특정 이유보다는 비율에 관련된 현재 가격으로 합병돼 상쇄되는 시너지가 판단이 어려워 전문위에 가야한다고 생각했다”며 “합병 시너지가 너무 낙관적이라고 생각했고, 바이오로직스의 실적 저조, 현장 인허가가 없는 상황 등 다양한 요소를 감안했다”고 말했다.

특검이 “정재영 국민연금 책임투자팀장이 증인과 저녁 식사 중 홍 전 본부장으로부터 합병 찬성 논거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는데 아느냐”고 묻자, 이 전 실장은 “저녁을 같이 먹은 것은 사실이지만, 논거를 준비하라는 지시에 대해선 기억이 없다”고 증언했다.

이에 특검은 이 전 실장에게 2015년 7월 7일 연금공단이 작성한 ‘의결권 행사 관련 쟁점’ 보고서를 제시했다. 이 보고서에는 합병 찬성 3가지 요건으로 △장기적 주주가치 증대 △기금 이익에 부합 △주주가치 훼손 불가 등을 3대 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전 실장은 해당 보고서에 대해 “의결권 행사에 관련한 기본적 원칙”이라고 말했다. “위 3가지 요건이 있으면 합병에 동의할 수 있다는 것이냐”는 재판부의 질문에서도 이 전 실장은 ”동의한다”고 답했다.

특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인해 국민연금이 1388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합병을 반대했던 의결권 자문기관 ISS조차 합병이 무산될 경우 22%의 주가하락을 전망했다는 점에서 합병 찬성이 기금이익에 반하거나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보인다.

당시 국민연금이 보유한 지분가치는 약 2조2000억원 규모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ISS의 전망대로 합병 무산으로 인한 20%의 주가 하락 시 무려 44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결심 공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 이윤표 국민연금 실장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기금자산 증식될 것이란 분위기 있었다"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이 전 실장은 주식의결권 행사 원칙 상 투자위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 대해 동의했다. 아울러 이 전 실장은 “규정대로라면 투자위에서 안건을 심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나아가 그는 “(공단 내부적으로) 합병 당시 기금자산이 증식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연금공단이 막대한 손해가 있을 것을 알면서 삼성의 ‘특혜’를 위해 합병에 찬성했다는 의혹을 보내고 있는 특검의 주장과 배치되는 내용이어서 주목된다.

변호인단은 이 전 실장이 “2015년 7월 6일 조남권 당시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을 찾아 합병관련 보고를 했지만, 조 전 국장이 ‘당신네들 합병에 반대하겠다는거야’라고 말했다”고 한 증언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나타냈다.

변호인단의 추궁에 이 전 실장은 “조 전 국장이 무조건 전문위로 보내지 말고 투자위에서 충분히 검토하라고 했다. 찬성 또는 반대의 판단이 곤란한 부분을 명확히 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조 전 국장의 발언은 합병에 찬성하라는 외압이 아닌, 규정에 따라 투자위에서 충분한 검토를 거쳐 달라는 당부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 전 실장은 “투자위에서 3시간 토론했는데 검토시간을 빼더라도 2시간 토론한 것”이라며 “단일 안건을 이렇게 오래 검토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이는 투자위 토론이 합병 찬성을 위해 형식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검토가 있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홍 전 본부장이 합병 찬성 과정에 개입했다는 특검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언은 이번에도 나오지 못했다. 특검이 부정청탁이 이뤄진 경로로 본 ‘삼성-청와대-복지부-국민연금’ 고리 입증에 있어 수십차례 진행된 공판 동안 사실상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 전 실장은 “홍 본부장이 합병 찬성에 권유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고, 찬성 분위기를 이끌어간다는 느낌도 받지 않았다”며 “투자위원 지명에 있어 홍 전 본부장이 먼저 지명하겠다고 한 적은 없다”고 증언했다.

합병 결정 여부에 대한 표결방식이 기명투표로 바뀐 것에 대해서도 “홍 전 본부장 등으로부터 표결방식 변경에 대한 반대의견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담당업무 : 재계, 반도체, 경제단체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원칙이 곧 지름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