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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代散策] 이병도 ˝민주화 투쟁 중심에 'YS 자택'이 항상 있었다˝
<상도동 YS 자택이 갖는 상징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단상>
정치생애 전체, 일관된 신념 굳건한 덕목
민주투쟁 정책혁신, 성역없는 승부수의 연속
최근의 국정난맥상 'YS 교훈' 되새겨야
2017년 06월 30일 (금) 이병도 시사평론가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시사평론가)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제 막 발을 뗀 정치부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더니, 민주화 운동의 주요 현장인 상도동 김영삼(YS) 전 대통령 자택을 조명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 나름 유명했던 야당 출입 기자였던 내게 원고를 부탁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모처럼 다시 펜을 들었다. 지난 달 29일 나를 찾아온 기자에게 이 글을 주면서 제목을 덧붙였다. <상도동 YS 자택이 갖는 상징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단상>.

   
▲"YS는 일생이 반독재와 민주주의 쟁취 투쟁으로 일관했다는 점에서 그는 우리 의회민주주의의 산증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YS의 길'은 대한민국 정치사의 산 증인으로 길이 보존돼야 한다. 민주주의를 확장시키고 그 선봉에서 민주화를 쟁취한 각도에서는 故 김대중 대통령과 더불어 영원히 추앙 받아야할 지도자임에 틀림없다.

야당 지도자 시절에는 군부독재의 권위주의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 끝없이 싸웠던, 가히 영원한 불굴의 민주화 투사였다. 또한,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우리나라를 민주주의 반석에 올려놓기 위해 軍 사조직인 '하나회'를 과감히 해체, 군부의 정치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며 문민통제를 관철시켰던 뛰어난 전략가기도 했다. 12·12쿠데타의 주역이자 5·18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짓밟은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세력을 단죄함으로써 군의 정치 개입을 근본적으로 봉쇄한 것이다. YS의 인생사와 정치사는 두 수레바퀴와 같이 파란만장한 영욕을 점철했다.

"민주화 투쟁의 중심에는 상도동 YS 자택이 항상 있었다"

1927년생인 그의 인생과 정치 역정 전체가 우리 현대사를 관통했다. 일제의 식민 지배 시기에 성장했고 6·25전쟁을 겪었으며, 어머니를 간첩의 총탄에 잃었다. 정치에 투신한 이후엔 꺾이지 않는 집념과 투지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온갖 고통을 감내한 그가 없었더라면 산업화·민주화의 동시 성취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기적의 역사도 '절반의 성공'에 그쳤을 것이다.

그는 국민과 함께 호흡하며 국민과 고락을 함께했던 정치인이었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로 26세 최연소 의원에 당선된 이후, 정치활동 규제로 출마하지 못했던 11·12대 총선을 제외하고 내리 당선, 9선 의원(3·5·6·7·8·9·10·13·14대)의 기록을 세웠다. 그가 세운 ‘최연소’ 기록과 ‘최다선’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일생이 반독재와 민주주의 쟁취 투쟁으로 일관했다는 점에서 그는 우리 의회민주주의의 산증인이나 마찬가지였다. 1954년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출마해 첫 당선을 이뤄냈지만, 그 때부터 이승만 대통령이 사사오입 개헌안을 통과시킨 데 실망해 탈당, 야당에 투신했다.

그 후에도 줄곧 그의 정치투쟁 인생 전반기는 의회민주주의가 권위주의에 눌려 신음하던 시기였다. 국민적으로 그 민주화 투쟁의 중심에 '상도동 YS 자택'이 항상 있었다. 그곳은 1963년 YS가 군정 연장 반대 집회로 수감된 이후 강도를 더해 간 민주화 투쟁의 선두이자 본거지였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개헌 반대 투쟁 중엔 초산 테러를 당했고, 1979년엔 의원직 강제 제명을 당했다. 이 사건은 부산·마산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져 유신 정권이 끝나는 계기가 됐다.

   
▲ "YS는 23일간의 단식 투쟁을 강행,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과 직선제 개헌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한때 거리 투쟁에 나섰던 일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의 전유물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80년 신군부 등장 후에는 가택연금 등 정치적 박해를 받으면서도 23일간의 단식 투쟁을 강행,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과 직선제 개헌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당시 그의 민주화 투쟁은 1985년 2·12총선 신민당 돌풍과 1987년 직선제 개헌운동으로 이어져 마침내 정치군부의 대(對)국민 항복 선언인 '6·29민주화 선언'을 끌어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한때 거리 투쟁에 나섰던 일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의 전유물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83년엔 광주민주화운동 3주기를 맞아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23일간의 단식 농성으로 정국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강고하던 군부 정권은 그의 결기에 결국은 손을 들었고, 정치 통제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계기로 물꼬가 트인 민주화의 거센 흐름이 결국 1987년 6·29 선언을 나오게 한 것이다. 암울했던 시절,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며 투쟁의 선두에 섰던 YS를 보며 많은 국민은 그에게 희망과 믿음을 보냈다.

당시 권위주의는 아무 가진 것 없는 나라가 국가 건설과 산업화를 위해 불가피하게 갈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고 해도, 독재의 그늘은 언젠가는 우리가 걷어내야만 했던 큰 굴레였다.

"YS는 평생을 승부사로 살아"

한마디로, YS는 평생을 승부사로 살았다. 유신 정권과의 정면 대결, 목숨을 건 단식, 3당 합당 등 모두가 결정적 시기에 던진 거대한 승부수였다. 그의 정치생애에 계속 논란이 된 '3당 합당'도 기득권 세력과 손을 잡았으나, 마음속에선 이들과 결별할 수도 있는 개혁의 결심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하나의 큰 승부수였다.

YS의 정치인생에서 논란의 측면은 평생을 민주화에 헌신했으면서도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군사정권의 후예인 민주정의당·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감행한 부문이다. 새롭게 탄생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의 대선 후보를 거머쥠으로써 결국엔 개인적으로 중학생 시절부터 갈망하던 ‘대통령의 꿈’을 이루긴 했지만, 민주투사의 정통성에 흠결을 남겼다는 논란을 야기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14대 대통령으로서 집권후에도 YS가 펼쳤던 줄기찬 민주화 개혁정책을 보면 그의 민주투쟁 일관성은 참으로 높이 평가할만하다.

'신한국 창조'란 ' 슬로건의  그 승부수 바탕에는 첫 번째 부패와의 전쟁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군부 정치 사조직 하나회에 대한 전광석화 같은 해체 조치가 상징성을 더해준다. 아직 군정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고 있던 그때, YS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아니었다면 우리 군 전체를 휘어잡고 있던 하나회를 없애는 일대 단안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결단 하나로 우리나라는 군부 정권이 다시 들어설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로소 해방될 수 있었다.

   
▲ "3당합당으로 민주투사의 정통성에 흠결을 남겼다는 논란을 야기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14대 대통령으로서 집권후에도 YS가 펼쳤던 줄기찬 민주화 개혁정책을 보면 그의 민주투쟁 일관성은 참으로 높이 평가할만하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특히 문민정부의 초석을 깔며 부정부패의 온상이던 차명거래를 타파하기 위해 금융실명제를 과감하게 단행한 일, 공직비리를 일소하기 위한 ’공직자 재산등록제도‘ 시행 등은 세계 정치사에 길이 남을 민주화의 정책혁신 유산임에 틀림없다. 그 누구도 감행할 수 없는, 결코 성역을 용납치 않는 남다른 용기와 반석 같은 의지, 끓어오르는 용광로 같은 신념의 정치 지도자였음을 확연히 보여줬다.

자신부터 솔선해 공직자 재산공개를 단행하고,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결단함으로써 우리 정치 사회의 고질이었던 정경유착의 고리를 원천적으로 끊으려 했다. 이런 조치들은 그의 결단력과 강인한 실천력, 그리고 특유의 뚝심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후 정권들이 본받을 귀감이 될 만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임기 말 차남 김현철 교수가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현직 대통령의 아들로는 처음 구속돼 개혁의 빛이 바랜 측면이 있지만, 그의 공적 전체를 가릴 수는 없다. 그는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해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를 실시하고 통합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제정으로 ‘돈은 묶고 입은 푸는’ 식의 정치개혁도 추진했다. 지방자치제 실시로 중앙정부가 갖고 있던 권력의 상당 부분을 지방으로 넘겼고 수요자 중심의 교육개혁도 단행했다. 

최근 들어 북한 핵실험과 경기침체, 특히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등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충격에 빠뜨리는 일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한반도 하늘에 전쟁의 먹구름이 여전하고, 국내 정치에서는 파국 조짐이 짙어지고, 국민들의 살림도 어려움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YS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헌과 지도력의 굳건한 의지는 더욱 되새겨진다.

이와 관련, 최근의 각종 선거들을 통해 나타난 민심은 더욱 겸허히 받아들여져야 한다. '민심'은 여야 모두에게 준엄한 경고를 내리고 있다. 여야 누구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기보다는 앞으로 잘못할 경우 언제든 '레드 카드'를 꺼내겠다는 흐름이다.

이제는 흐트러진 국정 동력을 모으는 데 다시 힘을 쏟아야 한다.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거듭나지 않고서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헤쳐나가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하다. 최근의 '민심'은 서민 경제살리기와 각종 개혁 등에 매진해달라는 주문일 것이다. 정치권의 자성과 개혁의 출발 계기가 되어야 마땅하다.

YS가 세상을 떠난 날은 우연히도 그의 재임 중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 신청을 발표한 바로 그날이다. 취임 후 금리를 자유화하고 공기업 민영화를 밀어붙였던 것이다. 관치(官治) 경제 시대에서 탈출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재임 초에 '세계화'를 내걸었고 1996년엔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하지만 국제수지 적자가 8년 연속 계속되는 가운데 이뤄진 규제 완화와 금융시장 개방은 큰 부작용을 낳았다. 동남아 외환위기가 터지자 우리나라의 무분별한 외화 차입이 경제 전반에 직격탄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YS 정치인생에 가장 큰 오점이 됐고, 본인도 마지막까지 이 일을 괴로워했다 한다. 그러나 이제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좀 더 긴 시각에서 보면 그가 주도한 세계화, 민간 자율과 개방 위주 경제정책이 결국 우리 사회와 경제가 가야 했던 길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를 교훈으로 돼새겨야 마땅하다.

   
▲ "오늘의 여도 야도 민심을 어기면 1년 후 똑같이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 YS의 대표적인 어록인 "대도무문"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버르장머리 고쳐줘야 한다.“는 말은 민주화나 일본만을 향해서 던지 화두가 아니라, 오늘날 정도를 걷고 있지 않는 정치인과 YS의 후예들에게도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일 수 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최근의 국정난맥상 'YS 교훈' 되새겨야

오늘의 여도 야도 민심을 어기면 1년 후 똑같이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정부·여당은 지금부터라도 경제살리기와 각종 개혁작업에 '올인'한다는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야당들도 표를 의식해 정권심판으로 치우쳤던 중심을 민생현안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

YS의 대표적인 어록인 "대도무문"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버르장머리 고쳐줘야 한다"는 말은 민주화나 일본만을 향해서 던지 화두가 아니라, 오늘날 정도를 걷고 있지 않는 정치인과 YS의 후예들에게도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일 수 있다.

당면한 ‘한국병’을 타파하기 위해 고통을 분담하자며 ‘칼국수’로 상징되는 개혁에 앞장섰던 YS를 국민은 오래토록 기억할 것이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경제와 왜소한 정치의 무기력증이 한국의 미래를  우려케 하는 지금, 그가 증거했던 개혁가, 실천가의 면모는 긍정적 유산으로 이어가야 마땅하다. 그가 생애 마지막, 2015년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휘호는 ‘통합’과 ‘화합’이었다. 통합과 화합 . 이제는 정치권과 국민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백년대계를 위해 다시 온 힘을 모으도록 해야 한다.

 

김병묵 기자 sisaon@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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