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22 토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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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성지②] “상도동은 민주화의 전초기지”
YS 가족, 측근, 출입기자의 3색 증언
김현철 “YS의 다양한 투쟁 역사 새겨져 애착 가졌다”
이병도 “한 집에서 취재하다 민주화 인사와 친해지기도”
백영기 “갈 곳 없는 민주화 운동 투사들 아침부터 모여”
2017년 07월 01일 (토) 김병묵 기자 정진호 기자 송오미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정진호 기자 송오미 기자)

상도동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자택은 단순한 집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 곳은 YS가 가족들과 함께 살던 곳이자, 민주화 운동의 동지들과 정치적 측근들의 집합장소였다. 또한 그들을 취재하기 위한 기자들이 한데 모여서 어울렸던 곳 이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그 공간의 복잡한 속성은 결국 하나로 귀결됐다. 민주화 운동의 심장. <시사오늘>은 YS의 가족과 측근, 당시의 취재기자로부터 당시 상도동 자택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어봤다.

   
▲ 상도동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자택은 단순한 집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 곳은 YS가 가족들과 함께 살던 곳이자, 민주화 운동의 동지들과 정치적 측근들의 집합장소였다. 또한 그들을 취재하기 위한 기자들이 한데 모여서 어울렸던 곳 이기도 했다. 왼쪽부터 김현철 국민대 교수, 이병도 기자, 백영기 전 한국방송공사 사장 ⓒ시사오늘

YS의 차남 김현철 국민대학교 교수 “YS의 다양한 투쟁 역사 새겨져 애착 가졌다”

-언제부터 상도동에서 살게 됐나.

“1969년에 상도동에 이사를 왔다. 그런데 그 해에 박정희 정권의 3선개헌이 이뤄졌다. 아버지(YS)가 한창 국회 안팎에서 삼선개헌에 대한 강경투쟁을 하시던 때다. 본회의장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을 직접 지명하면서 강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 골목길에서 초산테러가 났다. 그게 지금의 상도동 골목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 집안이 난리가 나 있었다. 기자들도 많이 와있고, 비서진들이 와서 ‘간밤에 아버님을 못 뵐 뻔 했다. 돌아가실 뻔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가면서 차를 한번 보라는데 초산을 맞아서 분화구처럼 겉이 끓었더라. 유리창은 다 녹아있고. 어린 마음이긴 하지만 ‘이런식으로 혹독하게 탄압을 하는구나’하고 생각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생각한 적은 없었나.

“이사같은 것은 고려해 본 적 없다. YS 성격상 위협 등에 굴하지도 않겠지만 상도동엔 다양한 투쟁의 역사가 새겨져 있어서 더욱 애착이 있으셨다. 대표적으로 박정희 정권에서 당하셨던 가택 연금이나, 1983년 23일간의 단식투쟁 등이 모두 상도동에서 이뤄진 것 아닌가. 단식 당시 민정당 실세였던 권익현이 외국으로 나갈 것을 설득하러 왔을 때, ‘나를 시체로 만들어 부쳐라’고 했던 곳, 상도동은 그런 무대다. 박정희 독재정권과의 싸움과 민주화 투쟁 끝에 결국 신군부가 무너지기까지 모두 다 YS가 상도동에서 동지들과 겪은 일이다.”

-상도동 자택에서 상도동계가 출범한 때는 언제인가.

“1967년 유진오 박사가 신민당을 만들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 상도동계의 시작은 그 때가 아니다. 1971년에 YS가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면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2차 경선서 역전패를 당했을 때, 상도동계는 사실상 그 때 출범했다. 경선에 승복했지만 YS를 지지했던 이들이 전당대회 뒤에 너무 아쉽고 분해서 결집한 셈이다. 그게 1차 태동이다. 2차 태동은 한참 후인 1984년 민주화 추진협의회가 결성됐을 때라고 본다. 그 때쯤엔 상도동이 야당의 집결지, 정신적 근거지가 됐다.”

1979년부터 상도동 출입한 이병도 기자 “한 집에서 취재하다 민주화 인사와 친해지기도”

-당시 야당 출입 기자로 활동하며 힘든 점이 있었나.

“그 당시엔 직접적이지 않더라도, 기사를 쓸 때마다 많이 신경을 써야 했다. 시대적으로 민주세력을 권력이 탄압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민주화 세력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표현이 너무 지나치면 정치부 기자들의 신변에 위협이 됐다. 나 같은 경우도 군사독재의 폐해, 밀실정치, 정경유착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젊은 시절이라 정의감도 넘쳤기 때문에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신변 문제도 걱정하다 보니 절충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상도동에서 취재활동을 했는지.

“상도동으로 바로 출근했다. 나는 상도동 출입기자들 간사를 맡기도 했다. 그날 방문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어떤 논의를 하기 위해서 오는 건지, 앞으로 민주화 투쟁 계획은 어떻게 잡고 있는건지 염두에 두고 취재활동을 했다. 내 기억엔 그 당시 야당 의원들은 숨김이 없었다. 오히려 기자들이 제대로 전부 보도하지 못했다. 100% 진실을 전달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컸다.”

-개인적으로도 가까워 졌을 것 같다.

“그렇게 상도동에 한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취재를 하면 기자와 민주화 운동하는 정치인들, 재야인사들이 서로 형제처럼 친해지기도 했다. 심지어 앞으로 투쟁해야할 방향과 전략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동교동은 맡지 않았지만, 야당을 취재하는 기자들끼리는 상도동, 동교동 관계 없이 한 팀이라는, 정의감 있는 조직이라는 의식을 공유했다.”

상도동계 백영기 전 한국방송공사 사장  “갈 곳 없는 민주화 운동 투사들 아침부터 모여”

-상도동계 측근으로서 상도동 자택에 대한 기억을 들려준다면.

“상도동 자택은 뭐라고 할까, 정이 있는 곳이었다. 원래 상도동계만의 공간도 아니었다. 민주화 운동 하는 사람들이 아침이 되면 새벽 5시부터 모여들었다. 달리 갈 곳도 없고, 널리 알려진 것처럼 손명순 여사가 시래기국을 손수 끓여주니 배도 채울 수 있었다. 그래서 주로 회의나 논의는 오전에 다 이뤄졌다. 더러 자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지만 보통은 저녁에 다 집으로 돌아갔다. 상당히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기 위한 전초기지이자 본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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