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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택시운전사>, 역사의 길목에 이어붙인 지난 시대의 공기
<김기범의 시네 리플릿>분노와 울분을 넘어선 공감과 정화의 행로
2017년 07월 11일 (화) 김기범 영화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기자) 

   
▲ 영화 <택시운전사> 포스터 ⓒ쇼박스

다큐멘터리는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의 현실을 기록함으로써 영상에 담긴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고자 하는 사실적인 영화 장르다. 

그렇기에 다큐멘터리의 감독은 사실을 어떻게 재현하느냐 보다는 현실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연출하고 통제하느냐에 따라 작가적 정체성은 물론, 현실 가치에 대한 새로운 존중이나 비판을 창조할 수 있다.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주체는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며, 사건의 주인공인 동시에 관찰자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어차피 최초의 영화란 단순히 기차가 도착하는 상황을 담은 다큐멘터리의 외형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1분도 되지 않는 그러한 단편들이 합리적인 재구성과 창의적 해석의 틀로 현실을 통제하며 우리의 실생활에 파급력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전함 포템킨> 과 같이 역사라는 옷을 입은 실체적인 사건과 사고가 스토리를 이끄는 주요 소재로서 영화를 진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4.19 혁명이나 6월 민주항쟁과 더불어 격랑 속의 대한민국 현대사의 정점에서 이 땅의 민주주의가 엄연히 살아 있음을 일깨우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우리 모두의 아픈 상흔이다.

진실과 폭압의 경계에서 신음하던 당시 시민과 계엄군 모두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악몽을 남겼지만, 그만큼 시대의 이격을 초월해야 할 현재의 젊은 세대에게도 절대 잊혀서는 안 되는 연결 고리가 절실히 필요한 역사적 전환점이기도 하다.

현재의 한국영화를 주름잡는 사회 고발극이나 정치풍자극의 뒷면에서는 1980년대라는 우리의 지난한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대극 또한 묵묵히 현재를 반영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 민주화 항쟁의 참상을 십년 전에 적나라하게 표현한 <화려한 휴가> 가 아픈 역사의 중심에 섰던 시민군의 생생한 상처를 드러냈다면, 새로이 개봉하는 <택시운전사> 는 사건의 주인공이 아닌, 철저한 외부자의 시선을 통해 우리 모두를 당시의 그 시대로 돌려보낸다.

하물며 <택시운전사> 를 이끄는 두 이방인은 서로 간에 지극히 제한된 의사소통만이 가능한 한국인과 독일인이다.

하루하루를 어린 딸과 살아가며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80년 당시의 소시민 중년 가장은 현재에도 이어질 수 있는, 당시 우리 대부분의 흔하고도 진솔한 모습 그 자체다.

여기에 선진국 출신으로 냉철하고 사명감 깃든 저널리즘에 입각한 기자와의 공존은 분명한 대척점을 이룬다.

그 대척점이 이루어지며 상승하는 공간은 정치경제적으로 덜 발전된 나라의 이미지를 대변하기에 충분한 추억의 브리사 택시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대가를 지불하면 그 뿐인 이동수단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겐 가족의 운명을 책임질 소중한 생계수단으로서 택시라는 한정된 공간은 당시 한국의 낙후된 모습을 내포한다.

거친 세파에 찌들어가는 운전사의 분신과도 같은 택시는 한 소시민의 유일한 재산으로서 시대 상황만 변했을 뿐, 그 옛날 농경시대의 가족 못지않은 대접을 받던 소와 같은 실체에 비견될 만하다.

(비록 포니2처럼 당시엔 출시조차 안 된 차종도 과도하게 나오지만) 브리사와 포니, K303 등 70~80년대 한국 도로를 수놓던 차량의 배열은 그 시대의 완벽한 고증을 기하며 많은 관객들의 향수를 소환시키기에 충분한 디테일로, 이를 완성한 스탭의 노고가 경이로울 따름이다.

마치 운수 좋은 날을 맞이한 양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벅찬 희망에 부풀어 장거리 운행에 오르지만, 그 길이 결국 생경한 비애와 상처를 맞닥뜨리게 되는 길목임은 누구나의 인생이 늘 그렇듯 아무도 알지 못한다.

비록 그것이 내외부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 스스로가 아니라 직업의식에 투철한 외국인 기자의 진실에 대한 시각과 열정이 자신의 안위에만 골몰할 수 있는 우리의 실상을 수동적으로 자각시키는 추동이 되는 점은 안타까운 비참함으로 다가올 뿐이다.

누군가는 영화 제작의 기술적 기능에만 천착하여 <택시운전사> 를 비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상 미디어의 시조인 다큐멘터리 장르처럼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함의는 그 기능을 뛰어 넘을 수 있다.

물론 서로간의 대척점에 있는 두 남자가 택시와 광주라는 한정된 공간을 주무대로 초기의 간극을 메꾸고, 여러 상황들을 겪으며 케미스트리에 도달한다는 클리셰는 혹자들에게는 필요 이상의 폄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 을 비롯한 할리우드 영화에서 익히 왕성한 활동으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토마스 크레취만은 분명 국내 배우들과 많은 소통을 소화하며 영화 속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진상을 규명하는 데에 있어 전달의 유효한 매개가 될 수 있는 누군가의 입보다는 차라리 진실을 갈구하는 외부자의 뜨겁고 진정어린 시선이 더한 설득력을 얻는 법이다.

2008년도의 <영화는 영화다> 를 필두로 시작된 장훈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의형제> 와 <고지전> 을 거치면서 각 시대의 아픔이 녹아든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화려한 미장센보다는 함축적인 장면과 짧지만 굵게 우러나오는 촌철살인들로 등장인물 간의 갈등을 완성시켜 왔다.

<택시운전사> 에서는 감독의 그러한 무기가 더욱 첨예화된다.

여기에 우리 현대사를 메꾸었던 개발독재기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모호함을 명징하게 표현한 <살인의 추억> 을 기점으로 나타난 해학적이고 가벼운듯한 송강호 특유의 발성은 그만의 요체인 동시에 진화의 끝을 가늠해 보고 싶은 신기한 의구심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 의구심을 성장시키며 거의 일 년마다 스크린에서 그를 만나는 것도 관객의 즐거움이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네크라소프의 거창한 어록까지 굳이 되새김할 필요는 없다.

다만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섣불리 믿기 어려운 경우에 "이거 실화냐?"며 자조와 푸념 섞인 반신반의를 경박하게 늘어놓는 현재에 사는 우리로서는 역사의 뒤안길로 허무하게 사라져서는 안 되는 한 편의 실화를 옥죄는 마음으로 바라보길 권한다.

단순한 분노와 울분을 지나 감정의 작지 않은 씻김으로써 독일인 기자의 카메라로 빨려드는 입체감은 가끔 속절없이 의심하는 그 실화란 결국 우리 모두가 만들어내는 것임을 새삼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1980년을 기준으로 나누어진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 간에 서로 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연유조차 모르면서 실상 당하는 그 평범하고 소심한 장삼이사들이 각자 삶의 주체이기에 앞서 역사를 이끄는 주인공임을 깨닫게 하는 순간, 세대를 뛰어 넘는 가교의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 영화란 진실에 대한 의지를 보일 때 장르 이상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이방인의 눈은 진실에 대한 타는 목마름으로 공감과 정화의 토대 위에 우리가 잊고 있던 시대의 공기를 이어 붙인다.

바로 이 영화가 가진 힘이다.

아직 한참 남은 8월 2일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뱀의 발 : 영화 관람 시 손수건을 준비하길 바란다.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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