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홍의 대변인]재벌들의 '갑질'…'다들 그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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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홍의 대변인]재벌들의 '갑질'…'다들 그러잖아'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7.07.14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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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져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사람은 똥을 싼다.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먹고 마시면 변(便)을 본다. 아마 배변할 때만큼 인간에게 자신이 평등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 주는 시간은 없으리라.

그러나 손과 입으로 똥을 싸는 경우는 다르다. 그것은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주변 사람들을 심히 불편하게 만들고, 시쳇말로 '빅똥(大便)'을 쌌을 때는 사회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래도 '변'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순간의 빅똥으로 평생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면 이 또한 옳지 않다는 옛 선인들의 지혜다.

<시사오늘>의 '박근홍의 대변인'은 우리 정재계에서 빅똥을 싼 인사들을 적극 '대변(代辯)'하는 코너다. '변'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종근당 회장을 위한 최종변론

종근당 회장님께서 자신의 운전기사들에게 상습적으로 폭언해 논란을 일으킨 것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상처 입은 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한 일이지만,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사적인 대화가 언론을 통해 유출됐다는 점에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솔직히 운전기사라는 게 별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아저씨들, 그냥 동네 아저씨들 아닙니까. 옛날 같으면 그냥 조금만 교육해서 운전 시키면 되는 겁니다. '밥하는 아줌마', 아니 '운전하는 아저씨'한테 회장님께서 욕 좀 한 게 뭐 그렇게 큰 잘못입니까?

흔히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나라에는 분명히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게 현실입니다. 회장님하고 운전하는 아저씨하고 어떻게 같은 위치에 있겠습니까? 막말로 자기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좀 부족하다 싶으면 강하게 타이를 수도 있는 거 잖아요.

회장님께서는 그저 요즘 운전기사들의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많다보니, 우리 사회 지도층의 한 사람으로서 운전기사들의 자질이 형편없어지고 있는 문제에 분개해 잠시 화를 참지 못하고 막말이 나온 겁니다. 운전을 위험하게 해서 주의를 준 것뿐입니다. 부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운전기사 폭언 논란에 휩싸인 종근당 회장이 14일 종근당 본사에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 뉴시스

존경하는 재판장님, 종근당 회장님께서는 그래도 '정도'를 지키셨습니다. 이 정도는 남들도 다 하는 거잖아요. 왜 이 회장님께만 엄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게 하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정일선 현대BNG(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은 또 어땠습니까. A4용지 140장에 이르는 행동수칙을 운전기사에게 들이댔고, 나아가 상습적으로 운전기사를 때렸어요. 3년 동안 12명을 갈아치웠답니다. 종근당 회장님께서는 1년에 3명밖에 안 잘랐어요.

정 사장과 비슷한 시기에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도 비슷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운전을 제대로 못한다고 운전기사의 어깨 등을 주먹으로 때렸는데, 행위 자체는 불량하지만 폭행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이유로 벌금형만 선고 받았었지요.

'땅콩회항' 사건도 떠오릅니다. 2014년 당시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은 이륙을 시작한 항공기 내에서 사무장 등 직원들한테 고작 땅콩 때문에 폭언과 폭행을 가했습니다. 비행기까지 돌렸어요. 가관 아닙니까.

심지어 김만식 몽고식품 전 명예회장은 '내가 인간 조련사'라면서 직원들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머리를 때렸답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처사지요.

어떻습니까? 종근당 회장님 정도면 그야말로 양반이지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는 높으신 회장님들만 이런 사건에 연루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저 일상적인 일입니다. 다들 그러는데 왜 종근당 회장님께만 자꾸 그러는 겁니까.

2013년 남양유업의 한 직원은 대리점주한테 물량 밀어내기를 강요하면서 "죽기 싫으면 제품 받아요. 죽기 싫으면 받으라고요. 입금 못하면 죽어"라는 식의 폭언을 가했어요. 똑같이 힘들게 사는 처지임에도 '갑'과 '을'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지요.

2015년 서울의 한 이마트 점포에서는 계산대 직원이 고객에게 폭행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이마트 본사 측은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되레 계산원을 질책했었지요. 이마트는 지난해에도 비슷한 사건이 부산에서 있었는데 오히려 선임 관리자가 계산대 직원한테 이렇게 말했답니다. "겪어보면 어쩔 수 없다"고.

이미 대한민국 사회에서 갑질은 일상적인 행위입니다. 솔직히 재판장님께서도 아마 한 번쯤은 자기도 모르게 이런 폭언이나 폭행을 저질렀을 지도 몰라요. 아마 지금 제 최종변론을 듣고 계시는 사람들 중에서도 움찔하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종근당 회장님께서 운전기사에게 욕설을 한 건, 그저 보통의 일인 거지요. 다들 그러잖아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회장님께서는 14일 종근당 본사에서 직접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한 번 보시지요.

'저의 행동으로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 용서를 구합니다. 머리 숙여 사죄를 드립니다. 이번 일로 크게 실망하셨을 평소 종근당을 아껴주시고, 성원해 주신 모든 분들과 종근당 임직원 여러분들께도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이 모든 결과는 저의 불찰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한없이 참담한 심정일 뿐입니다. 따끔한 질책과 비난 받아들이고 깊은 성찰과 자숙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상처 받으신 분들을 위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또한 찾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저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함으로써 한 단계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참으로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과문 아닙니까. 회장님께서는 죄를 인정하시고 고개를 숙여 진심으로 참회하셨습니다. 갑질하고 사과하는 게 쉽지 않은 건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여러분 중 종근당 회장님보다 깨끗한 자가 있다면 돌을 던지십시오. 과연 자격이 있는 분들이 얼마나 계실지 궁금합니다.

부디 이 같은 점들을 헤아려주셔서 이 회장님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과 언급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현명한 판단을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부탁드립니다.

제가 준비한 최종변론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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