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공판]법정에서 밝힌 '경영철학'…"지분은 큰 의미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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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공판]법정에서 밝힌 '경영철학'…"지분은 큰 의미없어"
  • 유경표 기자
  • 승인 2017.08.0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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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라 승마지원 결정한 최지성 미전실장 "이 부회장에겐 말하지 않았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유경표, 한설희 기자)

▲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회사 지분이 높고 낮은 문제가 아닙니다. 의견을 내거나, 적극적인 찬성·반대를 하려면 사업을 이해해야 하고 경쟁관계나 우리 회사의 약점과 강점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 책임질 수 있는 능력과 책임감이 있을 때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전·현직 삼성임원 뇌물공여 사건 50차 재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승인을 내렸느냐는 특검의 질문에 답한 말이다.

'경영 철학'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밝힌 이 부회장의 증언은 의미심장하다. 증언을 통해 엿본 이 부회장의 ‘경영 철학’은 특검이 말하는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나 지분의 ‘숫자놀음’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이 부회장은 미전실 주도로 승계작업을 추진했다는 특검의 주장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삼성전자처럼 큰 회사를 맡고 있으면 지분은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회사의 리더가 되려면 사업을 이해해야 하고, 직원들에게 비전을 줘서 좋은 인재가 오도록 하고, 경쟁에서 살아님기 위한 경쟁력 강화를 해서 직원들 신바람 나게 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 경영권”이라며 “지분 몇 퍼센트 갖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소신을 피력했다.

이 부회장은 또 “제가 가진 지분은 삼성물산이 훨씬 많지만, 실질적인 지배력은 삼성전자가 더 세다고 생각한다”면서 “제 평생 짧은 시간이지만 열정을 갖고 일해 왔기 때문에 숫자로 ‘지배력’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덧붙여 말했다.

특검은 삼성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이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추진했다고 봤다. 하지만 최지성 전 미전실장(부회장)의 증언에 따르면 경영 전반에 대한 책임은 최 전 실장에게 있었고, 이 부회장은 삼성의 ‘후계자’로서 ‘경영 수업’ 차원의 의견 공유에 그쳤다. 

이날 증언에서 최 전 실장은 “삼성의 최종 의사결정은 제 책임하에 결정된다. 이 부회장은 후계자로서 자주 회사를 대표해 (대외 행사 등에) 나가다 보니 오해를 하는 것 같다”며 “이는 조직 운영체계나 회사의 풍토·관행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 삼성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올림픽 승마지원' 요구에 따라, 승마 유망주를 선발해 독일 전지훈련단을 구성하려던 계획이 '비선실세' 최순실의 개입으로 인해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뉴시스

◇ 이건희 회장 와병 이전 끝난 '경영권 승계'..朴 전 대통령에게 뇌물 건낼 이유 없어
  
최 전 실장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선, 이미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전부터 사실상 완료됐다고 주장했다. 이건희 회장의 지분이 자녀들에게 3:1:1 비율로 정해져 있고, 이 부회장이 유일한 아들인 만큼, 계열사 지분과는 무관하게 경영권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것. 따라서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달라는 부탁을 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최 전 실장은 “이 회장이 가진 재산이 대부분 주식인데, 상속 과정에서 상속세 등을 납부한다 해도 그룹 지배구조 전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이 회장께서 쓰러지신 후, 이 부회장에게 ‘빨리 회장직을 승계해 공식적으로 나서라’는 얘기도 여러번 했다”고 말했다.

회장직 취임에 아무런 법적 제약이 없었지만, 이 부회장은 고민 끝에 최 전 실장의 제안을 고사했다고 한다.

이 부회장은 “아버지인 이 회장이 아직 생존해있어 아들로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각 계열사들이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러한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냈다는 특검의 판단은 ‘오판’으로 전락하게 된다. 경영권 승계가 사실상 마무리 된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경영권 승계 도움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면, 삼성은 무슨 이유로 대통령의 승마지원 요구와 미르·K스포츠재단·동계스포츠영재센터 재단 출연 등을 거절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는 특검이 ‘국정농단’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대기업 총수들을 조사한 진술조서에서 나타난다.

기업 총수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대통령의 보복’이 두려웠다는 취지의 증언을 남겼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현실인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에게 밉보였다간, 감당하기 어려운 후폭풍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최 전 실장도 “(박 전 대통령은)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정권에서도 회장이 두번이나 오해를 사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그가 ‘곤욕을 치렀다’고 한 사건은 이건희 회장이 지난 2011년 전경련 회장단 회의 참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당시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낙제점은 면했다”고 표현해 논란을 빚었던 일을 말한다. 

최 전 실장은 “본 뜻은 잘하고 있다는 의미였는데, 당시 ‘오만하다’고 세무조사와 소송까지 이어지는 등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며 “개인 기업으로선 대통령의 뜻을 어긴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지난 5월 31일 인천광역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후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대통령의 '올림픽 승마지원', 최순실 개입 후 '정유라 승마지원'으로 변질

최지성 전 실장은 정유라 승마지원을 최종 결정한 것은 자신이라고 증언했다. 특검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 전 부회장은 지난 2015년 8월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등 3인이 참여한 회의에서 정씨를 포함한 6명의 선수를 지원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최 전 실장은 박 전 대통령의 ‘올림픽 승마지원’ 의지 자체는 순수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최순실이 중간에서 개입하면서 ‘정유라 1인’ 지원으로 변질됐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공판 증인으로 출석한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 최준상 전 삼성승마단 선수 등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삼성측은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의 2차 독대(2015년 7월 25일)에서 “승마지원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면서 ‘레이저 눈빛’으로 질책한 사안이었던 만큼, 최순실의 요구를 ‘울며 겨자먹기’로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최 전 실장의 증언에 따르면, 최순실은 자신의 딸 정유라를 ‘독일 승마전지훈련단’ 명단에 포함시키기 위해 대한승마협회가 아닌, 삼성에서 직접 선발·지원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협회를 통하지 않는 선발은 투명하지 않고, 형평성 시비가 불거질 우려도 있어 삼성으로선 골치아픈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각 계열사들의 주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이 부회장에게 정보를 공유하던 최 전 실장이었지만, 최순실의 무리한 요구가 이어진 ‘정유라 승마지원’ 건 만큼은 이 부회장에게 철저히 함구했다고 한다. 만일, 문제가 불거질 경우, 이 부회장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자신이 책임지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최 전 실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승마지원을 요청했지만, ‘정유라 지원’이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면서 “그런데 상황을 보고받으니 (최순실씨가) 뒤에서 장난질을 친 것 같았다. 확인하기 어려웠고, 잘못하면 이 부회장에게 유언비어를 옮길 수 있어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당시에는 대가, 청탁, 뇌물 같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구설수 정도 생기면 제가 이미 40년 근무한 사람이니까 책임지고 물러난다는 생각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1심 공판은 3일과 4일 이틀간 이어지는 공방기일을 지나 오는 7일 '결심 공판'에서 마무리 될 예정이다. 선고 공판은 이 부회장의 구속만기일인 27일 이전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담당업무 : 재계, 반도체, 경제단체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원칙이 곧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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