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역대 광복절 경축사-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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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역대 광복절 경축사-무엇이 문제인가?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7.08.1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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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적 소명…진정한 광복은 ´통일´
대북(對北) 억지력 실질확보 평화체제 끌어내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역대 대통령들의 8.15 광복절 경축사는 언제나 매우 중요했다. 한일(韓日)관계를 비롯한 대외정책과 남북문제 등 한반도 현안의 큰 틀이 제시되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진정한 광복'의 개념인 '통일'을 향한 나름의 지표와 함께 국정운영의 청사진이 총론적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국내외적인 관심도도 크게 높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15일 광복 72주년 경축사도 비슷했다. 문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의 중요성'이란 인식하에 과거사 문제와 양국 간 교류 및 안보협력 영역을 분리해 다루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과거사와 역사문제가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지속적으로 발목 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셔틀외교' 등 교류 확대와 북핵 및 미사일 위협에 대한 양국간 협력 강화 등을 제안했다. 반면,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래를 중시한다고 해서 역사 문제를 덮고 갈 수는 없으며, 제대로 매듭지을 때 양국 간 신뢰도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최근 핫 이슈인 남북관계와 한반도 안보위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며 우리 정부가 주축이 되어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밝혔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로 촉발된 최근의 안보 상황과 관련,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란 의사를 강력히 내비쳤다. 그러면서,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지 않으면 제재와 압박을 높이겠다고 경고하고, “쉬운 일부터 하자”며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인도적 협력 재개를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달 6일 발표했던 이른바 '베를린선언'의 기본 구상을 재확인한 셈이다. 북한에는 "이대로 간다면 수많은 주민의 생존과 한반도 전체를 어려움에 빠뜨릴 것"이란 진단과 함께 즉각적 도발중단과 대화의 장 복귀를 촉구했다. 문 대통령이 그간 밝혀 온 대북정책의 기조가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식 천명된 셈이다.

이른바 ‘촛불혁명’ 이후 첫 광복절을 맞아 ‘건국절’을 언급한 것도 의미가 큰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이같이 언급했다. 이는 지난 9년간 보수 성격 정부가 건국일을 1948년 8월15일로 규정,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경시하는 경향을 보여온데에 대한 '시정책'의 발로로 보인다.

과거사 반성 결여 일본 지도층, 진실된 응답을

무엇보다 8.15의 핵심 의미는 일본 식민지 지배로부터 우리 민족이 해방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광복절을 한·일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연하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수난의 역사 모두가 궁극적으로는 일제통치로부터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최근까지도 잘못된 과거 역사가 급속히 복원·복권되고 있는 추세다. 이미 ‘기미가요’와 ‘히노마루’를 국가와 국기로 공식 제정한 바 있는 일본은 군국주의의 정신적 본산인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왕과 정부 각료의 과반수 이상이 참배했다. 또한 집권 자민당의 경우 야스쿠니 신사의 ‘국립화’및 총리의 ‘공식 참배’까지를 목표로 설정한 적도 있었다. 일본의 이러한 우경화 추세에는 수많은 일본 국민들의 묵시적 지지와 지원이 배후에 깔려있다.

때문에 광복이후 지금까지 한일 양국관계는 여러 면에서 곡절을 거듭해 올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다시말해, 지난 1965년 국교정상화 때 한·일 청구권 협정의 불완전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과거사에 대한 양국 국민들의 인식 자세, 특히 정치 지도자들간의 견해 차이가 심했던 탓이었다. 현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청구권 협정과 관련 계속 논란중이고, 과거사 인식을 둘러싼 논쟁은 역사 교과서 파동과 정치인 망언 등으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문 대통령이 과거사 극복을 위해 일본의 반성을 촉구한 점은 주목을 끈다. 문 대통령은 “한·일 관계의 걸림돌은 과거사 그 자체가 아니라 문제를 대하는 일본 정부의 인식 부침에 있기 때문”이라면서, “역사 인식이 일본의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자세는 여전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일본 종전일(패전일)에 도쿄 부도칸(武道館)의 '전국전몰자추도식'에 참석해 일본의 '전쟁 가해(加害)' 사실에 대해선 일절 언급치 않았다. 올해까지 5년 연속 패전일 추도식에 나왔으나, 단 한 번도 '전쟁 가해'를 인정한 적이 없다. 전임 총리들이 "일본이 아시아 국가에 큰 손해와 고통을 안긴 것은 사실"이라는 식으로,  간접적이나마 일본의 '가해'를 언급한 것과도 대조적일 정도다.

특히, 아베 총리는 집권 후 줄곧 평화헌법을 고쳐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들겠다며 노골적인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다. 과거사를 바로 보지 못하는 아베 총리의 이런 역사 인식은 한일관계의 발전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 총재 자격으로 대리인을 보내 야스쿠니 신사에도 공물 대금을 납부했다. 야스쿠니신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 246만6천여명이 합사된 제국주의 일본의 상징이다. 일본의 여야 의원 63명도 이날 야스쿠니신사를 단체 참배했다. 이처럼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한반도 지배 35년간 한국민을 상대로 한 수탈과 탄압, 강제징용 및 징병,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해 제대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새로운 한일관계를 촉구한 문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대해 이제는 제대로 응답하고 진정한 사과부터 해야만 한다. 

▲ 지난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말을 듣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 ⓒ뉴시스

아직도 현안 '위안부 문제'…역사왜곡 벗어나야

과거사와 관련, 오늘날 일본의 태도는 사실 참담할 정도다. 세계평화유지군의 명목으로 군대의 해외파병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일제 수뇌들이 사전에 계획했다는 극비문서자료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일본군의 정신대 강제집행 등 양국간에 가로놓인 과거의 퇴적물들이 올바로 진단되고 해결되기전에는 광복의 참된 의미가 유보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위안부 문제'는 아직도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 2015년 12월 양국 정부가 채택한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 측 입장은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 정도로 돼있었다. 그렇지만, 그 때 아베 신조 총리는 '군의 관여'라는 문구와 관련, "위안소 설치, 위생관리를 포함한 관리, 위안부 이송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라는 설명을 일본 의회에서 내놨을 뿐,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 연행한 증거는 없다"는 종전 주장을 되풀이했다. 아베 총리의 이런 주장은 역사적 증거와 결코 부합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 최근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이 위안부 모집의 불법성을 재확인한 일본 경찰의 문서를 발굴 공개했다. 즉, 1938년 2월 7일 일본 와카야마 현 경찰부장이 내무성 경찰국장에게 보낸 '시국 이용 부녀 유괴 피의사건'이라는 문서로, 파출소 순사가 거동이 수상한 남성 3명을 발견해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 남성은 "군부로부터 명령을 받아 황군 위안소에 보낼 작부를 모집하고 있다. 3천 명을 요구받았는데 지금까지 70명을 육군 군함에 실어 나가사키 항에서 헌병들 보호 아래 상해로 보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돼있다. 일본 경찰은 이들 남성을 피의자로 지칭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여성들에게 '돈을 많이 주고, 군을 위문하기만 하면 음식 등을 군에서 지급한다'는 식으로 유괴한 혐의가 있다"고 적었다. 즉, 이들 남성들은 당시 일본 군부의 명령에 따라 감언과 사기 등의 수법으로 위안부를 모집했음이 밝혀진 내용이다.

일본 땅 안에서만 이런 행위가 저질러진 것이 아니었다. 와카야마 현 경찰이 질의서를 보낸 후 나가사키 경찰서 외사경찰과장으로부터 온 답신에서 그런 내용이 나온다. 답신은 "본국(일본)에서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모집하고 있으니 증명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편의를 봐주라"고 기록돼 있다. 군부와 정부기관이 긴밀하게 협조, 위안부 강제연행이 이뤄졌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군국주의 일본 정부가 군부의 주도로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 위안부를 관리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한일 양국관계에서 일본 정부가 지켜야 할 첫 번째 의무는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고 참회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진단은 결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광복 56주년 경축사에서 “일본내 일부 세력의 역사 왜곡 움직임이 한일관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며 “확실한 역사인식의 토대 위에 양국관계가 올바르게 발전돼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일본의 역사 왜곡이 심했던 데다, 고이즈미(小泉)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기습 참배로 국민들의 반일(反日) 감정이 극도로 격앙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2011년 이명박 대통령도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도 문제와 관련, “일본은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칠 책임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 정부가 검정 교과서와 방위백서에 또다시 독도를 자국 영토로 명기하고, 자민당 극우 의원들이 울릉도 방문쇼를 벌이는 등 한-일간 역사 문제가 쟁점화 됐었다. 일본은 한반도를 병탄하기 전, 비밀 내각회의를 통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는 등 제국주의적 침략행위를 노골화했고, 그 후 이런 역사성을 지닌 독도에 대해 영유권까지 주장하고 나선 것은 자국의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을 원점으로 돌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독립유공자 처우 보완대책 강구를

한편, 광복절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치거나 고통을 당한 독립유공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다. 광복은 일제 패망의 당연한 귀결이자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광복회에 따르면 독립운동을 하다 희생당한 순국선열만 15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국가적 예우를 받아 마땅한데도 상대적으로 불우하고 가난한 삶을 산 경우가 적지 않았다.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 하면 3대가 흥한다”는 씁쓸한 말은 우리가 독립운동가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도적 뒷받침이 요구돼 왔다. 

그런 면에서, 문 대통령이 이번 경축사에서 "최고의 존경과 예의로 독립운동가에게 보답하겠으며 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예우하고 그들의 생활안정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은 의미가 크다. 문 대통령은 이번 광복절에 앞서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을 청와대로 초청, 격려 오찬을 하면서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안정적인 생활 보장, 독립유공자 장례 의전 확대, 임시 정부 기념관 설립 등을 약속했다. 특히 "지금까지는 자녀·손자녀 보상금이 선순위자 1인에게만 지급돼 다른 자녀, 손자녀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는데, 앞으로 보상금은 현재대로 지급하면서 생활이 어려운 모든 자녀, 손자녀 생활지원금 사업을 새로 시작하기위해 500여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의 보훈정책은 6.25 참전 용사에 치중되다 보니 독립유공자에 대한 지원이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밝힌 지원책만으로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시각도 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은 현재 서훈 등급에 따라 매월 수십만 원에서 150만 원 정도를 받는다. 또 현행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은 우선순위 유족 1명에게만 보상금을 지급하게 되어 있으며, 후손 범위도 손자녀로 제한돼 있다. 을미의병이나 3.1 운동 등 초기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유공자의 후손은 보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보훈처는 현재 서류 미비 등으로 독립유공자로 등록되지 않는 독립유공자나 후손을 찾아내 지원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할 것이며,  국회에 제출 계류중인 관련법안의 처리도 시급하다. 해외에서 영구 귀국한 유공자의 국내 정착을 돕거나, 독립유공 보상금 수령을 고령자 우선에서 부양자손 우선으로 변경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도 신속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

▲ 지난달 29일 북한이 지난 28일 밤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발사한 것과 관련해 긴급소집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진정한 광복…한반도 평화체제 정착 과제

진정한 광복의 개념으로서 남북 문제도 여전히 큰 관심사다. 그런 면에서, 지난 95년 김영삼 전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매우 상징적이다. 광복 50주년인 데다 특히 한반도 정세의 유동적 상황탓에 그때도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이 매우 긴요해진 싯점이었다. 김 전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우리의 '광복'은 남북분단으로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다고 전제, 진정한 광복의 완성을 통일국가 건설에 두고 이의 실현을 위한 첫 단계로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체제정착을 위한 기본원칙을 천명했었다.

당시, 김 전대통령이 밝힌 통일 철학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바탕으로 자주·평화·민주 3원칙을 골자로 한 '민족공동체'의 건설이었다. 그 첫 사업으로 북한에 경수로 원전 건설의 지원을 강조했다. 물론, 이것은 북한 핵문제의 완전해결을 전제로 하고 있었지만, 통일은 결국 민족공동의 복지와 번영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보면 나름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김 전대통령의 '통일론'은 지금도 유효하다. 북한 당국은 개방과 경제구조의 과감한 개혁이 체제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언제까지나 주민을 헐벗고 굶주리게 해서는 안된다. 북한은 개방과 개혁을 서둘러 '7천만 민족공동발전'의 시대를 여는데 동참해야만 한다.

문 대통령도 이와관련,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라고 했다. 북·미 간 충돌 위기에서 ‘한반도 전쟁 불가’ 입장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한반도 위기의 평화적 해결과 한국 주도의 평화 회복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한과 미국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한반도 운명을 결정할 당사자가 한국임을 당당히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는 않다. 문 대통령의 이같은 국정방향은 원론적으로 적절한 것이지만, 문제는 실천이다. 모든 것을 걸고 전쟁을 막겠다고 했으나 어떻게 평화를 지키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전략이 없어 아쉽다는 지적들이다. 문 대통령의 이날 경축사는 북한의 괌 타격 예고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라는 강경 대응으로 한반도 안보위기 국면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발표된 것이기에 더욱 주목됐다.

북한의 협박은 이번 광복절에도 계속됐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이 전략군사령부로부터 괌 포위사격 계획을 보고받았다고 보도했다. 남한 군부대와 국가 핵심시설을 스커드·노동 미사일로 타격하겠다는 계획이 그려진 지도와 사진도 공개했다. 지금까지 불바다 운운하며 말만 앞세웠던 북한이 마침내 남한 내 타격지점까지 표시한 미사일 운용부대 지도를 처음으로 공개하며 협박의 강도를 높힌 것이다.

이에, 문 대통령은 불안해하는 국민들에게 당장의 위협을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해야 했지만, 남북평화를 위한 대화 해결의 단초로 제시한 북한 핵 동결과 흡수통일 반대 등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지는 의문이다. 당장 북한의 김정은은 괌 타격 주력부대인 전략군사령부로부터 포위사격 방안을 보고받은 자리에서 “(미국이) 위험천만한 망동을 계속 부리면 이미 천명한 대로 중대한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위협을 되풀이했다. 도발수단을 고도화한 북한과 군사적 옵션까지 예고한 미국의 충돌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만큼, 우리 국민들 상당수가 실제 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구체적인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은, 선언적이고 교과서적인 메시지만으로는 국민 불안을 잠재우기 힘들것이란 제언도 대두된다. 이를 해결하려면 이산상봉 등 메아리 없는 대화 제의보다 확고한 대응태세를 밝히는 것이 순서일 것이라는 비판들이다.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은 핵 동결로부터 시작돼야 하며, 적어도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해야 대화의 여건이 갖춰질 수 있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지는 않았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국민을 안심시키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한반도 안보위기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북한은 다음주에 시작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 등을 문제 삼아 도발에 나설 수 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미국령인 괌 포위 사격 위협에 대해 “만약 북한이 미국을 공격한다면 급속하게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은 대꾸조차 하지 않는 군사회담 등 남북대화에 매달리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비평들이다. 정부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오락가락하거나, 사드 반대 시위대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런 자세로 어떻게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우려들도 상당하다.

시민 참여 중요…국론통합 '광복완성'의 길로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려면 우리 스스로 역량을 갖춰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로 남북 간 전력은 북쪽으로 편향돼 버렸기에, 한.미 동맹이 흔들리면 이 땅에 진정한 평화는 올 수 없다는 확고한 인식을 갖고 대북제재에 실질적 위력을 갖춰야만 한다. 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국방력이 뒷받침되는 굳건한 평화를 위해 우리 군을 더 강하게, 더 믿음직스럽게 혁신해 강한 방위력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힌 점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북한의 핵 도발을 선제 타격할 수 있도록 사드 배치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킬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구축에도 속도를 내야 마땅하다.

노태우 전대통령 시절에도 제45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을 제거하고 남북대결을 지양하기 위한 남북한 군비통제 협의가 제의된 바 있었다. 남북간의 무력포기선언과 불가침협정의 체결 및 현재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도 제안됐었다. 이 제의도 새삼스러운 내용은 아니었다. 남북한 상호불가침협정의 체결은 이미 지난 74년 제의한 바 있고,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와 신뢰구축을 전제로 한 군비통제방안 역시 여러 경로를 통해 일관되게 주장돼왔다. 남북간 대화추진 역사는 그렇게 오래됐다. 그 때마다 이런 문제들을 논의할 만한 실질적 여건이 제대로 성숙됐느냐가 관건이 됐다. 언제나 남북의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사소한 교류조차 이뤄지지 않았기에, 군비통제같은 논의가 더욱 필요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군축이야말로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임에 틀림없었지만, 그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난했다.

문 대통령의 이번 연설은 대북 대화의 조건을 핵·미사일 도발 중단으로 낮추고, 협상의 시작점도 핵 동결로 제시했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오기 위해선 대화의 문턱을 낮출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대화를 시작한다면 반드시 북핵 폐기를 관철해야 한다. 특히, 미국이 당장 자국 본토를 직접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막는 선에서 대북대책을 포기해 버린다면, 정작 한국은 핵무기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만다. 강력하고도 실질적인 대북 억지력의 확보가 시급하다.

그렇지만, 한반도 평화 주도는 정부의 힘만으로 결코 실현할 수 없다. 국민과 야당의 역할도 중요한데, 현실적 시각은 매우 엇갈린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전쟁은 안된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인식이 안일하다”며 북한의 도발 중단을 구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극복하기 쉽지 않은 견해차다. 문 대통령은 국회 의결을 통해 지속가능한 한반도 정책과 자주국방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실천방안에서는 전체의 합의가 필요하다. 스스로의 힘으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특단의 준비 과정에는 정부와 함께 야당과 시민사회가 모두 참여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정치권의 협치와 통합이 이뤄져야만 한다. 한반도 평화 실현은 수많은 '촛불민심들'에서 드러난 국민의 열망이며, 평화 통일로의 접근이야말로 분단과 전쟁으로 미완에 그친 광복을 완성하는 일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제, '8·15'는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참다운 의미의 광복이 무엇인지, 진정한 의미의 해방이 무엇인지, 시대적 조명이 더욱 정확해져야 할 것이다. '미완의 광복'을 '완성의 광복'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민족의 화해와 협력이 필수다. 한국안에서부터 분열은 통합으로 가야한다. 참된 '광복의 완성'은 지난 72년 동안 우리가 흘려 보낸 강도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피와 땀'을 요구할지 모른다. 그야말로, '민족사적 소명'이 아닐 수 없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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