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논란>
한화, 이면계약・정치권 로비…과연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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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논란>
한화, 이면계약・정치권 로비…과연 무슨 일이?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0.10.28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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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5500억원 혈세 투입된 대생 헐값 매각 논란
한화 자격시비 피하기 위해 맥쿼리와 이면계약?
재판부 "기망은 인정하나 입찰방해는 아니다"
한화, 정관계 인사 전방위 로비 의혹 ‘일촉즉발’

‘무려 3조5500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그리고 2001년 당기순이익이 8684억 원·2002년 9794억 원·2003년 6150억 원이었던 대한생명 지분 51%의 매각 가격은 8236억 원?’

실제 그랬다. 지난 2002년 12월 21일 예금보험공사(예보)가 보유하고 있던 대한생명 지분 51%를 한화에 매각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대한생명의 ‘헐값매각’ 논란은 지금도 뜨거운 감자다.
 
 

▲ 한화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9월16일 서울 장교동 한화 본사에서 압수수색중인 가운데 직원들이 출입문을 드나들고 있다.     © 뉴시스


금융당국은 1999~2001년까지 3조5500억 원이 넘는 혈세를 쏟아 부은 뒤 정부주도의 매각을 단행했다. 이후 2001년 10월 8일 한화컨소시엄과 미국의 Met Life가 금융당국에 대한생명 인수의향서를 제출했고 예보는 2002년 3월 11일 대한생명 매각관련 투자자 자격요건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다.

하지만 여기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Met Life가 9일 뒤인 3월 20일 돌연 인수의사 철회를 통보한 것. 이미 한화컨소시엄은 Met Life가 인수의사 철회 통보하기 5일 전에 최종투자제안서를 제출했는데, 한화특혜 논란이 급물살을 탄 시점도 이때부터다.

결국 대한생명 인수에 대한 경쟁자가 없어진 한화는 2002년 12월 12일 대한생명 주식 51%(3억6210만주)를 주당 2274.65원의 가격으로 총8236억 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투입된 공적자금 3조5500억 원 중 회수되지 못한 2조7000여억 원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났다.

정치권도 대한생명을 둘러싼 진실공방에 가세했다.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은 2004년 10월 15일 발간한 <2004 예금보험공사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을 통해  당시 대한생명의 매각 가격은 자사 1년 치 당기순이익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라고 주장하며 헐값매각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대한생명의 2001년 당기순이익은 8684억 원, 2002년 당기순이익은 9794억 원이다. 또 매각이 진행 중이었던 2000년 12월 1조5000억 원의 공적자금이 추가로 투입됐기 때문에 실제 매각가는 1천억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이 의원은 주장했다.

대한생명의 헐값매각 논란이 수면 위로 급부상하자 한화에 대한 인수자격 논란은 재점화됐고 인수자 중 보험사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한화는 맥쿼리생명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한화그룹은 2003년 12월 15일 맥쿼리생명을 인수했던 대한생명 지분 3.5%(565억 원)를 다시 인수했다. 
 

▲ 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이 확정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2007년 5월 11일 오후 서울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으로 수감되고 있다.     © 뉴시스

한화-맥쿼리 이면계약 논란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논란은 맥쿼리생명의 참여로 일단락될 것처럼 보였지만 이번엔 한화그룹 2인자인 김연배 부회장이 검찰에 의해 구속 기소되는 사건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논란이 불거졌다.

대검 중수부는 2005년 2월 15일 김연배 한화그룹 부회장을 입찰방해 및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뇌물공여 의사표시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김 부회장이 2002년 12월 대한생명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 구성 과정에서 맥쿼리 인수자금 300억 원을 빌려주고 형식적으로 컨소시엄에 참가시킨 뒤 다시 지분을 매수하는 등 공정한 입찰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은 이 과정에서 한화가 대한생명 인수 시 일정기간 동안 자사운영자금 1/3의 운영권을 주기로 하는 이면계약을 맺었다고 밝히며 한화와 맥쿼리생명 간 이면계약 논란이 불거졌다.

하지만 법원은 한화 측은 손을 들어줬다. 2005년 7월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최완주 부장판사)는 “한화가 공자위와 예보 등에 맥쿼리생명과의 외국계 보험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처럼 속인 것은 사실이지만 입찰방해죄가 성립하려면 반드시 2인 이상의 입찰경쟁상태가 존재해야 가능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한화 측이 금융당국을 기망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입찰방해는 아니라는 논리를 폈지만 형법상 입찰방해죄는 법익에 대한 위험상태 야기만으로 범죄구성요건이 성립하는 위태범이라는 점에서 당시 재판부 판결에 대한 비난여론은 지금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같은 해 11월 30일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1부(부장판사 이인재)는 한화와 맥쿼리생명의 이면계약과 관련한 검사의 항소이유를 기각하며 또다시 한화 측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판결로 마찬가지였다. 2006년 6월 16일 대법원 (주심 김영란 대법관)은 한화그룹이 대한생명 인수과정에서 이면계약을 통한 예보의 입찰방해와 관련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는 당시 논평을 통해 “입찰방해죄에 대한 무죄 판단과는 별개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한화그룹이 맥쿼리생명과 이면계약 체결 사실을 숨기고 정부를 기망하며 인수 후보자에 대한 공정한 심사를 방해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원심의 사실판단을 재확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번엔 예보가 나섰다. 예보는 검찰과 1·2심 과정에서 한화 측의 이면계약 사실이 드러나자 대법 판결 직전인 6월 1일 대한생명 인수 과정에서 맺은 이면계약이 투자자 자격 요건에 위배된다며 인수 무효 또는 취소하는 국제중재를 신청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예보는 “한화그룹이 맥쿼리와 이면 계약을 맺고 2002년 12월 대생 지분 51%를 인수한 것은 투자자 자격 요건을 실질적으로 위배한 것”이라며 “한화컨소시엄에 참여한 생보사인 맥쿼리는 형식적으로만 들어오고 실질적인 자금은 한화그룹에 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며 국제중재위 제소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그러자 한화그룹은 즉각 “예보가 국제중재를 신청한 것은 2007년 12월까지 예보의 대한생명 지분 16%에 대한 콜옵션 행사를 막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2년여 간 지속된 한화와 예보의 법적 공방은 2008년 8월 1일 한화 측이 “국가상사중재위원회가 최종판정에서 예보와 한화그룹 간에 체결된 대한생명 주식매매계약은 적법하게 이뤄졌고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전했다”고 발표하며 사법적 판단은 사실상 일단락됐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는 같은 날 “편법을 동원하면서까지 한화그룹에 보험사 대주주 자격을 부여하고 공자위 민간위원들의 반대에고 한화그룹을 인수자로 선정하고 막대한 혈세를 쏟아 붓고도 제값을 받기는커녕 콜옵션까지 보장해준 게 바로 예보”라며 “자격 없는 한화에 대한생명 헐값 매각한 예보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성토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8년이 지난 현재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논란에 대해 “이미 법원의 1·2·3심과 2008년 7월 국제상사중재위원회에서도 특혜 논란과 관련해 모두 문제가 없는 게 밝혀지지 않았느냐”며 “왜 8년 전 사건이 이제 와서 다시 불거지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한화그룹은 2006년 6월 16일 대법원이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과정에서 이면계약을 통한 예보의 정당한 입찰을 방해한 혐의에 대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당시에도 “대법원의 무죄확정 판결은 그간 제기된 대한생명 인수관련 의혹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단”이라며 “이는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과정은 법률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었다는 것을 입증함은 물론,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와 관련해 제기됐던 음해성 주장과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반면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한화 측은 대법원의 판결을 이유로 대한생명 인수에 대한 논란은 끝난다고 주장을 하고 있지만 당시 대법원 판결은 한화 측의 행위가 형법상 입찰방해나 업무방해라는 ‘특정한 범죄 혐의의 구성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다는 지극히 형식적인 법 논리와 재벌에 대한 소극적인 사법권 권한 행사를 의미한다”고 반박, 아직까지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과정에서 불러진 이면계약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 서청원 한나라당 전 대표.     © 뉴시스
 
한화, 정치권 로비 의혹 실체


“피고인(김연배 부회장)은 업무상 배임으로 인한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위반, 뇌물공여 의사표시, 정치자금법 위반을 모두 자백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영란 대법관)는 2006년 6월 16일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비리와 관련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김연배 한화증권 부회장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며 이 같이 판결했다.

당시 재계와 정치권 안팎에선 보험업 출자자 요건도 갖추지 못했던 한화그룹이 대한생명을 인수하자 전방위적 정관계 로비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았다.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2002년 9월 24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금감위에 대한 국정감사를 하던 중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결정 과정에서 권력실세가 개입됐다는 주장이 제기, 논란이 일파만파로 퍼졌다.

당시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당시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한화갑 대표를 직접 만나서 대한생명 인수에 대한 협조를 부탁했다는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 회장은 대한생명 인수를 위해 당시 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로비활동을 했고 또 김 회장이 같은 해 9월 4일 김모 대통령비서관에서 전화를 걸어 ‘박지원 비서실장’이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자 박 비서실장이 윤진식 재정경제부 차관에게 ‘대한생명 매각은 대통령 관심사인 만큼 내일(9월 5일)열리는 회의에서 한화에 매각하도록 결정하고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실제 1999년에 있었던 제2차, 제3차 대한생명 입찰 매각에 참여했던 한화컨소시엄은 당시 자금조달 미비 등을 이유로 탈락했지만 3년 후인 2002년 9월 23일 금융당국은 대한생명 인수자로 한화컨소시엄을 택했다.  

 

▲ 한화그룹의 비자금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9월16일 저녁 서울 장교동 한화 본사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수거한 압수품을 차량에 싣     ©뉴시스


이는 당시 정형근 의원이 김 회장이 김모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전화한, 그리고 박 비서실장이 윤진식 차관에게 지시했다고 주장한 날짜 이후였다는 점에서 전(前)정권 실세를 둘러싼 로비의혹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후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에 대한 정권실세 로비 의혹이 계속된 가운데, 대검 중수부(박상길 검사장)는 2005년 1월 26일 김연배 부회장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부회장은 2002년 12월 맥쿼리생명에 300억여 원을 빌려주고 대한생명 인수 컨소시엄에 참가한 것처럼 해 공정한 입찰을 방해한 혐의, 2002년 9월 전윤철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뇌물 15억 원을 건네려 한 혐의,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비서관을 통해 1천만 원짜리 채권 5장을 전달하면서 영수증을 받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또 김 부회장은 2002년 대선을 앞둔 12월 16일 한화건설 김현중 사장을 통해 제주 펄호텔 커피숍에서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 측 캠프 유세본부장이던 이재정 의원에게 10억 원 상당의 채권을, 같은 해 11월엔 서울 여의도 63빌딩 모 식당에서 한나라당 김영일 의원과 함께 나온 최돈웅 의원에게 40억 원 상당의 채권을 전달한 혐의 등으로 2004년 5월 6일 대검 중수부(검사장 안대희)로부터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 과정의 몸통 의혹을 받았던 김승연 회장은 검찰수사를 피해 7개월간 미국으로 도피하다 돌연 귀국해 한차례 소환 조사를 받은 뒤 2005년 3월 무혐의 처리됐다. 전형적인 몸통 자르기 수사라는 비판제기는 것은 불보듯 뻔했다.

결국 몸통으로 지목됐던 김 회장은 서청원 한나라당 전 대표에게 16대 대선 당시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10억 원 상당의 국민주택채권을 불법으로 건넨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데 그쳤다.

서울중앙지검(검사 홍만표)이 2004년 8월 23일 작성한 공소장을 보면 “피고인은 2002년 10월 하순 경 한화그룹 계열사 서울프라자호텔 사장인 김영범으로부터 당시 한나라당 대표인 서청원이 정치 활동을 하면서 계보 및 조직관리를 하는데 돈이 많이 드니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같은 해 11월 초순경 서울 중구 태평로2가 소재 서울프라자호텔 21층 로얄스위트룸에서 김영범의 주선으로 서청원을 만나 제1종 국민주택채권 1000만원 100매 액면금 합계 10억 원 상당이 들어있는 봉투를 교부했다”며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구형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 달 후인 9월 23일 서울중앙지법은 선고공판에서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시인하고 있고 증거들을 종합해볼 때 혐의 사실은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며 김 회장의 비자금 로비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불법 정치자금은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제공한 사람에 대해서도 엄한 처벌을 해야 마땅하나 죄를 뉘우치고 있고 기업 비자금이 아닌 개인 재산인 점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며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는데 그쳤다.

“사회에 물의를 끼쳐 진심으로 사과한다. 제 허물을 용서해 다시 기회를 주면 기업 활동뿐 아니라 대회활동을 활발히 해서 이 나라와 국가에 충성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노력하겠다.”
김승연 회장은 ‘2002년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 의해 불구소 기소를 당하자 2004년 9월 7일 첫 공판에서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그 이후 한화그룹 김 회장 일가는 우리사회에 무엇을 남겼나. 한화그룹 김 회장과 세 아들은 대선 비자금 재판 중이었던 2004년 8월 31∼9월 30일까지 한화가 보유한 자사주 850만주 중 262만주(주당 9160원)를 장남 동관씨 101억5840만원,둘째 동원씨 66억2250만원, 셋째 동선씨 66억2250만원 등 총239억9920만원에 매각했다.

또 이후 대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총수 일가 네 명의 부자 가운데 3명이 폭행사건에 연루되면서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화그룹의 대한생명을 둘러싼 정관계 로비 의혹들을 밝히는 것은 재계와 일부 언론들이 제기하는 것처럼 시장질서 위배고 정치감사인 것일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시장질서인지, 스스로 반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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