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1돌 한글날]'촌스럽다'…우리말 버리는 우리나라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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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1돌 한글날]'촌스럽다'…우리말 버리는 우리나라 기업
  • 유경표 기자
  • 승인 2017.10.09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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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삭'·'통돌이' 우리말 브랜드는 세련되지 않다는 우리나라 기업…'창피하고 한심하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유경표 기자)

▲ 대우전자 '보송보송' 세탁기 광고영상 장면ⓒ유튜브 동영상 캡쳐

한글날이 올해로 571돌을 맞았습니다. 한글이 세계의 언어 학자들로부터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죠.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한글은 미술이나 패션 분야에도 쓰이는 단골 소재입니다.

반면, 우리말 상표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TV나 인터넷 등 미디어는 물론, 길거리의 간판까지 영어나 외래어로 표기된 상표들이 범람하고 있지만, 우리말 브랜드는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업계에선 국내 소비자들의 정서상 우리말 브랜드를 선보이는 것이 퍽 부담스럽다고 입을 모읍니다. 아직까지 한글로 된 우리말보다 영어나 외래어 브랜드가 더 세련돼 보인다는 인식이 남아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불과 십수년 전 만 하더라도 우리말 브랜드가 ‘대세’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가전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김치냉장고’ 분야에선 우리말 브랜드명 짓기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대유위니아의 김치냉장고 브랜드 ‘딤채’가 대표적입니다. ‘딤채’는 조선 중종 때 김치를 가리키던 옛말입니다. 1995년 당시 만도공조가 선보인 ‘딤채’는 김치냉장고의 대명사로 자리 잡으며 현재까지 브랜드파워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도 1997년 김치냉장고 브랜드인 ‘다맛’을 선보였습니다. 한자어인 다(多)와 우리말 ‘맛’의 합성어로 ‘다 맛있다’는 의미입니다. 이후 2011년 삼성전자는 ‘아삭아삭하다’ 할 때의 의성어를 따서 지은 ‘지펠 아삭’ 시리즈를 내놓게 됩니다. 

LG전자는 1992년 ‘김장독’ 냉장고에 이어, 1999년 ‘칸칸 서랍식 김치냉장고’를 출시했습니다. 뚜껑을 아래에서 위로 들어올리는 종전의 방식과 달리, ‘칸칸 서랍식 김치냉장고’는 스탠드형으로 돼 있었습니다.

당시 소비자들에겐 생소할 수 있는 방식이었던 만큼, 친근한 우리말을 사용해 냉장고 이름만 들어도 단번에 형태를 짐작할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김치냉장고 뿐만 아니라, 세탁기와 청소기 등 생활 전반에 쓰이는 가전제품 이름에 우리말이 쓰였습니다.

1990년대 당시엔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사람이 하는 청소나 빨래법보다 미덥지 못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첨단과학과 전통적 방식을 결합했다는 의미를 전달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아가, 외우기 어려운 외래어 대신, 우리말로 제품명을 지으면 이름만 들어도 어떤 상품인지 쉽게 알 수 있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삼성전자는 1992년 ‘삶는’ 1994년 ‘신바람’, 1997년 ‘손빨래’ 등의 이름이 붙은 세탁기를 내놓았습니다. 대우는 ‘공기방울’, ‘보송보송’, LG는 ‘세개 더’, ‘통돌이’ 등의 이름을 붙여, 자사의 기술 이름을 보다 쉽게 전달하려 애썼습니다.

청소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말 이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삼성전자는 청소기 이름으로 우리말 '쎈'을 선택했습니다. 말 그대로 초강력 흡입력을 지녔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죠. 아울러 LG전자는 ‘동글이’, 대우는 ‘싹싹이’ 청소기 등 간단하면서도 재미있는 우리말을 사용했습니다.

이처럼 아름답고 재치있는 우리말이 가전제품 이름 또는 브랜드로 사용됐지만, 오늘날에는 이른바 '고급화' 마케팅을 이유로 우리말 브랜드를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말 브랜드는 외국어에 비해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훨씬 더 잘 담아낼 수 있는 만큼, 꾸준히 친근하고 정겨운 우리말 이름을 가진 제품을 만나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담당업무 : 재계, 반도체, 경제단체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원칙이 곧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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