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3 목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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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박근혜 재판’ 난항-역사적 심판을
´법치주의´ ´민주발전´ 큰 계기 돼야
´정치보복´ 논쟁넘어 법정참여 중요
2017년 10월 21일 (토) 이병도 시사평론가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시사평론가)

전직대통령도 불법을 저지르면 성역없이 사법처리되는 게 '법치주의의 확립'이고 민주사회의 성숙성을 반증한다. 중대한 범죄행위를 단죄하는 것과 '보복'은 엄격히 구분돼야 마땅함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재판을 '정치보복'으로 규정, 그 파장이 크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22부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제게서 마침표가 찍어지길 바란다"며 사실상 '재판부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반년간의 침묵을 깨고 법정에서 한 첫 발언이다. 그는 '고통' '참담' '비통' '무기력'이라는 단어를  동원,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즉, 자신의 구속과 재판은 정치 보복이며, 향후 재판부 판단도 인정치 않겠다는 배수진을 친 셈이다. 이는 재판 보이콧과 판결 불복까지 시사한 것이다.

그날은 박 전 대통령의 1차 구속만기일이었으나, 법원 결정으로 구속기간이 최장 6개월 연장된 뒤 첫 공판이 열린 날이었다. 법원이 2차 구속영장 발부 사유로 적시한 증거인멸 우려에 반발, 헌정유린과 국정농단, 부정부패 재판을 싸잡아 정치보복으로 규정한 형국이다. 지난 5월 재판이 시작된 이후 단 한 번도 신상발언을 하지 않았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재판과 관련한 소회를 밝힌 것이다. 그는 “재구속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도 했다. 자신에 대한 재판과 구속기간 연장을 정치보복이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결국 아예 재판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박 전 대통령은 그동안 검찰·특검 수사에도 응하지 않았고, 자신의 책임도 "모른다"는 식으로 일절 인정하지 않는 자세를  보여왔다. 재판이 시작된 후에는 헌재 탄핵 심판 때 출석을 거부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으며, 재판 지연작전을 편다는 의심도 샀다. 실제 과도한 증인 신청을 하기도 했다. 여기엔 1심 구속 재판 기한(6개월)이 지나면 풀려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 지난 16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구속 연장 후 처음으로 열린 80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뉴시스

변호인단도 박 전 대통령과 자세를 함께 했다. 유영하 변호사를 비롯한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 7명도 이날 모두 사임 의사를 밝히고 퇴정했다. 유 변호사는 "광장의 광기와 패권적인 정치권력의 압력 때문에 어떤 변론도 무의미하다"면서 “무죄 추정과 불구속 재판이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이 힘없이 무너지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그 결론에 이르렀다”고 항변했다. 심지어 "우리 사법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라는 발언까지 서슴치 않았다.

사법부와 주권자에 정면 도전하는 듯한 이같은 변호인단의 사임으로 향후 재판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변호인 사임 철회나 새로운 변호인 선임이 없으면 국선 변호인이 이 사건을 맡아야 하고, 따라서 재판은 상당 기간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시간 끌기와 버티기, 변명 등 으로 일관된 박 전 대통령 재판은 한동안 중단될 수밖에 없는 사태에 이르렀다.

사법투쟁과 정치투쟁

이같은 상황은 박 전 대통령이 사법투쟁에서 정치투쟁으로 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낳고있다. 자신이 직접 정치의 전면에 서겠다는 선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형사재판을 정치재판으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역력하다.

박 전 대통령이 속한 자유한국당마저 출당(黜黨)을 기정사실화하고, 세월호 참사 보고 시점 조작, 국가정보원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흑막 등 이른바 공작정치의 실상이 드러나기 시작한 상황에서, 코너에 몰릴 대로 몰리자 형사재판을 정치싸움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복안으로 비친다. 정치보복론을 내세워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수구세력을 선동해 정치적 부활을 꾀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비판론이 많다.

사법적 절차를 정치적 이슈로 돌려보겠다는 입장은 반헌법적 · 반법치적 작태가 아닐 수 없다.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고 믿을 수 없다"고 말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의 무죄 주장과 재판부 비판은 온당치 못한 측면이 크다. 누구보다 법치를 준수해야 할 전직 대통령이 도리어 법 절차를 무시하고 있기에 전직 대통령으로서 무책임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만약, 이번 재판이 정치 보복이라면 당초 자신이 속했던 새누리당 의원 다수가 탄핵소추에 찬성하고 나선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그런 물음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또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고 재판에 넘긴 검찰과 특검도 박근혜씨 자신이 대통령 시절 임명했던 사람들이다. '정치 보복' 이라 주장할지라도, 재판에 성실히 임해 증거를 내놓고 법 절차에 따라 밝히면 될 일이다.

모순된 양태

박 전 대통령은 18개 혐의로 기소돼  최근까지 80차례 공판이 진행됐다. 함께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 최순실·김기춘·안종범 피고인 등 공범들에겐 계속 실형이 선고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이뤄진 뇌물, 직권남용 등의 범죄에 법원이 속속 단죄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모든 책임은 저에게 물어 달라”며 관련 공직자와 기업인에 대한 관용을 요청하면서 자신의 혐의는 부인했다.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못한 배신으로 돌아왔다”며 모든 책임을 최순실에게 돌렸다. “재임 기간 그 누구로부터도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사실이 없으며 재판 과정에서도 해당 의혹은 사실이 아님이 충분히 밝혀졌다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국정농단 관련자들이 줄줄이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있는데도, 그저 '난 모르는 일'이라고 일관하고 있으니 참으로 앞뒤 말이 맞지않은 양상이다. 

그는 국회의원 234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탄핵안이 가결된 때도,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만장일치로 파면 결정을 한 이후에도, 온갖 죄목으로 구속 수감되고 나서도 시민들 앞에 제대로 사과 한마디 한 적이 없었다. 재임 중 “사법부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대한 도전이자 법치주의에 대한 부정”이라고도 했던 박 전 대통령. 그의 최근 '현장'은 더욱 모순이다.

   
▲ 지난 2013년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서울 연희동의 노태우 전 대통령 자택(위)과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뉴시스

대통령 彈劾史

적지 않은 국민이 우리 대통령의 불행한 역사를 되새기게 되는 상황이다.

지난 95년 12월  전두환씨가 노태우씨에 이어  구속 수감됨으로써, 국민들은 두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감옥에 갇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당시 오랜만에 국민 앞에 나타난 전씨의 성명내용은 국민들을 아연실색케 만들었다. 과거의 잘못을 뉘우쳐야 하는 역사의 죄인이란 인상은 전혀 없었다. 12·12, 5·17, 5·18 등 자신이 주도했던 사건에 대해서는 사죄나 사과는 커녕,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않고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자세와 태도는 국민감정을 완전히 무시한 것으로 역사와 국민 앞에 죄값을 치르겠다는 진정한 모습이 아니었다.

또한, 전씨는 첫날 재판에서 뇌물임이 분명한 비자금에 대해서까지 총선자금,정치자금이라 강변하며 지난날의 그릇된 관행에 책임을 전가하는 떳떳지 못한 자세를 보였다. 새삼 '역사바로세우기'가 얼마나 힘든 과업인가를 느끼게 했다.

그 뿐 아니었다. 전씨의 이런 자세는 오늘의 '박근혜 상황'과 비견될 정도로 점입가경이었다. 96년 4월 12·12,5·18사건 5차공판에서 전두환피고인 변호인들이 집단퇴정소동을 벌임으로써 공판진행에 차질을 빚게하는 일도 벌어졌다. 한국 형사재판사상 군사독재정권시절의 시국사건에서 변호인들이 퇴정한 경우는 있었지만, 강압 분위기 없이 피고인의 변론권이 자유롭게 보장된 법정에서 변호인들이 집단퇴정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당시 변호인들은 "검찰이 공개된 법정에서 단지 소문에 근거해 국가원수를 모독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흥분하면서 재판부에 재판중단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퇴정했다. 전씨는 전직대통령이지만 당시는 분명 형사재판 피고인 신분이었다. 각종 의혹들을 사법적으로 가리자는 재판에서 국가원수 모독 운운하는 것은 재판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자세와 다를 바 없었다.

12·12, 5·18사건 재판은 단순한 형사사건재판이 아니었다. 이 나라의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아 밝은 내일을 기약하자는 역사적 소명을 띤 재판이었기에 더욱 문제가 심각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도 6공 당시의 율곡사업, 원전건설, 신공항건설, 고속철, 제2이동통신 등 대형 공공사업과 관련된 뇌물 특혜 시비와 함께 토지 빌딩 증권 등 여러가지 형태로 은닉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축재 상황과 관련, 국민에 대한 사과성명이나 소명서가 매우 불성실해 비난이 쏟아졌다. 이것이 한국 전직 대통령의 탄핵 역사다. 나라의 최고통치자인 대통령과 관련된 한국 현대사가 그만큼 굴절이 심했음을 반영한다.

탄핵제도 뿌리

최고 민주 법치주의 선진국 미국의 대통령 탄핵사는 한국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미국헌법 2장4조는 “대통령,부통령및 모든 공직자는 반역죄, 수뢰죄 혹은 다른 중·경죄로 탄핵받고 유죄심판을 받음으로써 면직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역사 2백수십년에 법관 몇명이 탄핵됐을 뿐 대통령이 탄핵된 예는 없다. 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하원의 탄핵 발의후 상원이 심판하기 전에 스스로 물러났다. 더 멀리 1868년 앤드루 존슨 대통령의 경우, 상원의 탄핵심판이 단 1표 차이로 부결됐었다. 결국 탄핵은 실제로 발동돼서가 아니라 그런 제도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힘이다.

사실, 한국의 탄핵제도 역사는 미국보다도 훨씬 뿌리가 깊다. 아스라한 신라시대부터 왕이나 고관의 잘못을 논박하는 관직을 두어왔고, 조선의 사헌부·사간원이 그 원조의 맥을 이어온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박 전  대통령은 크게 반성해야 한다.

법치주의 기본원칙 충실을

일부 친박인사들의 극단적 입장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최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정치적 음모’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을 탄핵한 주체는 정치권이 아니라 헌법재판소다. 사건 심리 결과 역시 사법부의 판결로 공표될 것이다.

'법치주의' 확립발전을 지향하는 국가에서 사법 체계의 한 축을 이루는 박 전 대통령 변호사들이 그의 '재판거부'를  말리지는 못할지언정, 오히려 거들고 나선 것은 '반(反)법치 사태'로 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이번 재판은 국민 앞에 실체적 진실을 명백히 드러내야 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변호인들은 다시 법정으로 돌아와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증거를 토대로 주장을 펼치고, 결백이 있다면 이를 토대로 결백을 입증하면 된다. '정치적 포석'을 하고 있다면,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억울함과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더라도 모든 항변은 법치주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사법불신 국론분열 자제해야  

지금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오랜 국정공백을 끝내고 국가를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시점이다. 박 전 대통령이 제기하는 '정치보복' 시비로 또다시 국론분열과 혼란이 증폭되면 국가 장래에 어떤 역기능적 사태가 오게될 지 아무도 예견키 어렵다.

박 전 대통령 탄핵과 이후 재판과정에서 불거진 보혁 갈등이 더욱 심화될 수 있음을 크게 유의해야만 한다. 사법 불신과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 언행을 자제해야 함은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재판에 대한 반발과 재판부에 대한 압력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진실된 속죄일 것이다. 역사와 국민앞에 솔직하게 모든 것을 고백하는 자세로의 전환이 강력히 요구된다.

‘박근혜 재판’은 역사적 재판이라고 불린다. 국정 농단의 실체와 그를 향한 중대한 혐의들이 진실인지, 아니면 그의 주장대로 ‘정치보복’인지 명백히 규명돼야 한다. 박 전 대통령 스스로도 "역사적 멍에와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다"고 했다. 자신의 공과(功過)를 정확히 가르기 위해서는 법정에 끝까지 서있어야 하는 자세가 관건이다. 그의 목소리와 주장은 역사로 기록되고, 후세는 공평하게 평가할 것이다.

한편, 재판이 여론에 휘말려서도 안될 일이다. 재판 기록은 영원히 남는다. 검찰과 재판부 역시 역사 앞에 공정한 재판을 진행할 책무가 있다. 심판은 역사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모든 절차가 법리에 따라 공정하고 냉정해야 한다. 감정적이거나 정치보복이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오로지 '정치위에 법치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의 상황은 선진의 새 시대로 가는 전환기에서 지난 반세기에 걸친 후진시대의 마지막 허물을 벗는 고통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한 역사인식을 가지고 모두가 깨끗한 정치와 정의로운 사회, 일류국가를 새롭게 건설하는 과업에 나서야 한다. 여기에는 정직하고 깨끗한 정치를 이끌 정치지도자의 윤리와 도덕의 확립이 필수적이다. 이성으로 시시비비를 가려 하루빨리 역사를 바로잡고, 후손들을 위한 국가대계를 세우는 일에 나서는 것만이 전직 대통령들을 법정에 세운 아픈 교훈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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