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빌딩] ‘민추협’의 시작…민주화 투쟁 역사 담긴 그 곳
스크롤 이동 상태바
[대왕빌딩] ‘민추협’의 시작…민주화 투쟁 역사 담긴 그 곳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7.10.21 0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각 대왕빌딩에 ‘민주화추진협의회’ 사무실 들어서
전두환 정권 방해로 계약 해지당하고 쫓겨나기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민주화추진협의회 개소식에 참석한 김영삼 전 대통령 ⓒ 김영삼민주센터

19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울린 총성은 길고 길었던 군사독재의 종말을 알리는 듯했다. 10·26 사건 이후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되고, 김영삼(YS)·김대중(DJ) 등 민주화 투사들의 정치활동도 재개되면서 ‘서울의 봄’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군부가 일으킨 쿠데타는 서울의 온기를 금세 빼앗아갔다. 오히려 민주화를 열망하던 국민들을 더 깜깜한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전두환 정권은 5·17 비상계엄 확대로 더욱 철저히 민주화 투사들을 탄압했다. YS는 가택연금을 당했고, DJ는 ‘내란음모사건’ 주동자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난 뒤 미국으로 망명했다.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던 ‘쌍두마차’가 힘을 잃자, 재야·학생운동의 활기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그야말로 빛이 보이지 않는, 민주화 운동의 ‘암흑기’였다.

그렇다면 민주화 세력은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했을까. 이 의문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화추진협의회(이하 민추협)’ 단체를 만날 수 있다. 1983년 5월 18일, YS는 광주 민주화운동 3주기를 맞아 단식투쟁을 시작한다. 목숨을 건 YS의 단식은 전두환 정권을 놀라게 했다. 민주화 투사로 명망 높은 YS가 단식으로 목숨을 잃을 경우, 전두환 정권은 크나큰 정치적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YS의 단식투쟁을 계기로 야당인사 탄압 정책을 완화한다. 이 틈에 YS와 DJ를 따르던 인사들이 힘을 합쳐 조직한 단체가 민추협이다. 

▲ 민추협 사무실이 있었던 대왕빌딩은 지금도 종각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시사오늘

하지만 민추협의 시작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1984년 5월에 만들어진 민추협은 변변한 사무실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두환 정권의 협박을 받은 종로의 건물주들은 민추협이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저었고, 민추협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건물을 얻었다가 나중에 계약해지를 통보받고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발길을 돌리기를 수차례. 어렵사리 사무실을 얻은 곳이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대왕빌딩이었다. 민추협 이름으로는 사무실을 얻기 힘들었던 이들은 홍인길의 이름을 빌려 대왕빌딩 옥탑방에 사무실을 차렸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건물주가 사무실 집기를 모두 들어내고, 출입문을 폐쇄한 뒤 엘리베이터까지 정지시켜버렸다. 민추협 회원들이 다시 13층까지 책걸상을 올려다놓자, 사람들을 고용해 입구를 막아서기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민추협의 실무를 담당했던 백영기 전 한국방송영상 사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한다. 

▲ 대왕빌딩 제일 위층에는 현재 스터디카페가 들어서 있다 ⓒ 시사오늘

“내가 민추협 대외협력국장이던 때다. 다들 민추협이라고 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홍인길 이름을 빌려서 내가 억지로 관철동 수협 건물 옥탑방에 사무실을 빌렸다. 그 건물 옥상에서 민추협 결성 전단지를 뿌리고 그랬다.

아무튼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돗자리를 깔고 신문지를 깔고 회의를 했다. 그래서 날 잡아서 집기를 다 올렸는데, 사실을 알게 된 건물주가 집기를 치운 후 엘리베이터를 다 멈춰버렸다. 그래서 ‘007 작전’처럼 꼭대기까지 책걸상을 올렸다. 나중에는 관리인이 고용한 사람들이 막아서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중에 경찰도 섞여 있었지 싶다. 확실히 확인을 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의심이 됐다. 전두환 정권의 집요한 방해는 그 이상이었으니까.”

이렇게 어렵사리 자리를 잡은 민추협은 이후 민주화 투쟁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민주제 개헌 1000만 명 서명운동’과 같은 시민사회에서의 투쟁은 물론, 1985년 제12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신한민주당의 모체(母體)가 되며 군사독재를 끝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말 그대로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한’ 조직이었던 셈이다.

한편, 대한민국 민주화의 한 페이지가 담겨 있는 대왕빌딩은 서울 번화가 중 하나인 종각 젊음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민추협 사무실로 활용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 제일 위층에는 현재 스터디카페가 들어서 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