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3 목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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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무인도에 가져갈 음악 ‘골드베르그 변주곡’
<김선호의 지구촌 음악산책(21)>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드미트리 시트코베스키가 연주
2017년 10월 26일 (목)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당신이 어쩔 수 없이 무인도에서 살면서 오로지 딱 한 가지 곡만 선택해서 평생 들으며 살아야 한다면 어떤 곡을 선택해서 듣겠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과연 어떤 곡을 선택해야 할지 참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경우라면 필자는 요한세바스찬 바하(Johann Sebastian Bach)의 골드베르그 변주곡(Goldberg Variations)을 주저 없이 선택할 것 같다. 어찌 보면 참으로 따분하고 어렵고 지루하고 그것이 그것 같은 음률의 변화, 같은 주제가 끝없이 약간의 변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묘한 음악이 바로 골드베르그 변주곡이다. 게다가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연주하는 것도 지루하고 어려워서 그런지 연주자도 별로 없고, 음반 역시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드미트리 시트코베스키의‘골드베르그 변주곡’음반.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주목받는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가운데 드미트리 시트코베스키(Dmitry Sitkovetsky)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주로 독일의 오르페오(Orfeo)라는 마이너 레코드 회사하고 한 때 녹음을 했었는데, 아마도 계약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이 사람이 연주한 음반이 여러 장 있는데, 그 가운데 비교적 연주와 녹음이 탁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바하의 골드베르그 버라이에이션이 그것이다.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본래 클라비어 곡으로서 괴텐 시대와 라이프찌히 시대에 대부분 작곡되었다. 특히 라이프찌히 시대에는 큰아들 프리데만(Wilhelm Friedemann Bach 1710년 11월 22일 - 1784년 7월 1일)*을 가르치려고 클라비어 곡을 작곡하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초보자들이 연습하는 2성과 3성의 인벤션은 연습곡이라 할지라도 아릅답고 훌륭한 이 시대의 곡이다. 다만 무곡 형식의 소곡을 모은 프랑스 조곡, 잉글리시 조곡, 반음계 환상곡과 푸가는 괴텐 시대 작품이다. 그리고 라이프찌히 시대에는 파르티타, 이탈리아 협주곡 등이 작곡되었다. 좌우간 이러한 클라비어 곡들 가운데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최고의 역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곡은 바하가 제자인 골드베르그를 위하여 작곡하였다는데, 본래의 곡명은 이단 건반의 합시코드를 위한 아리아와 변주곡이다. 곡의 시작을 알리는 아리아는 프랑스 사라방드 무곡 풍으로 아주 우아하고 감미로운 흐름이지만, 변주곡에서부터는 밝으면서도 웅장하고 변화무쌍 하면서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그리고 30개의 변주곡을 모두 지나고 나서 마지막으로 다시 처음의 아리아로 돌아와 감미롭고 조용하며 은은하고 장중하게 끝을 맺는다.

   
▲ 캐나다 출신의 글렌굴드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음악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마추어가 들을 때는 정말 피곤한 곡이다. 그 음률이 그 음률 같아서 별 변화 없는 음악이 지루하게 계속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곡을 지겹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10번 정도만 들어보면 그 섬세한 변화, 변화 같지 않은 변화, 미묘한 변화와 알 수 없는 깊이에 아주 매료되게 된다. 때문에 앞서 말한 대로 필자가 만약 무인도에서 평생 한 가지 곡만 들으며 살아가야 한다면 이 곡을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본래 클라비어 곡이기 때문에,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기분 좋으면 자기 혼자 궁시렁 궁시렁 대는 캐나다 출신의 글렌굴드 피아노 곡(1955년 연주와 1982년 연주 중에, 천천히 연주하는 1982년 연주 때 혼자 중얼거리는 대목이 많다)이 잘 알려져 있지만,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음반은 현악3중주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이다. 바이올린은 시트코베스키, 비올라는 제랄드 코세(gerald causse), 첼로는 미샤 마이스키(misha maisky)가 연주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연주하면서 중얼중얼 대지는 않는다.

이 음반은 변주곡을 비교적 무겁고 장중한 풍으로 연주하여 표현한 음반으로, 어떻게 들으면 오뉴월 개 혓바닥같이 축축 늘어진 느낌도 준다. 아마도 글렌굴드를 추모하기 위해서 낸 음반이기 때문에 분위기가 그런 것 아닌가 생각된다. 음반의 녹음상태는 비교적 말끔하고, 연주하면서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숨소리, 활의 보잉 소리, 첼로의 경우 악기가 움직여 몸이나 바닥에 살며시 부딪히는 소리 등 생생함까지 전해준다. 그러나 녹음 기술이 메이저 레이블과 같은 매끈한 맛이 덜하고, 약간은 디지털의 거친 인상도 준다.

한편 시트코베스키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또 하나가 있는데 이것은 1995년 녹음한 음반으로 NES 실내악단과 협연한 것이다 (NONESUCH 제작). 곡의 해석은 방정맞고 변화무쌍하여 이제야 변주곡다운 변주곡으로 돌아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두 음반을 비교해서 들어볼 때, 그 속에 숨어있는 이른바 '느낌'은 현악3중주가 휠씬 뜨겁게 가슴에 와 닿는다. 역시 추모를 위하여 진심으로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연주한 것은 무엇이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아무리 축축 늘어지는 느낌을 주더라도 말이다.

곁들여 골드베르그 변주곡이 영화 속에서 사용된 사례를 몇 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도 이 곡이 잠깐 연주되는데, 환자인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부서진 교회당에서 치료하고 있던 간호사가 교회 한 켠에 부서진 피아노를 발견하고, 그 피아노로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약 5초 정도 연주한다. 이 때 영국군이 들어와서

"독일군이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놀라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연주를 못하게 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 곡은 독일 사람이 작곡한 것이니 괜찮지 않나요?"

심각한 영화를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다.

반면 이 변주곡이 살벌한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쓰여 정말 잠을 청하기 위한 곡이 아니라 엄청난 공포감을 조성하는 음악으로도 쓰였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좋게 말하면 정신이상자인 주인공이 사람을 잔인하게 토막 내서 죽이는 각 장면마다 스산하고 음험하게 흘러나오는 곡도 바로 이 곡이다. 또 우리나라 영화 ‘설국열차’에서도 이 곡이 쓰였다. 열차안의 식물원과 수족관을 지나는 대목에서 챔밸로 연주로 아리아 부분만 조금 나오는데 음량이 너무 작고 분위기와 좀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아무튼 궁금한 것은 바하가 살아서 이들 영화를 봤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하는 점이다.

 

* Wilhelm Friedemann Bach

   
▲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마리아 바르바라 바흐 사이에 태어난 큰아들,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마리아 바르바라 바흐 사이에 태어난 큰아들이다.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는 아버지가 바이마르의 궁정악장으로 재직할 당시에 태어났다. 1720년 프리드만이 아홉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 마리아 바르바라가 사망했다. 그 다음 해에 아버지는 안나 막달레나와 재혼을 했다.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는 아버지로부터 초기 음악교육을 받았는데, 아버지 바흐는 아들이 10세 때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 Klavier-büchlein vor Wilhelm Friedemann Bach’이라는 훌륭한 피아노 소품곡집을 교육용으로 작곡해 주었다.

프리드만은 성장 후 작곡을 하며 오르가니스트로서 즉흥연주의 대가가 되었다. 1733년 드레스덴의 오르간 주자로 임명되었는데 그곳은 지나치게 이탈리아 음악에 치중하였고 선제후와 그 부인이 가톨릭을 우대하자 그 곳을 떠나 1746년 할레의 음악감독 겸 오르간 주자가 되었다. 그는 여기서 18년간 머물며 종교음악(칸타타)의 영역에 헌신했다. 한편 이보다 앞서 드레스덴 시대에는 기악곡(Sinfonia Concertante, 콘체르토, 클라비어 곡)을 주로 작곡했다. 1774년에는 베를린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프로이센 공녀 아멜리에의 환대를 받았으며 1778년 클라비어를 위한 8곡의 3성의 푸가를 그녀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당시 직업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불행하게도 극심한 가난 속에서 아내와 딸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 잉글리시 페이션트 (The English Patient)

스리랑카계 캐나다인 작가 마이클 온다체의 ‘The English Patient’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1996년 로맨스 드라마 영화이다. 앤서니 밍겔라가 각본, 감독을 맡았으며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하여 9개 부분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다.

*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

   
▲ 영화 <양들의 침묵> 포스터ⓒ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미국의 범죄 스릴러 소설가인 토머스 해리스가 1988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1991년엔 조너선 드미(Jonathan Demme)감독이 영화로 제작했다. 앤서니 홉킨스와 조디 포스터 등이 주연을 맡아 1992년 제64회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받았으며, 감독상·작품상·각색상까지 수상하였다. 전통과 보수성을 겸비한 아카데미상에서 연쇄살인 스릴러를 주제로 한 이 작품이 주요 상을 휩쓸었기에 지금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선호 / 現 시사오늘 음악 저널리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문학사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학석사
- 월드뮤직 에세이<지구촌 음악과 놀다> 2015
- 2번째 시집 <여행가방> 2016
- 시인으로 활동하며, 음악과 오디오관련 월간지에서 10여 년 간 칼럼을 써왔고 CBS라디오에서 해설을 진행해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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