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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청년은 그렇게 갔다... 故 김주혁을 위한 송사(送辭)
“우리에게 산자와 죽은 자를 가르는 150개의 스토리가 있다”
2017년 10월 31일 (화) 김기범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기범 기자)

   
▲ 아들의 인간적 매력과 연기자로서의 열정은 국민배우였던 아버지의 소산이었다. ⓒ 뉴시스

그의 아버지는 짐짓 보인 중후한 인상 속에서도 내면에 자리한 특유의 서글서글함을 늘 숨기지 못했다.

TV에서 아무리 무거운 캐릭터를 내뿜더라도 오히려 대중은 그의 아버지가 맡은 배역에 빨려 들어가는 감정 이입이 앞섰다. 아니,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가 발산하는 인간적인 매력들을 늘 사랑했고 존경했다.

연기자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자가 같이 CF를 찍고 난 후, 아들은 자신의 연기 입문을 그토록 극렬하게 반대했던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다.

고인이 된 국민배우 김무생의 아들은 그렇게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아버지는 연기에 대한 열정과 훤칠한 외모를 빼박은 아들이 지독히도 자신을 닮은 것을 걱정했을 것이다.

대중의 관심 속에 화려하게 사는듯해도, 자신과의 투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하는 가난한 연기쟁이의 삶을 정작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늘 그렇듯 혹자는 그가 유명 배우의 아들이라는 후광을 이용하지 않을까 시기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인심이란 게 그렇다.

하지만 애당초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려 TV 드라마 단역으로 시작한 그의 연기 인생은 녹록치 않았다.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보여준, 시인을 갈망했던 공대생의 고뇌는 어쩌면 당시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그의 실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연기자로서의 잠재력을 드러나게 했던 곳은 영화판이었다.

15년 전 <와이엠씨에이 야구단>에서 친일파를 처단하려 했던 열혈청년은 어느새 <싱글즈>의 능글맞고 로맨틱한 연애꾼으로 변모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은 엉뚱하지만 남다른 능력을 소유한 그가 언제라도 나타나길 바라는 주변인들의 바람이 녹아든 제목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처럼 자신을 먼저 챙기기 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속 깊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사랑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진솔한 남자의 모습을 <방자전>에 투영한 것처럼 말이다.

영화보다 상대적으로 인연이 없던 TV 드라마에서 그의 존재감을 각인시켜 준 것은 <프라하의 연인>이었다. 이 드라마는 그에게 첫 번째 연기상인 ‘SBS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비롯, 전통의 ‘백상예술대상’까지 안겨준다.

그러나 차분하면서도 로맨틱한 그의 캐릭터는 현대물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드라마 <무신>에선 고려의 격렬한 무인시대를 펼쳐 보였고, <구암 허준>에선 이미 38년 전 같은 배역을 맡았던 아버지의 체취와 함께 했을 것이다.

여느 배우들이 그렇듯 그도 잠시 예능으로 외도를 한 적이 있었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한국판의 첫 회 주인공은 바로 그였다. 그 코미디 무대에서 보여준, 무게 잡는 배우로서가 아닌 진정한 연기자로서의 끼는 오래지않아 공중파의 <1박 2일>로 옮겨 간다.

리얼 예능 프로에서 무거운 얼굴의 분장을 걷어낸 그의 모습은 천생 유쾌한 성격을 지닌 순수한 동네 청년이었다. 그는 중심에서 웃음을 이끌기보다는, 동생들이라 불렀던 이들의 장난을 뒤에서 무던히 받아가며 소소한 재미를 주는 자신의 몫을 다 했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배우였다.

적나라한 모습을 스스로 보여줄 수 있는 TV 예능과의 경계에서 마음을 접고 그가 다시 돌아간 곳은 영화였다.

<좋아해줘>를 통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 편안한 인상을 다시 보여준 그는 <비밀은 없다>와 <석조저택 살인사건>에선 비열한 악인의 모습을 연이어 표출하며, 자신만의 연기 폭을 넓혀간다.

며칠 전, 그는 ‘제1회 더 서울 어워즈’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이 상을 받게 해준 영화 <공조>에서는 극중 다른 두 주인공들이 보여주지 못한 악마적 카리스마를 선사했다. 이제는 배우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영화부문 수상이었다.

그래도 유작이 될 <흥부>에서처럼 애민하는 양반 같은 배역이 그에겐 제격인지도 모른다. 

   
▲ 故 김주혁. 향년 45세의 이 청년이 지녔던 따뜻한 가슴을 대중은 늘 기억할 것이다. ⓒ 뉴시스

제임스 딘처럼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가진 않았다.

다만, 그는 누구보다도 따스한 가슴을 적실 줄 아는 편안한 형이었고, 착한 동생이었으며, 기대고 싶은 오빠였다.

사실만을 쫓았던 기자의 숙명을 다룬 마지막 드라마 <아르곤>에서 “우리에게 산자와 죽은 자를 가르는 150개의 스토리가 있다”고 외친 것처럼, 그는 늘 사람만을 생각했던 이로 남을 것이다.

故 김주혁.

향년 45세의 이 청년이 이제 하늘나라의 부모님 곁에서 행복한 나날을 영원히 함께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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