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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 사람보다 시스템이 문제다
<기자수첩> 사람 바뀌어도 지속될 수 있는 시스템 마련 고민해야
2017년 11월 02일 (목) 정진호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민주주의가 최악(最惡)을 막는 제도라면, 정답은 명확하다. ‘시스템 정비’다 ⓒ 뉴시스

대한민국이 달라지고 있다. 한반도를 딛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대통령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지난 9년 동안 보수 정권이 저질렀던 비리 혹은 과오를 뿌리 뽑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전례 없는 대통령 탄핵을 목도(目睹)한 국민들은 적폐청산(積弊淸算) 작업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 2017년 후반기 대한민국의 상황도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적폐청산 작업의 무게 추가 인적쇄신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문재인 대통령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인사권은 7000여 개에 달한다. 장·차관을 비롯한 고위공직자,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등 헌법기관 고위직, 국립대 총장 등이 모두 대통령의 손을 거쳐 임명된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 개혁적인 인물들을 앉히는 방식으로 의도한 바를 이루려 하고 있다.

문제는 과연 이런 형태의 적폐청산이 지속성을 지닐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대표적 진보 논객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자신의 저서 <국가란 무엇인가>에 이렇게 썼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은 가장 훌륭한 사람을 권력자로 선출해 많은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사악하거나 거짓말을 잘하거나 권력을 남용하거나 지극히 무능하거나 또는 그 모든 결점을 지닌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이며 강점이다”라고 썼다. 요컨대, 누가 지도자가 되더라도 ‘최악’을 면하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제도의 장점이라는 의미다.

지금 문 대통령은 ‘많은 선을 행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5년 후 정권을 잡게 될 새로운 지도자가 문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7000여 개의 인사권은 또 다른 목적과 방식으로 쓰일 것이고, 문 대통령이 5년 동안 청산한 적폐는 다시 고개를 들 터다. 지금 같은 형태의 적폐청산은 일시적·단기적 효과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유 전 작가의 말처럼 민주주의가 최악(最惡)을 막는 제도라면, 정답은 명확하다. ‘시스템 정비’다.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하고, 고위공직자가 비리를 저지르고, 정경유착이 가능하게 돼 있는 법의 맹점을 제거하는 것만이 지속적·장기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길이다. 권력자 개인의 이상과 의지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진정한 적폐청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과정에서 시스템 정비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구태(舊態)를 답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도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할 수 있고, 얼마든지 ‘낙하산 인사’도 할 수 있으며, 삼권분립(三權分立)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시스템 개선보다 인적 교체에 방점을 찍고 움직여온 탓이다.

법을 어긴 사람들을 처벌하고,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인재를 배치하는 일도 중요하다. 다만,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유 전 장관이 강조했듯이 대통령을 잘못 뽑았더라도, 대통령이 인사를 잘못했더라도 ‘최악’으로 치닫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 마련도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한편으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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