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석 삼켰다 체했다’…M&A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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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석 삼켰다 체했다’…M&A 잔혹사
  • 차완용 기자
  • 승인 2009.07.13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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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로 덩치 키운 대기업들, 대부분 손해
한화·두산·금호 등 몸집불리다 유동성 위기 내몰려
무리한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만 키운 대기업들이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 M&A로 몸집을 불리는 등 외형 경쟁에 몰두했거나 경기 악화에 대비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사업영역 확장에 나섰다가 자금사정이 나빠진 것이다.
 

 
사실 ‘부실기업을 싸게 사는 것보다 우량기업을 비싸게 사는 게 더 현명하다’는 것은 M&A업계의 오랜 격언이다. 우량기업은 인수 비용을 단기간에 상쇄하고도 남을 수익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 알짜배기 M&A 매물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하는 압박감을 해소시켜주는 구세주이기도 하다.
 
신사업에 뛰어들어 단기간에 규모를 확보하고 업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오르는 데는 M&A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기업들은 잘 알고 있다.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고 시장 변화가 가속화된 상황에서 과거처럼 말뚝을 박아 공장을 세워 시작하는 방식은 성공 확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두산인프라코어 박용만 회장도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기술을 갖추고 시장을 넓히는 데 가장 빠른 방법이 그 노하우를 가진 업체를 인수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모든 M&A에는 불가피하게 위험이 따른다. “M&A는 신규사업 구축이 명백히 열등한 대안일 때 추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충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큰 위험은 지나치게 비싼 값에 기업을 사들이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승자의 재앙’이다. 고가 인수가 재앙을 부르는 과정은 간단하다.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빌린 돈의 이자를 부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게다가 모기업의 현금 흐름마저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그룹 전체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이뿐 아니다.
 
M&A 이후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핵심 직원의 이탈 가능성을 막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M&A가 단숨에 고성장을 가져다주는 ‘만능 해법’은 아닌 셈이다.
 
◇금호…재무적 투자자(FI)에 대한 과도한 의존

금호아시아나의 무리한 M&A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2006년 초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인 금호산업의 재무상황은 비교적 양호했다. 부채비율은 561.54%로 다소 높았지만 유동성 비율이 80.26%였다. 현금성 자산 등을 감안할 때 경영상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2008년 12월 연결감사보고서를 보면 유동성 비율이 60.93%로 떨어진 반면 부채비율은 831.10%로 치솟았다. 1929억여원을 기록했던 당기순이익도 같은 기간 1063억여원 적자로 돌아섰다.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년반 만에 대우건설 매각을 결정해야만 했다. 그 발목을 잡은것은 ‘풋 백 옵션’이다. 금호아시아나는 이미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3조원 이상을 ‘빚’으로 충당했다. 이에 따라 매년 이자를 지불하면서 향후 주식전환 가능성도 열어뒀다. 또 주가가 3년안에 이자를 보상할 수준으로 가지 못하면 차액을 물어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호아시아나는 지난해 1월 인수금액만 4조원을 들여 ‘대한통운’을 인수. 적정 인수금액 2조원의 두 배를 준 것이다.
 
◇한화…대우조선해양 인수 실패에 ‘골머리’

한화그룹도 대우조선해양의 인수로 호된 시련을 겪고 있다. 지난해 말 한화는 MOU(양해각서)에서 규정한 지급조건에 따른 자금집행이 회사의 재무상황과 경영에 심각한 영향을 칠 우려가 있다며, 지급조건을 완화해 달라고 대우조선 매각 주관사인 산업은행에 요청했다.
 

 
이에 산은은 일부 요청을 들어줬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잔금 분할납부 등 대금지급 변경 요청엔 거절했다. 때문에 한화는 대우조선해양을 포기하고 말았다. 업계에서는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실패를 ‘배보다 배꼽이 큰 인수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물론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탓도 있을 수 있다. 한화는 대우조선 인수자금을 마련하려고 장교동, 소공동 사옥 매각과 대한생명 지분 매각도 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와 주가하락 등으로 인해 자금 마련에 차질을 빚게 됐다. 현재 한화는 산업은행을 상대로 대우조선 지분인수와 관련 이행보증금 3150억원을 돌려받기 위해 소송을 벌이고 있다.

◇두산…밥캣인수하고 두산DST·KAI 등 매각 초읽기

두산그룹 역시 2007년 인수한 미국 소형 건설중장비 회사 밥캣으로 유동 위기설에 휩싸였었다. 두산그룹은 한 동안 금호아시아나그룹과 함께 재계 구조조정 1순위로 지목돼 왔다. 바로 지난 2007년 인수한 밥캣이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로 두산그룹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두산그룹은 지난 2007년 7월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엔진을 통해 미국 건설중장비 업체 잉거솔랜드의 세계1위 소형 건설 중장비 제조사인 밥캣 등 3개 사업부분을 49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산업은행 등 모두 12개 은행으로부터 모두 29억 달러를 차입했다.

이로 인해 두산그룹은 ㈜두산 계열사인 삼화왕관 사업부문과 버거킹·KFC 등 프랜차이즈를 보유한 SRS코리아, 방산업체 두산DST, 한국우주항공산업(KAI) 등을 매각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으며 무리한 M&A에 대한 부작용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대한전선…유동성 확보 비상 걸려

대한전선도 M&A를 통해 덩치를 키워오다 최근 유동성 위기에 봉착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기준자산총액 8조6000억 원으로 재계 25위(공기업 포함 32위)인 대한전선은 2000년 들어 국내 전선시장의 한계를 극복, 미래 성장을 위한 ‘사업다각화’를 추진해왔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전선사업이 자재와 건설 등 전체 시스템을 일괄적으로 공급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중견 건설사 인수를 시도해왔다. 2007년 10월에는 시공능력순위 99위인 명지건설을 인수했고 남광토건 인수전에는 직접 뛰어드는 대신 최대주주인 알덱스지분을 사들여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을 흡수했다.
 
하지만 지난해 전 세계 경제 위기와 특히 건설업계의 경영 악화가 대한전선에 악재로 작용하며 재무 부담을 증폭시켰다. 2006년 6310억 원이었던 대한전선의 총 차입금은 지난해 2조1500억 원 수준으로 약 4배 증가했다.
 
현재 대한전선은 상환우선주 발행, 계열사와 개발사업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유동성을 마련하는 데 비상이 걸린 상태다. 이를 위해 3500억 원가량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마무리했고 지난해 말 서울사옥을 950억 원에 매각했다.
 
◇유진그룹…하이마트 인수로 그룹에 부담

유진그룹도 대형 M&A를 통한 몸집불리기를 시도하다 암초에 걸렸다. 유경선 회장은 2004년 회장을 맡은 이후 대형 인수·합병에 적극 나섰다. 지난 2년간 유진의 인수·합병의 실적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2006년 서울증권(현 유진투자증권)을 1621억 원에 인수했다. 2007년에는 인수·합병의 절정을 이룬다. 2월에 택배업체인 로젠 지분(57.1%)을 294억 원에 사들였고, 8월에는 다시 물류업체인 한국통운과 한국GW운수를 인수하더니 12월에는 그룹 본체보다 몸집이 더 큰 하이마트를 2조 원에 사들였다.
 
하이마트 인수는 군납용 건빵을 만들었던 유진을 단번에 재계 30위권으로 올려놓았다. 대형 M&A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하지만 하이마트의 인수는 곧바로 그룹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하이마트를 인수하기 위해 유진이 자체 마련한 돈은 6000억 원이었다. 나머지는 금융권 차입(1조1000억 원), 전환사채 발행(3000억 원)으로 충당한 것이다.
 
이후 하이마트의 차입금 규모는 1조6500억 원 규모로 늘어났다. 유진은 하이마트의 수익성을 낙관하며 이자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크게 오판한 셈이다.
이 때문에 유진그룹은 현재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대주그룹…문어발 M&A로 그룹 해체될 듯

M&A시장에서 유진그룹과 더불어 중견그룹으로서 발군의 활약을 해왔던 대주그룹은 그룹자체의 존재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한때 대주그룹은 대주건설을 모태로 총 13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건설과 제지, 화재, 조선, 레저, 미디어 등 다양한 업종에서 맹위를 떨쳤다.
 

 
특히 두림제지, 대한조선, 다이너스티CC 등을 인수하면서 M&A시장의 신강자로 부상했지만 지나친 문어발 확장으로 탈이 나고 말았다. 더욱이 대주그룹은 국세청의 잇단 세무조사를 받고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추징액까지 떠안았다.

결국 대주그룹은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워크아웃 기업에 선정, 실상 그룹 해체위기에 직면해 있다. 최근 산업은행은 대주그룹 계열사로 워크아웃 진행 중인 대한조선에 대해 출자전환을 추진키로 했는데, 만일 출자전환이 완료되면 채권단은 지분 70%를 확보해 대한조선은 그룹 계열에서 빠지게 된다.
 
이로 인해 그룹 전체 신용공여액이 줄어들게 돼 대주그룹은 주채무계열에서 제외된다. 이럴 경우 채권단과 맺은 재무구조 개선 약정도 자동으로 중단돼 개별 기업별로 회생여부가 결정된다.
 
따라서 대주그룹은 대한조선 등 38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나 대한시멘트, YS중공업, 대주건설 등 주력 계열사들이 법정관리중이거나 퇴출결정이 내려진 상태여서, 주채무계열에서 제외될 경우 사실상 그룹도 해체될 전망이다.
 
◇LS그룹…SPSX사 인수 후 M&A 후유증

LS그룹이 세계시장 진출 강화를 목표로 추진했던 미국 수페리어에식스(Superior Essex, SPSX)사 인수 후 M&A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전선업계 사상최대 M&A'에 성공했지만, 이후 불어닥친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수페리어에식스가 적자를 기록한데 이어 인수과정에서 소요된 금융 비용부담이 늘어나면서 인수주체인 LS전선의 1분기 자본금이 크게 줄어드는 등 홍역을 치루고 있는 것.

LS는 인력 구조조정과 공장 폐쇄 등 비용절감책으로 맞서고 있지만, 'IMF 이후 최대 위기'라는 게 회사 안팎의 지적이다. LS는 하지만 이번 위기의 파고만 무사히 넘기면 수페리어 식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지 않고 있다.

LS전선이 지난해 미국 수페리어에식스 인수 후 이 회사 공장 3개를 폐쇄하고, 직원 200명을 해고했다는 사실이 3일 뒤늦게 밝혀졌다. LS전선은 이와 함께 해외공장 인력 50명에 대한 감원도 실시했다.
 
수페리어에식스에 대한 구조조정은 LS전선의 무리한 M&A에 따른 휴유증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LS전선은 연간매출 30억달러(약 3조7000억원) 규모의 북미 최대 전선회사 수페리어에식스를 인수하기 위해 주식공개매수의 방식으로 주당 45달러 가격에 지분을 사들였다.

이를 통해 수페리어에식스 지분 93.92%를 확보했지만, 이에 쓰인 비용만 9억달러(약 1조1100억원)가까이 된다. LS전선이 올 1분기에만 자본금 186억원을 깎아먹은 것도 수페리어에식스 투자에 따른 금융비용증가가 부담으로 작용한 탓이라는 지적이다.

수페리어에식스 인수건은 노사협상 테이블에서마저 문제가 됐다. 무리한 M&A로 발생한 실적 악화를 만회하기 위해 경영진이 노조에 임금동결 등 일방적인 부담을 강요한다는 불만이 터져나오면서 사측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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