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재벌들의 도덕성…'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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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재벌들의 도덕성…'어디로'
  • 차완용 기자
  • 승인 2009.07.13 1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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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家, 사라진 노블레스 오블리주
KT, 말뿐인 '윤리'…도덕불감증

우리나라 재벌들의 도덕적 불감증이 도를 넘고 있다.
최근 국내 제계순위 10위인 두산그룹의 창업주인 고 박승직씨의 증손이자 박용오 전 회장의 차남 박중원(40)씨가 허위 공시로 거액의 시세 차익을 본 혐의(증권거래법 위반 등)로 구속 기소됐다.

또한 지난달 LG그룹 방계3세 사업가 구본호씨(35)를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됐고, 한국도자기 창업주의 손자인 전 엔디코프 사장 김영집씨(35)도 업무상 횡령과 배임 혐의로 징역 3년6월을 받았다.

이와는 별도로 KTF와의 합병으로 거대 통신사로 거듭난 KT는 최근 전·현직 및 말단 직원까지 총 147명이 개입한 조직적인 비리가 검찰에 적발돼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KT의 경우 지난 1월 이석채 회장이 취임한 이래 연일 ‘올 뉴 KT(AII New KT)', ‘클린 KT 프로젝트(Clean KT Project)' 등 윤리경영을 외치고 있던 와중에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윤리 경영‘에 대한 의구심마저 일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KT는 이 회장 명의로 1매당 31만원의 오페라 공연티켓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의원 28명 전원과 정무위원회 소속 일부의원 등 총 40여명에게 2매씩을 돌려, 일부 의원들의 원성을 사는 등 망신을 당했다.  

이들 기업들에 다니는 일부 직원들은 “회사에서 이러한 사건인 터질 때마다 이 회사에 다닌 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진다”며 “일을 하는데 있어 능률도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즉, 재벌가들의 잘못된 윤리의식이 직원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일반 국민도 창피한 생각이 든다. 국내 내노라하는 재벌 그룹의 꼴이 이 정도라면 한국이라는 나라를 밖에서는 어떻게 볼지 뻔하지 않은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고위층의 도덕적 책임)'는  커녕 어떻게 일반인보다도 저급한 행태가 일어난 것일까.  

◇ ‘노블레스’는 없고 ‘저급 재벌’만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다수의 국민들은 ‘재벌’이라는 용어에는 상당히 익숙하다. 반면 ‘노블레스’라는 용어는 생소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재벌’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노블레스’라는 용어를 자연스레 사용하고 있다.
 
‘재벌’이라는 용어는 1950년대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이지만, 현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단어이다.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에 오른 몇 안 되는 한국어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재벌이라는 용어를 ‘한국의 기업에 존재하는 독특한 기업 지배구조 방식’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우리 사전에 ‘재벌’이란 ‘여러 개의 기업을 거느리며 막강한 재력과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기업가의 무리’라고 정의하고 있는 반면, 외국에서 재벌 대신 사용하고 있는 ‘노블레스’는 고귀한 신분, 귀족, 기품이 높음, 숭고함, 고결함 등을 뜻하는 사회 고위층을 일컫는다.

즉, 외국 재벌들은 ‘노블리제’라고 불리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반면, 한국의 재벌들은 단순히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 재벌들은 오래전부터 양면성의 문제가 제기돼 왔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순기능에 대한 평가가 있는 반면, 일부 역기능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들어 일부 재벌기업들의 부도덕한 일련의 사건들이 드러나면서 또다시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다.
 
◇외국의 대표적 노블레스, 발렌베리와 마이크로소프트
스웨덴의 대재벌 발렌베리는 소유 기업만으로 스웨덴 주식 시장의 절반을 구성할 수 있을 만큼 막강한 경제적 파워를 가지고 있으며, 150년 동안 스웨덴의 산업과 금융을 지배해 온 유럽 최고의 재벌 가문이다. 그러나 스웨덴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발렌베리는 유럽 최고의 재벌 가문이지만, 스웨덴 최고의 부자 가문은 아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자신들이 일군 부(富)를 발렌베리 재단에 기부해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특히 발렌베리는 스웨덴의 과학 기술 발전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데, 과학과 기술만이 스웨덴을 생존시키고 역동적인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초 과학 분야의 스웨덴 노벨상 수상자들이 모두 발렌베리 재단의 도움으로 초기 연구 경력을 시작한 과학자들이라는 사실이 과학에 대한 발렌베리 재단의 관심을 보여준다.

발렌베리 재단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크누트앤앨리스발렌베리 재단은 소유 자산만 300억 크로네(약 4조 200억 원)로 노벨 재단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이 재단은 발렌베리의 2세 크누트가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해 1917년에 설립한 것이다. 이후 크누트의 동생들도 자신들의 이름을 딴 재단을 각각 설립함으로써 재단을 통한 부의 사회 환원은 발렌베리 가문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발렌베리는 소유 기업의 경영 성과가 재단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사회에 환원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발렌베리 재단은 이렇게 쌓인 수익금을 스웨덴의 과학 기술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쓰고 있다.
 
 

▲ 빌게이츠  

또 다른 대표적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기업으로 꼽히는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노블레스’의 자격이 충분하다.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의 창립자인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악마, 독점왕, 세계 최고의 갑부, 그리고 세계 최고의 자선가 등 수많은 수식어를 가지고 다닌다.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 업계를 독점해 세계를 지배한다는 악평도 있지만 가장 존경받는 부자이기도 하다. 빌 게이츠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철저히 실천하며 상속세 폐지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등 미국 사회를 이끌어 가는 리더십을 보여 주고 있다.

MS는 운용 체계를 기반으로 소프트웨어 경쟁 업체들을 차례로 무너뜨렸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많은 악명을 얻게 되었다. 윈도우와 함께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팔아 경쟁 프로그램인 넷스케이프를 몰락하게 했고, 미디어 플레이어를 통해 리얼 플레이어를 파산 지경에 이르게 했다. 최근에는 검색 엔진 시장까지 진출하는 등 소프트웨어 왕국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2000년 1월 부인과 공동으로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해, 2004년 10월까지 220억 달러를 이 재단에 출연했다. 이 금액은 그들의 전 재산 460억 달러의 절반가량이다. 이와 같이 자신이 누린 특권을 사회에 환원하는 그의 태도는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어떻게 사회에 부를 환원하고 불평등을 개선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라는 그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빌 게이츠 재단이 관심을 쏟고 있는 분야는 개발도상국의 질병 치료, 교육, 도서관 확충 그리고 미국 북서부 지역의 발전이다. 이 중에서도 말라리아 백신 개발, 에이즈 퇴치 운동 등과 같은 질병 치료 부문에 가장 많은 기부를 하고 있다. MS의 빌 게이츠를 비롯한 미국 기업인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모습은, 기업이 사회에서 획득한 부를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그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긍정적인 이미지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 한국의 '재벌' 두산, 사라진 노블레스 오블리주
 

▲ 두산가 4세 박중원

이와는 반대로 한국의 ‘재벌’로 꼽히고 있는 두산과 거대 통신으로 거듭난 KT의 경우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두산가(家)의 4세 박중원(41)씨는 최근 코스닥 상장사에 투자한 것처럼 허위 공시해 주가를 띄우고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증권거래법 위반 등)로 기소돼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차남인 박씨는 2007년 2월 실제로 주식을 인수한 적이 없음에도 자기 자본으로 뉴월코프 주식을 인수하는 것처럼 허위 공시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또 뉴월코프를 운영하면서 회삿돈 36억원을 빼돌리고 미국계 부실기업을 인수해 회사에 65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적용됐다.

이외에도 두산그룹은 중앙대 법인을 인수하면서 김희수 씨가 학교재단 운영에 손을 떼는 대가로 그가 설립하고 운영하는 수림재단에 1200억 원을 출연하며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무엇보다 학교와 관련 없는 재단에 1200억 원을 출연하고, 학교 이사회를 내준 중앙대와 두산그룹과의 거래를 두고 ‘편법적 학교 매매’라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출연금을 받은 수림재단은 김희수 씨가 1990년 6월 세운 비영리 법인으로 학교법인 중앙대학교와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수림재단은 장학 및 연구 지원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되기는 했지만, 재단의 성격상 두산 그룹 출연금의 사용처는 전적으로 김희수씨에 의해 결정된다. 수림재단이 중앙대 발전과 장학금으로 출연금을 사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수림재단의 사업목적에 중앙대 지원과 관련한 명시적 규정또한 없다.
 
수림재단은 정관에 명기된 목적 외에는 돈을 사용할 수 없는 공익재단이기 때문에 장학금·학술연구비·교육기관·교원 해외연수 등의 지원을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어 중앙대에 직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해야 할 규정상 의무가 없다. 수림재단의 설립자인 김희수씨가 중앙대 재단의 전 이사장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두산그룹의 출연금이 중앙대에 지원된다고 할 수 없다.
 
◇ 거대 통신 공룡 KT, 말뿐인 윤리경영에 도덕 불감증

▲ KT 이석채 회장

KTF와의 합병으로 자산 19조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합병을 이뤄내 거대 통신 회사로 거듭난 KT의 경우 윤리적인 측면에서 큰 불감증에 시달리고 있다. KT는 지난 3월에는 과거의 습관과 체질을 탈피하고, 완전히 새로운 KT로 거듭나겠다며 '올 뉴 KT'를 발표했으며, 바로 4월에는 내부 혁신의 일환으로 생활 속에서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클린 KT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와 함께 이석채 회장은 정성복 윤리경영실장(부사장)을 외부영입하며 협력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임원 6명을 형사고발하고 19명을 징계 위원회에 회부했다. 사정의 무풍지대였던 KT가 내부 개혁을 시작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KT는 그 동안 '안에서 곪아터진 조직' 이라는 오명을 벗고 '깨끗한 기업' 이라는 이미지 변신을 하게 됐다.

하지만 이도 잠시. 불과 1달을 만인 지난 5월 19~20일 양일간에 걸쳐 KT는 이 회장 명의로 1매당 31만원의 오페라 공연티켓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의원 28명 전원과 정무위원회 소속 일부의원 등 총 40여명에게 2매씩을 돌려, 일부 의원들의 원성을 사는 등 망신을 당했다. 이도 모자라 KT는 본지가 취재를 요청하자 “전혀 그러한 사실이 없다. 모르는 내용이다”라며 숨기고, 거짓말하기에 바쁜 모습만을 보여 왔다.

이러한 KT의 도덕불감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최근에는 전·현직 및 말단 직원까지 개입한 조직적인 비리가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적발된 임직원만 147명에 이르는 데다,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한 혐의가 포착돼 보는 이의 혀를 휘두르게 했다. 특히 하급 직원에서부터 임원까지 금전이 오가는 그야말로 피라미드 조직처럼 전문적으로 돈을 나눠가진 것으로 드러나 도덕 불감증 헤이의 심각성을 알렸다. 이번 사건으로 KT는 이석채 회장이 취임 후 외쳤던 ‘클린경영’을 의심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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