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땠을까] ‘제3당 잔혹사’…존속기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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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땠을까] ‘제3당 잔혹사’…존속기간은?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7.12.08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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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제3당, 최소 1년에서 최대 8년… 안철수 위기감 고조시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한설희 기자)

87년 체제 이후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제·소선거구제가 형성되면서, 선거는 보수당(現자유한국당)-민주당(現더불어민주당) 거대 양당에게만 유리한 제도로 자리 잡았다. 그런 와중에도 국민들의 ‘새정치 열망’은, 제3당을 끊임없이 탄생시켰다. 하지만 양당제로 인해 소멸돼 갔다.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서 기대 속에 탄생한 제 3당은 최소 1년, 최대 8년으로 늘 짧은 역사에만 머물러왔다.

<시사오늘>은 이제는 한국 정치에서 사라진 정주영·김종필·노무현·이인제·정몽준·문국현의 ‘3당 잔혹사’를 돌아보고, 이것이 지금 제3당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국민의당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지 진맥했다.

▲ 한국 정치사를 스쳐지나간 제3당의 짧은 존속 역사. 안철수 대표가 중도통합에 몰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픽=시사오늘 박지연 기자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1992~1993)

‘대권 욕심’으로 시작해 ‘대권 실패’로 끝난 비운의 정당이다.

현대그룹의 창업주 정주영 회장은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 92년 2월 통일국민당(이하 국민당)을 창당했다. 정주영 이름값대로, 국민당은 창당 한 달 만에 3월 치러진 14대 총선에서 지역구 24석, 전국구 7석 총 31석의 의석수를 확보해 원내교섭단체가 되어 당당히 국회에 입성한다.

이 성과는 反YS, 反DJ 정서를 가지고 있던 TK·강원도·충청 지역을 집중 공략한 덕분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정 대표는 14대 대선에 출마했지만, YS·DJ에 이어 저조한 성적인 3위로 낙선하고 만다. 낙선 후 대통령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정 대표가 이듬해 2월 의원직을 사퇴하고 국민당 당사를 폐쇄하게 되면서, 국민당은 겨우 1년 만에 사라지고 만다.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 (1996~2004)

‘제3당 잔혹사’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정권 교체도 성공시킨 유일한 정당이다.

자민련은 96년 15대 총선에서 50석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탄생한 후, DJ의 국민회의와 연합한 ‘DJP연합’으로 정권도 획득하는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2000년 16대 총선 당시 결국 한나라당에게 보수표를 모두 빼앗기고 김종필의 정치적 기반인 충청에서 간신히 11석을 건지며 총 17석의 정당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후 공동여당이었던 민주당의 ‘의원 돌려막기’ 적선으로 4명의 의원을 포함시켜 간신히 원내교섭단체를 유지했지만, 2004년 노무현 탄핵 열풍으로 결국 김종필마저 낙선하며 초라한 성적으로 그 생을 다하고 만다.

노무현·이기택의 통합민주당 ​(1995~1997)

일명 ‘꼬마민주당’으로, 95년 12월 DJ의 국민회의와 분리된 민주당이 잔류파였던 노무현·이기택·김원기 등 의원들과 제3당을 유지했다. 15대 총선 당시 민주당 약세 지역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한계를 느낀 의원들은 대거 탈당 후 DJ의 국민회의에 입당했고, 결국 잔류파도 97년 한나라당의 전신이 되는 신한국당과 합당하며 막을 내렸다.

이인제의 국민신당(1997~1998)과 정몽준의 국민통합21(2002~2004)

이인제의 국민신당·정몽준의 국민통합21은 정주영의 국민당과 마찬가지로 오직 대선을 위한, 대선에 의한 ‘필요정당’에 불과했다.

97년 10월 이인제 당시 경기지사는  경선에서 이회창에게 패배한 후 독자적인 도전을 위해 당을 창당한다. 그러나 이 후보가 97년 15대 대선에서 DJ·이회창에 이어 3위로 낙선하면서, 98년 6월 지방선거와 7월 보궐선거에서 각각 1명, 0명의 초라한 성적으로 국민신당은 크게 쇠락하고 이듬해 소멸한다.

국민통합21 역시 2002년 정몽준 이사장이 16대 대선에 도전하기 위해 창당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 17대 총선에서 의원들이 모두 낙선하며 결국 해산된다.

문국현의 창조한국당 (2007~2012)

2007년 ‘기득권정치 타파’를 외치며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이 창당했다. 민주당 소속의 정범구 의원과 열린우리당 소속의 김영춘 의원이 입당하며 덩치를 키우는 듯 했지만, 17대 대선 실패로 세가 급격하게 기운 후 2009년 문국현 대표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하며 소수정당의 명맥만 유지하다 결국 2012년 19대 총선에서 소멸됐다.

◇ 안철수가 중도통합에 몰두하는 이유

요약하자면 모든 3당은 평균 약 3년의 존속 기간을 보이며 정치사에서 사라졌다. 이는 결국 안철수 대표에게 ‘중도통합을 통한 외연확장’이라는 메시지로 귀결됐다.

그나마 성공사례에 속하는 JP의 자민련마저 총선에서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와 양대 이념 정당의 벽을 넘지 못하고 소멸됐다.

그리고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JP의 자민련은 각각 호남, 충청이라는 지역 기반을 가지고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확보하게 됐다는 점에서 상당 부분 비슷한 양상이기 때문에, 자민련의 사례는 안 대표에게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안 대표는 지난 7일 “대한민국 정치 역사를 보면, 한마디로 3당 잔혹사”라며 “3당이 많은 국민들의 기대를 안고 탄생해 다당제가 됐지만 모두 중요한 선거를 치르면서 소멸했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며 이 같은 불안감을 내비쳤다.

이어 그는 “소멸한 3당들의 공통점이 외연을 넓히지 못하고, 인재를 영입하지 못하고 안주하다보니 중요한 선거 한번 치를 때마다 사라지고 했던 것”이라며 중도 통합으로 전국정당화를 이뤄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반복됐던 지독한 '3당 잔혹사'를 끝내겠다는 각오에서다.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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