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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정치’ 싫다며 ‘배제의 정치’ 하려는 유승민
<기자수첩> 중도통합당, 사람의 배제가 아닌 가치의 배제로 가자
2017년 12월 20일 20:54:49 한설희 기자 sisaon@sisaon.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 큰 정치는 인물의 배제가 아닌 가치의 배제에 있다.‘중도개혁보수’라는 가치, 즉 큰 본류(本流)를 잡았다면, 나머지의 지류(支流)는 흘려보낼 줄 아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덕목이자, 더 큰 정치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시사오늘 그래픽 김승종

바른정당 내부에서 국민의당 호남계의 대표격인 천정배·정동영·박지원 의원을 통합에서 배제하자는 ‘천정박 배제론’이 힘을 얻고 있다. 바른정당 의원들은 지난 18일 의원총회를 열고 통합반대파인 “천·정·박 등과는 함께 당을 꾸려갈 수 없다”는 의견을 모았으며, 유승민 대표 역시 이 배제론을 안철수 대표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승민 대표는 중도통합 논의 초반부터 ‘박지원 출당요구설’이 불거지는 등 호남계와의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는 ‘천정박’을 비난하고 나아가 배제하는 것이 유 대표의 보수성(保守性)을 강조하는 유일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유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홍준표 한국당 대선후보에게 “시중에선 유 후보를 ‘강남 좌파’라고 한다”는 공격을 받을 정도로, 보수성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보수의 적자’임을 자처하는 유 대표의 약점이자, 유 대표가 입버릇처럼 “강한 안보”를 외치게 만든 원인이 됐다. 햇볕정책을 만든 DJ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천정박은, 강경 대북론을 입에 달고 살아야만 하는 유 대표가 보수 이미지를 다지는 가장 손쉬운 제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호남계를 배제하고 가자는 유승민의 정치는 분명히 잘못됐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 목표는 중도개혁의 완성을 통한 ‘수구보수 종식’이라는 가치에 있기 때문이다.

두 대표가 만드는 중도통합당은 ‘사람의 배제’가 아닌, 종북 프레임·영남패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낡고 병든 보수를 끝내는 ‘가치의 배제’로 가야 한다.

1974년 8월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신민당 총재였을 당시다. YS는 박권흠 비서실장이 가져온 김종필의 ‘서산농장 비리사건’을 터뜨리길 거부했다. 군정종식이라는 큰 본류에 이는 곁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YS는 박 실장에게 "나의 투쟁의 대상은 박정희 군사정권이지 김종필이 아니다"고 말했다.

40년이 지난 2015년 6월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박권흠은 "3당합당 후 김종필이 YS를 지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면모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YS는 신민당 창당 시 그의 정치적 라이벌인 동교동계 외에도 박찬종·김창근 등 공화계 인사와 이철승·김수한 등 비민추협계 인사까지 모두 포용했다. 이 같은 행보는 결국 군정종식이라는 민주적 성과를 가져왔고, YS를 대통령 자리에 올려놓는 기반이 됐다.

이처럼 큰 정치는 인물의 배제가 아닌 가치의 배제에 있다. ‘중도개혁보수’라는 가치, 즉 큰 본류(本流)를 잡았다면, 나머지의 지류(支流)는 흘려보낼 줄 아는 것. 그것이 정치 지도자의 덕목이자, 더 큰 정치로 나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중도개혁이라는 가치에 동참하는지 제대로 묻지도 않았으면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 ‘우리 사람만 쓰겠다’식의 정치는 3류 정치에 불과하다.

   
▲ 유승민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으로 ‘배제 정치’의 당사자가 된 사람이다. 이런 ‘배제의 정치’를 겪었던 그가 같은 방식을 사용해 호남계 의원들을 공격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개혁보수가 아님을 증명하는 꼴이다. ⓒ뉴시스

그리고 이런 3류 정치에 피해를 봤던 것은 바로 유승민 자신이었다. 그는 지난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으로 ‘배제 정치’의 당사자가 된 사람이다. “국민들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유 대표는 당적과 원내대표직을 잃어야만 했다. 이런 ‘배제의 정치’를 겪었던 그가 같은 방식을 사용해 호남계 의원들을 공격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개혁보수가 아님을 증명하는 꼴이다.

품는 길은 번거롭다.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민주 사회에서 정당 정치를 위해 당연히 지불해야만 할, 세련된 정치의 세금이다.

스웨덴의 대표적 정치인 비그포르스는 ‘잠재적 유토피아’라는 개념을 통해, 정당은 이상적 가치를 세우고 현실에서 대화를 통해 그 가치를 끝없이 수정하며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두 당이 만들 중도통합당 또한 압박과 배제의 정치 없이, 서로를 공존과 협상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정치를 보여야 유권자의 표를 얻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현재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뿌리가 ‘反상도동계(이철승계)’였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올해까지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을 역임했을 정도로, 상도동계 핵심인물이 돼 있다. 만일 유승민 대표가 끝까지 ‘박정천’을 설득해 중도통합당을 만든다면, 이들이 후에 유승민계로 사람들 기억 속에 남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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