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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맑고 투명함을 접하고 싶다면…바바라 보니의 '은빛 목소리'를
<김선호의 지구촌 음악산책(24)>'날개 잃은 천사의 목소리' 바바라 보니(Barbara Bonney)
2017년 12월 21일 11:24:41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 바바라 보니(Barbara Bonney).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천사가 날개를 잃고 지구에서 노래를 부르며 산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할까? 조금 과장된 비유인지는 모르나 정말 천사의 목소리처럼 맑고 투명한 목소리를 가진 소프라노 가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소프라노 가수들은 고음역의 음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목소리가 맑은 편이다. 하지만 그 맑은 목소리를 가진 소프라노 가수들 중에서도 유난히 이 가수는 더 맑고 투명하다.

바바라 보니(Barbara Bonney).

그는 어느 언론사의 평론처럼 반짝이는 은빛 목소리를 지닌 소프라노 가수로, 목소리 좋다는 수많은 소프라노 가수 중에서도 그 맑고 투명함에 있어서는 가장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들리는 바로는 목소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 씀씀이도 그렇다고 한다. 내한 공연 당시 노래 연주 중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던 적이 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건 정말 얼굴 찌푸리고 생난리를 칠 일이다. 그런데 빙긋 웃고 말았다고 한다. 또 공연 중에 '여인의 사랑과 생애'를 부른 2부에서 한국 관객들이 노래 한곡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는 해프닝이 있었는데 그 때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한다.

본래 바바라 보니는 캐나다와 인접해 있는 미국 메인 주 태생이다. 그래서 어려서는 등산을 좋아하는 시골 처녀라는 별명이 지어졌다고 한다 ('보니'는 스코틀랜드 사투리로 '귀여운 처녀'라는 뜻).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느낌은 얼굴 모양이나 금발 머리 등에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풍취가 물씬 풍긴다. 나이는 제법 됐다. 1956년 4월 14일 생이니까 우리 나이로는 할머니 급이다.

사실 바바라 보니는 어린 아이와 장애인을 위한 음악치료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었고, 소프라노 가수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고 고백한다. 전공은 첼로였는데, 열아홉 살 때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로 왔고, 이때 악기를 가져오지 않았던 탓에 소프라노로 방향을 바꾸었다. 하기는 바이올린도 아니고 첼로라면 덩치가 커서 편히 들고 여행을 다닐 만한 것은 아니다. 그 덕에 오히려 자신에게 더 꼭 맞는 재능을 찾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녀가 1985년 취리히에서 장 피에르 폰넬(Jean-Pierre Ponnelle, 1932년 2월 19일 ~ 1988년 8월 11일, 프랑스인 오페라 연출가)과 함께 모차르트 오페라 시리즈를 진행 중이던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 1929년 12월 6일~ . 오스트리아의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와의 만난 것은 그녀에게 커다란 전기를 마련해 줬다. 아르농쿠르는 자신이 진행하는 모차르트 오페라들과 종교음악의 공연에 그를 기용했고, 그 후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 1930년 7월 3일 ~ 2004년 7월 13일, 독일 태생의 오스트리아 지휘자)와 '장미의 기사' 등을 연주하면서 독일 오페라와 리트의 전문가수로 자리 잡았다. 250회 이상 공연한 장미의 기사의 소피 역할은 그의 청순한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조금만 잘해도 중간은 간다'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선택하지 않고, 성공하기 힘든 독일 오페라와 리트를 선택했음에도 그녀는 성공했고, 또한 청순하고 맑고 투명한 목소리는 이미 '천사의 목소리'라는 찬사와 함께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여러 가지 음악 장르 중에서 바바라 보니의 투명한 음색이 정말 잘 어울리는 것은 가곡이다. 특히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는 거의 환상적인 천사의 노래라고까지 찬사를 보낼 만하다. 사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원명이 'Winterreise'인데 정확하게 해석을 한다면 겨울 여행이 더 맞는다 하겠다.

하지만 분위기를 생각해서 겨울 나그네도 그런대로 멋진 해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왕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이야기가 나왔으니 잠시 슈베르트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슈베르트는 어린 시절부터 늘 겨울과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가곡 속의 겨울 나그네는 살아갈 의욕을 잃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겨울날을 배회한다. 작곡가 슈베르트 역시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황량한 겨울 벌판을 맨발로 걸어가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였다.

   
▲ 슈베르트.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타인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고,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타인의 기쁨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저 그 옆을 스쳐 지나갈 뿐이다."

슈베르트는 인간의 원초적인 고독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그렇게 평생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 그는 방랑자 특유의 소외감과 상실감, 고뇌, 고독, 허무, 회한의 감정을 자신의 가곡 속에 담아냈다. 겨울 나그네는 허무주의적 낭만주의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은 음악들이 있지만 이처럼 철저하게 허무한 것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일말의 희망도 주지 않는다. 그의 방랑자는 늘 쓸쓸한 어깨를 하고 탄식과 체념 속에서 이 세상을 주유한다. 겨울나그네 중에서 '봄꿈(Fruhlingstraum)'을 보면 그것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본래 봄꿈은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 1794년 10월 7일 - 1827년 9월 30일)의 겨울여행에 곡을 붙인 연가(戀歌)곡 중 11번째 곡이다. 달콤한 추억을 회상하면서도 문득 솟구치는 아픔, 더 이상 다가오지 않을 희망 등에서 체념과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꿈인 듯 아닌 듯한 모호한 경계 속에서 있다가 깨어보니 참담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한때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고, 그것을 회상하며 또한 그리워하는 것이다. 찬란한 봄의 꽃밭, 아름다운 소녀의 미소와 키스가. 꿈속의 여인은 이미 떠났고 봄 역시 아직도 멀리 있다는 허망과 좌절. 그것을 다시 되새기는 청년의 아픔과 체념이 그야말로 절절하게 녹아있다.

Frühlingstraum

Ich träumte von bunten Blumen

So wie sie wohl blühen im Mai

Ich träumte von grünen Wiesen

Von lustigem Vogelgeschrei

Und als die Hähne krähten

Da ward mein Auge wach

Da war es kalt und finster

Es schrieen die Raben vom Dach

Doch an den Fensterscheiben

Wer malte die Blätter da?

Ihr lacht wohl über den Träumer

Der Blumen im Winter sah?

Ich träumte von Lieb um Liebe

Von einer schönen Maid

Von Herzen und von Küssen

Von Wonne und Seligkeit

Und als die Hähne krähten

Da ward mein Herze wach

Nun sitz ich hier alleine

Und denke dem Traume nach

Die Augen schliess ich wieder

Noch schlägt das Herz so warm

Wann grünt ihr Blätter am Fenster

Wann halt ich mein Liebchen im Arm?

봄 꿈

갖은 색깔의 꽃들을 꿈꾸었습니다.

마치 오월에 피었던 듯

초록 풀밭을 꿈꾸었습니다.

새들의 지저귐을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수탉들이 울 때

그때 나는 눈을 떴습니다.

그때 날은 춥고 어두웠고

지붕에서는 까마귀가 깍깍 대었습니다.

그러나 저 유리창에는

거기 누가 잎들을 그려놓았습니까?

겨울에 꽃을 보았던

꿈꾸는 자에게 웃는 것인가요?

나는 사랑과 사랑의 꿈을 꾸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의 꿈을

마음과 입맞춤의 꿈을

희락과 복락의 꿈을

그리고 수탉이 울 때

그때 나는 눈을 떴습니다.

이제 나는 여기 홀로 앉아

그 꿈을 생각합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습니다.

심장은 여전히 덥게 뜁니다.

언제 창문의 잎들이 푸를까요?

언제 내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을까요?

   
▲ 바바라 보니(Barbara Bonney).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다시 바바라 보니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보니는 지금까지 보아온 모습과는 달리 결혼 편력은 좀 다양한 편이다. 보니는 세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했다. 첫 남편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오스트리아 테너였고, 두 번째 남편은 스웨덴 출신의 유명한 바리톤 가수 호칸 하게고드였다. 또 세 번째 남편은 고음악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의 음악 매니저 모리스 휘태커였는데 최근 이혼하였다고 한다. 나이가 60세를 넘어서기는 했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할지는 모른다. 하기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서양 사람들은 결혼과 이혼을 '짝짓기 상대 바꾸기'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뭐 별로 대수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보니는 1997년 DECCA 와 전속 을 맺었는데, 그 이전에는 TELDEC과 계약해 예닐곱 장의 음반을 냈고 그가 노래 부른 것이 들어있는 음반은 약 60 장 정도가 된다. 독집으로 낸 주요 음반 발매 연도와 레퍼토리는 다음과 같다.

1995 하이든

1994 슈베르트- 아베마리아, 포레-피에 예수

1992 멘델스존

1991 모차르트 K479

1990 모차르트 K165-춤추고 기뻐하라

1989 바하 - 나의 마음은 피의 바다를 걷네

1988 요한 스트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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