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각목의 역사’ 되풀이한 국민의당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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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각목의 역사’ 되풀이한 국민의당의 운명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8.01.16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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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誤解)와 이해(利害)가 불러온 국민의당 당무위 촌극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 지난 12일 오후 3시, 국민의당 당무위가 시작됐지만 기자를 포함한 몇몇 관계자들은 인파에 떠밀려 회의장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찬성파 당원과 반대파 당원은 서로의 멱살을 잡으려 애썼고, 심각한 소란을 피우다 상의가 반쯤 벗겨진 채로 질질 끌려 나가는 한 남성 당원도 있었다.ⓒ뉴시스

2018년 1월 12일 오후 3시.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된 이후 보기 힘들었던 ‘동물 국회’가 근 6년 만에 기자의 눈앞에 펼쳐졌다. 국민의당 10차 당무위원회의가 열리는 246호 회의장 문을 사이에 두고, 의원·당원들의 거친 몸싸움과 폭언들이 오고 갔다. 회의실 안팎에서는 물리적 충돌이 발생해 당무위가 여러 번 중단돼야만 했다.

오후 3시에 회의가 시작됐지만 기자를 포함한 몇몇 관계자들은 인파에 떠밀려 회의장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통합 반대파 당원들은 문 앞을 점령하고 거친 욕설과 함께 “안철수는 사퇴하라”고 외쳤다. 찬성파 당원과 반대파 당원은 서로의 멱살을 잡으려 애썼고, 심각한 소란을 피우다 상의가 반쯤 벗겨진 채로 질질 끌려 나가는 한 남성 당원도 있었다.

이들은 “기자들은 들여보내야 할 것 아니냐”는 당 관계자의 호소에 “무슨 꿍꿍이길래 기자만 들어가라고 하느냐, 우리도 들여보내라”며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밀어붙였다. 이 때문에 통합에 반대하는 당무위원조차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문을 한 번 열 테니 못 들어간 사람들을 한꺼번에 밀어서 들여보내자”라는 한 관계자의 비장하고도 현명한 판단에 맡겨져, 기자는 몇몇 사람들과 ‘한 덩어리’로 묶인 채 문을 열자마자 던져지고서야 겨우 입성(入城)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자의 바람처럼 회의장은 평화롭지 못했다. 모 의원은 한 시도당위원장과 멱살잡이를 하다가 주변 사람들의 만류로 떨어졌다. 한 의원은 사람들을 밀치고 안 대표에게 달려가다 붙잡히기도 했다.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면서, 반대파 의원들은 소규모의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각각 의사진행발언과 모두발언을 하겠다고 나서 당무위 의결을 최대한 지연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들은 회의 중간마다 기자들을 만나 “의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반대파 의원들의 쉰 목소리가 안타깝게도, 75명 중 39명의 찬성표로 인해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결정하는 전당대회는 2월 4일로 결정됐다. 몇몇 반대파 의원은 “이대로 갈 일이 아니다”라며 결과를 인정할 수 없어 회의장 근처를 서성이기도 했다.

한 반대파 의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항변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73명이 모였는데 7~8명이 반대하면서 회의장을 나갔다. 우리가 세어봤을 때 의사정족수가 분명 안 됐는데, 안철수 대표가 서면을 통해 추가로 5명(찬성표)을 받았다고 하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의결됐다’고 말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안 대표는 당헌·당규 위반 가능성을 무릅쓰며 ‘비민주적 정당운영’을 몸소 보여주는 셈이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전당대회는 75명 중 ‘현장에 있던’ 39명의 찬성으로 의결됐다.

자세한 내막을 당무위 관계자에게 묻자, 그는 “(집계한)찬성 표 중 서면은 단 한 표도 없었다. 오히려 서면을 보낸 5명까지 포함하면 숫자가 늘어나야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중간에 나간 사람들 모두 ‘출석 카운트’하지도 않았다”며 “오히려 왔으면서 출석 표시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 아니냐”고 답답한 심정을 표했다.

▲ 오해는 소통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호남계와 친안계는 각각 올해 지방선거와 호남 지역구에 달린 이해(利害)관계가 다르기에 서로를 ‘보수야합’과 ‘지역주의’로 오해하고 있다. 다만 최근 안 대표의 행보를 보면 통합 추진 과정에 있어서 반대파 의원들을 ‘걸림돌’로만 여기고 소통을 포기한 듯하다. ⓒ뉴시스

결국 이는 오해가 불러온 촌극에 가깝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으니, 사소한 오해가 쌓여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것이다.

이 ‘오해의 굴레’는 당무위 한 시간 전 열렸던 의원총회에서도 나타났다.

통합 반대파 의원들은 “김동철 원내대표가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특위 구성에 있어 ‘친안파’만 추천했다”며 “당이 안철수 사당이냐”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는 같은 반대파인 조배숙 의원의 “오해가 있는 것 같다. 김 원내대표가 사법개혁특위를 저에게 처음에 요청 하셨지만, 제가 사정상 어렵겠다고 거절의 말씀을 드린 바 있다”는 말 한마디로 머쓱해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해는 소통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호남계와 친안계는 각각 올해 지방선거와 호남 지역구에 달린 이해(利害)관계가 다르기에 서로를 ‘보수야합’과 ‘지역주의’로 오해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최근 안 대표의 행보를 보면 통합 추진 과정에 있어서 반대파 의원들을 ‘걸림돌’로만 여기고 있는 듯하다. 찬성파만 모인 최고위를 소집하고, 주요 조직을 친안파 위주로만 채워놓는 것이 그 예다. 물론 당대당 통합에 있어 속도전은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분당을 당연한 결과처럼 여기는 것은 다른 문제다. 1976년 5월 신민당의 ‘각목 전당대회’, 87년 4월의 통일민주당의 ‘용팔이 사건’처럼 민주정치가 아닌 각목정치가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이제 여야는 지긋지긋한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 그렇다면 이젠 ‘소통의 의무’를 명시한 ‘정당선진화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좋은 통합은 절차까지 완벽해야 한다. 결국 분당되더라도 의원들이 품격 있게 대화로써 결론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회의 중간 유성엽 의원은 “사안이 의결되면 분당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안 대표가 지금이라도 제대로 할 생각이 있다면, 막걸리 한 사발씩 앞에 가져다 놓고 밤새 토론이라고 하고 싶다”며 소통의 가능성을 보였다. 결국 국민의당의 마침표는 안 대표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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