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비정한 군주는 권력을 얻었지만, 백성은 삶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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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비정한 군주는 권력을 얻었지만, 백성은 삶을 잃었다”
  • 윤명철 자유기고가
  • 승인 2018.02.0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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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를 배신한 비정한 군주 중종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자유기고가)

중종은 조선 최고의 비정한 군주다. 이복형인 연산군 폭정기엔 목숨을 부지하느라 구차한 삶을 마다하지 않다가 박원종을 비롯한 훈구파의 반정(反正)으로 뜻밖의 대권을 잡은 케이스다.

준비 없는 군주의 삶은 비참했다. 호랑이 같은 반정공신들의 기(氣)에 눌려 꼭두각시 임금 노릇이나 하면서 연명하던 허약한 군주가 바로 중종이다. 하지만 권력욕은 가득해 언제든지 공신제거 기회를 엿보던 권력의 화신이기도 한 이가 중종이다.

하늘이 중종에게 큰 선물을 줬다. 쥐구멍에도 해 뜰 날이 있다고 혜성같이 나타나 수면아래 잠자고 있던 중종의 권력욕을 자극한 이가 있다. 바로 조광조다.

무오사화로 권력에서 배제돼 귀양 온 김굉필의 지도하에 성리학의 도학정치에 도취한 조광조는 중종의 신임아래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그동안 훈구파에 눌려 굶주려왔던 중종의 권력욕을 채워주는데 앞장섰다.

물론 조광조는 자신만의 도학정치를 현실에 실현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 부패한 기득권 세력인 훈구파를 제거하기 위해 ‘현량과’를 시행하며 사림파의 세력 확장을 꾀한다. 중종도 환영했다. 그동안 왕의 권위를 무시했던 훈구파가 빨리 제거돼야 자신의 세상이 펼쳐질 것으로 확신했다. 자신의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본인의 뜻을 알아서 받들어주는 조광조가 어찌 안 예뻤겠는가.

중종의 후광으로 정국을 장악한 조광조는 개혁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 이번엔 훈구파의 아킬레스건인 ‘위훈 삭제’에 나섰다. 중종반정에 참여하지 않고 ‘무임승차’한 훈구의 정치 기반을 없애기로 한 것이다.

훈구파 입장에서 자신의 목에 비수가 꽂힐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들은 중종과 조광조의 관계를 세밀히 살폈다. 권력을 가져 봤던 기득권의 눈에는 양자의 미묘한 균열 현상이 보였다.

중종은 조광조를 왕권강화의 수단으로 여겼지만, 조광조의 눈에는 중종은 자신이 훈육해야 할 미흡한 제자에 불과했다. 조광조는 중종의 마음과 달리 매사 중종을 꾸짖으며 도학정치론을 강요했다.

여우가 비운 안방에 호랑이가 차지한다고 했던가? 중종의 뇌리엔 훈구파 대신 조광조가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새로운 정적(政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훈구가 중종의 내면을 정확히 읽어냈다. 이른바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을 일으켰다. 중종은 곧바로 조광조 제거에 착수한다.

▲ 중종과 훈구, 그리고 조광조 간의 정쟁은 50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여야 간 대결구도를 보면 그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사진은 전남 담양군 남면에 위치한 소쇄원 ⓒ뉴시스

 <중종실록> 중종 14년 12월 기사는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대간이 조광조의 무리를 논하되 마치 물이 더욱 깊어가듯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던 일을 날마다 드러내어 사사하기에 이르렀다. 임금이 즉위한 뒤로는 대간이 사람의 죄를 논하여 혹 가혹하게 벌주려 하여도 임금은 반드시 유난하고 평번(平反)하였으며, 임금의 뜻으로 죽인 자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대간도 조광조를 더 죄주자는 청을 하지 않았는데 문득 이런 분부를 하였으니, 시의(時議)의 실재가 무엇인지를 짐작해서 이렇게 분부하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사관의 눈에는 훈구파보다는 중종의 정략적 의도가 보였다. 비정한 군주, 중종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것이다. 특히 ‘아직 드러나지 않았던 일을 날마다 드러내어 사사하기에 이르렀다’는 대목은 현재의 정치상황을 외면하기 어렵게 만든다.

사관은 중종과 조광조의 사이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한다.

“전일에 좌우에서 가까이 모시고 하루에 세 번씩 뵈었으니 정이 부자처럼 아주 가까울 터인데, 하루아침에 변이 일어나자 용서 없이 엄하게 다스렸고 이제 죽인 것도 임금의 결단에서 나왔다. 조금도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니, 전일 도타이 사랑하던 일에 비하면 마치 두 임금에게서 나온 일 같다.”

이 사건이 바로 ‘기묘사화’다. 조광조를 제거한 중종은 권력의 화신으로 변모하며 왕권 강화에 전념한다. 이로써 중종이 조선 최고의 비정한 군주의 면목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중종의 뒤를 이은 명종 때에 이르자 ‘임꺽정’과 같은 도적떼가 도처에서 나타나 백성들을 더욱 괴롭혔다.

비정한 군주 중종은 권력을 되찾았지만, 백성은 삶을 잃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의 한 장면이다.

499년이 흘렀다. 탄핵정국으로 집권에 성공한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을 국정기조로 삼아 보수 야권을 최대한 압박하고 있다. 국민의 외면을 받은 보수 야권은 지리멸렬한 분열로 아직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양 세력의 처절한 정쟁은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반면 민생은 가상화폐 논란,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 사상 최고 기록을 갱신 중인 청년실업률, 강남 부동산 폭등 등으로 실종됐다. 여야 정치권은 중종이 조광조를 배신하면서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다는 역사의 교훈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외부 기고가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는 전혀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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