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의 뷰파인더] 영화 <흥부>, 빛바랜 한지 위의 ‘수묵담채화‘처럼
스크롤 이동 상태바
[김기범의 뷰파인더] 영화 <흥부>, 빛바랜 한지 위의 ‘수묵담채화‘처럼
  • 김기범 기자
  • 승인 2018.02.15 2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감독의 아름다운 그림 속에 갇힌 ‘민중‘이라는 서사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기범 기자) 

▲ 영화〈흥부〉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나 TV 드라마를 접하다 보면 구분에 있어 모호함을 느끼게 하는 장르들이 있다.

사극과 시대극이 그것이다. 

사극은 역사적으로 실재한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한다. 우리가 알던 역사에 작가나 감독의 상상력이 가미되지만, 어디까지나 고증에 근거를 둔다. 섣부른 접근은 ‘역사 왜곡’이라는 멸시가 따라 붙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시대극은 창작의 요소가 다분하다. 사실에 기초를 두기 보다는, 지나간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영화나 연극이 꾸며진다. 

가공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 때, 나름대로의 사회적 책임감이 앞선다. 으레 그렇듯, 역사란 후세들에게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담이나 구전 설화의 경우, 권선징악과 같은 선명한 주제의식이 서려 있어도 창작자의 욕구가 반영된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만큼 시대상을 반영하며 민중의 애환을 녹여낸다. 세상이 변해도 늘 우리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이유다.

14일 개봉한 <흥부>는 감독의 시선 위에서 작가의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작자와 연대 미상의 <흥부전>을 재해석한다.

세도정치가 극악으로 치닫던 시대를 살아가는 피폐한 민초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데에 있어 ‘홍경래의 난’과 ‘정감록’이라는 역사는 이야기의 기둥을 세우는데 분명 괜찮은 재료다. 여기에 <흥부전>의 원작자를 내세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오래된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를 상상해 보는 것도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출발한 영화 <26년>을 만든 조근현 감독은 <흥부>를 통해 자신의 역사관과 민중에 대한 메시지를 내비치려 했다. 그 메시지를 담는 그릇은 조 감독의 또 다른 전작인 영화 〈봄〉의 서정성이었다. 

<흥부>는 과대포장된 미장센과 의상으로 한껏 부풀려진 퓨전 사극에 지친 관객들에게 모처럼 질박하고 현실적인 색감의 시대극을 선사한다. 백성이 주인이라는, 식상하지만 절절한 주제의식을 한 편의 담백하고 순수한 수묵담채화처럼 비춰지게 한 것은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력이다.

특히, 대하사극에서 흔히 봐왔던 물량 공세나 처절한 핏빛이 스크린을 지배하지 않는 것은 <흥부>의 미덕이다. 다만 투박한 옹기처럼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담아냈다. 가난하고 척박한 조선시대 말기의 모습들이 때론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로 실제 민초를 그려낸 감독의 미감(美感)은 독창적이다.  

한 폭의 한국화처럼 정갈하고 수려하게 묘사된 조선의 산하 속에서,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이는 백성들의 꿈과 희망을 순박하게 보여주려 한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 영화〈흥부〉에서 백성을 사랑하는 양반으로 분한 故 김주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며 그렇게 영원히 관객의 배우로 살아남았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아쉬움은 존재한다.

배우들이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만큼, 관객들의 시선을 오롯이 집중시킬 수 있는 이야기가 현격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헌종의 시기를 발판으로 <흥부전>이라는 소설을 얹은 시도는 충분히 잔잔한 재미를 안겨 줄 수 있었다. 하지만 <흥부>는 그 모든 작업들이 한편으론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를 보여준다. 

이는 그림에 이야기가 갇혀있기 때문이다.

미술감독 출신 연출자의 섬세한 감각과 세련된 필치가 그려낸 민중이라는 주제는 마치 누런 흙빛이 감도는 빛바랜 한지 위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신문 사설을 보는 듯하다.

역사적 사실의 토대 위에 여러 가지 요소들을 엮어 하나의 가정(假定) 속에서 현실을 재조명하는 방식 또한 현재의 관객들에겐 식상하게 다가온다.

<흥부전>은 형제간의 우애를 내세워 도덕과 재물의 갈등에 선 인간을 해학으로 노래했다. 그러나 영화 <흥부>는 사회 변혁기의 민중 의식을 내세우면서 색채와 이야기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했다.

판소리계 소설인 〈흥부전〉은 구전 설화로 전해지다가 판소리로 불리면서 내용에 첨삭이 가해지고 형식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영화라는 장르는 그렇게 되지 못한다.

<흥부>가 감독과 작가의 실험으로만 끝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12세 이상 관람가.

 

뱀의 발 : 故 김주혁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 작품은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마치 유작임을 암시라도 하듯, <흥부>에서도 진정한 주인공은 그렇게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사라진다. 그러나 <흥부>를 단순히 고인의 유작으로만 칭할 필요는 없다.
故 김주혁은 <흥부>에서 특유의 인간미를 되살려 애민(愛民)하는 양반 ‘조혁’ 역을 맡았다. 그리고 그렇게 영원한 관객의 배우로 살아남았다.

 

★★★

담당업무 : 에너지,물류,공기업,문화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파천황 (破天荒)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