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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철과 정호준이 민평당에 몸담은 까닭
<기자수첩>정대철-정호준, 신파(新派) 최후의 계승자
2018년 02월 22일 20:10:39 한설희 기자 sisaon@sisaon.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DJ는 투쟁적인 성격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독재와 탄압의 시대가 그를 투사로 만들었지요.”

작년 9월, 정대철 민주평화당 상임고문은 <시사오늘>과의 만남에서 돌연 DJ를 ‘시대가 만든 투사’로 형용(形容)했다. 기자는 이 수사(修辭)를 그에게 그대로 돌려주려 한다. 정대철과 그의 아들 정호준은 ‘신파(新派)의 최후’라는 시대가 만든 정치인이라고.

   
▲ 정대철 고문은 DJ로부터 버림받았지만 끝까지 동교동계에 남았다. 게다가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한 민주평화당의 상임고문으로 나섰다. 그가 한국 신파(新派)의 끝자락에 서있는 계승자이기 때문이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신파(新派) 정치인 정일형-정대철의 등장

한국 민주 정치의 뿌리는 크게 구파(舊派)와 신파(新派)로 나뉜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독재와 탄압 정치에 반발한 인사들은 민주당 창당 과정서부터 구파와 신파, 두 파벌로 갈라져 매사 대립을 일삼았다.

구파는 윤보선·신익희·조병옥·유진산 등 지주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이거나 해외 유학파가 다수였다. 이들은 탄탄한 정치 자금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이 구파에 속하는 유진오 전 신민당 총재 등 진산계 정치인들은 김영삼 전 대통령(YS)와 인연을 맺고 이후 상도동계의 뿌리가 됐다.

반면 故정일형 박사를 포함해 박순천·장면·오위영·조재천 등 법조인 출신이 주류를 이뤘던 신파의 계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동교동계로 이어졌다. 이후 YS는 구파, DJ는 신파의 상징으로 남았다.

이 정일형 박사의 아들이 바로 전 국민의당 상임고문이자 현재는 민평당 고문인 정대철이다. 그는 1977년 아버지 정일형의 지역구인 서울 종로구·중구를 물려받으며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DJ의 최측근으로 활약했으며, 2년 전 민주당에서 분리된 동교동계와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그러다 분당사태가 벌어지자 ‘DJ당’으로 불리는 민평당에 몸을 담았고 창당식에서 당기(黨旗)를 흔들었다.

   
▲ 정 고문은 신파에게 강한 소속감을 느꼈고 그만큼 그 계보를 사랑했다. 그리고 정 고문의 바통을 현재 아들인 정호준 전 의원이 이어받았다. ⓒ뉴시스

◇ “계보 지키기 위해 사생아까지 키워”… 정대철의 ‘계보 정치’

정 고문은 DJ의 당선에 기여했지만 이후 1998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감옥에 가야 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정대철이 DJ에게 버림받았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는 작년 9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DJ 당선 후 감옥에 갔다.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로 가 있을 때였는데, 대통령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말을 옮겼다. 나는 DJ에게 나쁜 것은 나쁘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라, 괘씸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감히 네가?’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한 그는 본지와의 만남 당시 “93년 YS가 부르더니 ‘한 자리 주겠다’며 국무총리직을 제안했다”고 밝히며 “결국 거절했지만, 인간적인 매력은 확실히 YS가 더 컸다. 결국 내가 감옥에 가자 YS가 ‘거 봐라’하면서 놀렸던 그런 기억도 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YS에게 인간적 매력을 느꼈고 가깝게 지냈지만, 또 DJ로부터 크게 버림받았지만 끝까지 동교동계에 남았다. 게다가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한 민주평화당의 상임고문으로 나섰다. 이 모든 것은 단순히 그가 동교동계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이제는 한국 정치에서 소멸한 ‘신파’의 끝자락에 서있는 유일한 계승자이기 때문이다.

정 고문은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사실 신파의 거목(巨木) XXX의 사생아를 내가 몰래 키웠다. 사실이 알려지면 그의 앞날과 나아가 계보 전체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자처한 것이다.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그 아이를 찾아가 ‘내가 아버지다’라고 말했다. 가끔 장난감을 사들고 아이를 방문해 함께 놀아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내가 숨겨둔 자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분노하며 ‘이혼하자’고 했다. 결국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느라 진땀 뺐던 기억이 있다.”

그는 신파에게 강한 소속감을 느꼈고 그만큼 그 계보를 사랑했다. 그리고 정 고문의 바통을 현재 아들인 정호준 전 의원이 이어받았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국민의당으로, 또 민주평화당으로 당적을 옮기며 서울시당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호남 지역구 의원도 아닌 정 전 의원이 주변의 반대에도 민평당을 택한 이유 역시 아버지의 신파 계승에 있다는 분석이다. ⓒ뉴시스

◇ 정호준, 신파 최후의 문지기가 되다

정호준 전 의원의 민주평화당 행이 결정되자 당시 <시사오늘>과 만난 국민의당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기도 했다.

“정호준이 참 아깝다. 어쩌자고 사지(死地)인 민평당으로 들어가나. 무작정 아버지만 따라 갈 일이 아니다. 그의 측근들이 설득하려고 해봤지만, 결국 ‘이빨도 안 들어간다’고 말하더라. 이해가 안 된다.”

호남 지역구 의원도 아닌 정 전 의원이 주변의 반대에도 민평당을 택한 이유 역시 아버지의 신파 계승에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정 고문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정치를 관두니, 삼성전자 팀장으로 잘 나가던 아들이 ‘아버지가 관두시니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나섰다”며 “내가 10년 더 있다가 40살 넘어서 하라고 말렸는데도 ‘그럼 아버지는 왜 했습니까’하고 나와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제 한국 정치에서 신파는 문을 닫는다. 최후의 최후, 정대철 고문과 정호준 전 의원만 남은 상태다.

신파와의 작별 인사. '명분 없는 반대'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 전 의원이 보수와의 합당을 거부한 채 범여권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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