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정치상식] 이기택은 상도동계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잘못된 정치상식] 이기택은 상도동계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8.03.03 1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진오 추천으로 공천…신도환계에 속했다가 독자 세력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에 대한 형용 중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있다. 바로 상도동계라는 설명이다 ⓒ 뉴시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어 몇 자만 입력하면 감당할 수 없는 텍스트가 쏟아지는 세상이다. 그러나 정보가 흘러넘치는 만큼, ‘제대로 된’ 정보가 무엇인지를 분간하기는 더더욱 어려워졌다. 이런 이유로 <시사오늘>은 잘못된 정치상식을 바로잡는 ‘정치정보 팩트체커’ 역할을 하기로 했다. <시사오늘> 팩트체크의 여섯 번째 주제는 ‘이기택은 상도동계인가’로 잡았다.

2016년 2월 20일. 한국 정치사의 거목(巨木)이 쓰러졌다. 故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함께 야당사(野黨史)에 큰 족적을 남긴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향년 79세로 눈을 감은 것이다. 큰 인물이 떠나는 길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남는다. 이기택에게도 수많은 이야기가 따라붙었다. 많은 언론들은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4·19의 주역, 7선 의원, 전(前) 민주당 총재, 상도동계…."

그러나 이기택에 대한 형용 중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있다. 바로 상도동계라는 설명이다. 상도동계는 YS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 했던 정객(政客)들을 가리키는 말로, YS의 자택이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故 김동영 의원, 최형우 전 내무부장관, 김덕룡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이 대표적인 상도동계로 꼽힌다.

하지만 이기택은 이들과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인물이다.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4·19 혁명을 주도했던 그는, 1967년 제7대 총선에서 고려대 은사인 유진오의 추천으로 신민당 전국구 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발을 들였다. 정치 입문 이후에는 계속 신도환계에 속해 있다가, 1979년 신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원외위원장들을 모아 당권에 도전하며 독자 계보를 만들었다. 이후 신민당 사무총장과 부총재를 거치면서 거물 정치인 대열에 올랐다.

아마도 언론이 이기택을 상도동계라고 표현하는 것은 1979년 이후의 행보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기택이 YS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79년 5월에 있었던 신민당 전당대회 때다. 이철승·김영삼·신도환과 함께 당수 경쟁에 나섰던 이기택은 1차 투표에서 이철승 292표, 김영삼 267표, 이기택 92표, 신도환 87표라는 결과가 나오자, 2차 투표 때 “나도 민주 회복 대열에 서기로 했다”면서 YS 지지를 선언했다. 이기택의 지지를 받은 YS는 이철승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신민당 총재 자리에 올랐다.

전당대회에서 큰 도움을 받은 YS는 이기택을 부총재로 임명하면서 ‘보답’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독자계보의 수장으로서 YS를 지지한 것이다. 어쩌면 이기택의 비서로 활동했던 박관용이 3당합당 후 YS와 함께하며 문민정부 초대 비서실장과 국회의장을 지낸 것 때문에 이를 하나로 묶어 ‘상도동계’라 표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시간만 나면 이기택과 만나 ‘신도환과 당신은 성향이 맞지 않는다. 정치적 성장을 원한다면 그 계보에서 나와라’며 상도동과의 인연을 권했다. 그때마다 이기택은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나를 잘 챙기는데 인간적 도리상 탈퇴하기가 힘들다’고 말하고는 했다.”

상도동계의 핵심인사였던 유성환 전 의원이 2010년 <시사오늘>과의 만남에서 들려준 증언이다.

이후 신군부에 의해 정치활동 규제를 받았던 이기택은 해금 후 통일민주당에 입당, 다시 YS와 인연을 맺는다. 또 그는 1987년 대선을 앞두고 DJ가 탈당, 평화민주당을 창당했을 때도 계속 통일민주당에 남아 있었다. 실제로 이기택은 1987년 대선이 끝난 후에도 당에 남아 부총재와 원내총무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 YS가 3당 합당을 결행하자, 노무현·김정길·홍사덕·이철 등과 함께 민주당(일명 꼬마민주당)을 창당하면서 YS와 완전히 결별했다. 이기택이 실질적으로 YS와 함께 정치를 했던 기간은 채 5년이 되지 않는 셈이다. 정치 입문 과정으로 보나 전체적인 정치 역정을 보나, 이기택을 상도동계로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김덕룡 민평통 수석부의장은 이와 관련, 2016년 <시사오늘>과의 만남에서 “이기택은 단 한차례도 상도동에 몸담은 적이 없다. 그는 늘 독자 세력을 모아 정치를 하려고 했다”며 “그가 어느 계보 정치인이었냐고 굳이 묻는다면 ‘신도환계’였다”고 전했다.

Fact – 이기택은 상도동계가 아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