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미투는 ‘강간문화’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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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미투는 ‘강간문화’에서 왔다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8.03.04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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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인 아니고 강간범, 예술 아니고 폭력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너는 잘 살 것이다. 성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잘 살 것이다. 학교는 고작 8개월의 징계를 내렸고, 법원은 네가 군입대할 경우 피해자인 나와 자동 격리된다는 네 변명을 받아들여 징역 6 개월, 집행유예 2년을 벌금 700만 원으로 깎아주었기 때문이다.(…)이렇게 말도 안 되는 곳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르고도 너는 잘 살 것이다.
사내새끼가 그럴 수도 있다고 용인되는 곳에서 너는 참 잘 살 것이다.(…)범죄자인 네가 복학을 한 이유, 내 지인과 연락을 하는 이유, 떳떳하게 고개 들고 다니는 이유는 달리 있지 않다. 네게 강제추행은 잊혀질 일이고, 한때의 치기인 일이고, 그리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2016년 10월 고려대학교 학내 성폭력 사건 피해자 대자보 中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모두의 관심은 상대 여성이 누구인지에 쏠려 그저 흥밋거리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왔던 것을 수도 없이 봐왔던 터였다. 누구도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여성은 어느새 함께 일하기 불편하고 예민한 여성으로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당하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었다.(…)모든 사람 앞에서 ‘너는 여기 있는 애들의 50프로야’라고 확신에 차 말하고 있는 부장보다, 그 옆에서 연신 머리를 끄덕끄덕 하며 ‘옳으신 말씀이야. 새겨들어’라고 말하던, 평소 가장 점잖다고 생각하던 바로 윗선배 A의 모습이 여자에게는 더욱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서지현 검사가 검찰 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 中

그들은 예술을 자기정당화 수단으로 남용한 기득권층에 불과하다. 그들이 매일 예술을 통해 부조리함을 고발했던 사회의 기득권층이 바로 본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었다. 고매한 예술로써 사회를 비판하면서, 무대 뒤편에선 약자들을 희롱하고 성적으로 착취한 모습은 마치 한 편의 부조리극을 연상시킨다. ⓒ시사오늘 그래픽 김승종

‘미투’의 원인, 가해자를 만든 강간문화

‘강간 문화(rape culture)’란 70년대 말 미국 페미니즘으로부터 유래된 용어로, 세계적인 페미니즘 작가 리베카 솔닛의 정의에 따르면 ‘강간이 만연한 환경, 미디어 및 대중문화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을 일컫는다.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운동의 진원지(震源地) 역시 이 강간문화에 있다. 물론 모든 성폭력의 1차 근원지는 가해자다. 그러나 가해자가 활보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 ‘일부’ 남성들의 조직문화, 즉 강간문화를 무시할 수 없다. 안태근 검사를 비롯해 고은, 이윤택 같은 괴물들은 어느 날 갑자기 혼자 성체(成體)로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강간문화란 앞서 발췌한 고려대 대자보와 서 검사의 폭로 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네가 예민한 거 아니야?’라며 성폭력 피해자를 비난하는 분위기. ‘너 때문에 중요한 일을 망쳐야겠어?’라는 전체주의적 분위기. ‘이 바닥 좁다, 계속 일 해야지?’ 식의 협박이 담긴 말들. ‘남자는 다 짐승이야’라는 면피(免避)성 우스갯소리. ‘두 사람 일은 둘 밖에 모르는데, 그걸 왜 제3자인 내가 얘기해야해?’라며 사회 범죄인 강간을 단순 사생활 문제로 치부하는 무관심. 강간 사건을 선정적으로 묘사하는 미디어. 이 모든 것들이 강간문화의 뼈대를 이뤘고, 보호해야 할 피해자들을 고립시켰다.

그들은 ‘기인’이 아니라 ‘범죄자’다

그리고 2월 말, 검찰 내 강간문화에 대한 용기 있는 폭로로 한국발(發) 미투에 불이 붙었다. 이에 고은 시인을 비롯해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오태석 극단 목화 대표, 영화배우 조민기·오달수·조재현 등 특히 문화예술계 인사 위주로 성폭력 증거가 속속들이 공개되면서 그들의 추악한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계의 성폭력 사례가 유독 심각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천박한 욕구가 너무 오랜 기간 폐쇄적으로 자행된 일들이기 때문이다. ‘예술혼’이라는 어쭙잖은 말로 여성들의 인권을 유린한 파렴치한이 이 사회에서 고매한 ‘선생님’ 대접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예술계의 강간문화를 심화시킨 ‘폐쇄성’은 다음과 같은 참여 관찰 논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권정은 씨가 6개월 간 이윤택 감독이 속했던 연희단거리패와 함께 생활하며 작성한 석사논문 <“개인을 넘어서는 그 자리” : 연희단거리패의 의례로서의 연극과 자아의 재구성(2016)>에 따르면, 극단에서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는 창단자(이윤택)는 “연극보다 함께 생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을 반복하면서 집단생활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왔다.

“연희단의 고참 단원들은 개인주의화된 현 시대를 비판하며 단원들의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훈계한다. 특히 예술감독은 현 시대를 ‘최악의 시대’라고 표현하거나 ‘로마 말기’에 빗대면서 ‘세상이 하도 거지같다’는 의견을 노골적으로 표출한다. 현 시대가 개인화되고 파편화되었으며,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연희단은 세상으로부터의 독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단원은 이곳이 ‘완전히 공산주의’ 같다며 고참 단원들의 ‘독재’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요컨대 타락한 세상과 격리되어 공동체 내에서만 생활하고, 구성원들이 개인의 자아를 버리길 주문하며, ‘예술성 회복’이라는 명분 아래 어린 단원 특히 여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이비 종교’의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연희단패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기자가 대학 생활을 할 때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예술학부들의 신입생 규제는 항상 엄격했다. 화장은 금지됐고, 두발도 단속됐다. 단체생활에 빠지면 동기 전체가 기합을 받았고, 기수 문화는 엄격했다. 신입생들은 항상 선배를 만나면 공공장소에서조차 “안녕하십니까, XX과 XX학번 XXX입니다!”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왜 그러는 거에요?”란 질문에 예술계에 속한 지인은 “그게 관례(慣例)니까”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의 묘사에 따르면 선배는 왕이었고, 교수는 신이었다. ‘실수하면 안 되니까 엄격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불합리한 전체주의적 문화는 그 세계의 헌법이 됐다. 그렇게 가장 약자인 신입 여성은 강간문화 속 성범죄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한 짓은 ‘예술’이 아니라 ‘폭력’이다

하지만 본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했다. 하물며 예술 밑에 사람이 있을까. 예술은 인권보다 중요하지 않다. 예술이라 부르기에도 창피한 그들의 광기에 희생되어도 괜찮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심지어 그들이 한 짓은 예술이 아니라 폭력이다. “발성을 위해서” 여성의 몸에 손을 넣고, “예술 망칠 거냐”며 피해자들의 침묵을 요구한 모 극단과 모 문단의 ‘선생님’들은, 예술계 내에서 강간범이 단순 ‘기인’ 정도로만 취급되는 안일하고 폐쇄적인 구조를 악용했다.

결국 그들은 예술을 자기정당화 수단으로 남용한 기득권층에 불과하다. 그들이 매일 예술을 통해 부조리함을 고발했던 사회의 기득권층이 바로 본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었다. 고매한 예술로써 사회를 비판하면서, 무대 뒤편에선 약자들을 희롱하고 성적으로 착취한 모습은 마치 한 편의 부조리극을 연상시킨다.

이제 이 부조리극을 끊고자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은 다른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발화하게 만드는 힘이 됐다.

한편 침묵을 유지하거나 “나는 정말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며 발을 빼고 있는 업계 관계자들의 말은 용기를 내준 사람들의 힘을 빠지게 만든다.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모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집단의 문화이자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몰라도 됐다. 몰라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몰라도 되는 사람과 모를 수 없는 사람, 그게 가해자집단과 피해자 여성의 차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고은, 이윤택 등 가해자들에게 사회적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들을 단순히 ‘괴물’로만 낙인찍고 타자화(他者化)하기 전에 우리가, 사회 전체가 그들에게 ‘그래도 되는 분위기’라는 면죄부를 주고 괴물로 키우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와 법을 고치고 다음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는 일. 그것이 용기를 내준 귀인들이 더 바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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