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한반도, 北核 파행史 극복이 분수령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병도의 時代架橋] 한반도, 北核 파행史 극복이 분수령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8.03.10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정은 비핵화 진정성이 관건
미-북대화 개시…´전제조건´ 변수
北 신뢰회복 남북 공존공영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시사오늘 주필)

남북이 한반도 긴장완화 방안을 새롭게 내놨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해빙무드의 연장선상에서 남한의 대북특사단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으로 부터 최대현안인 북핵 해결 문제를 비롯 본격적인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을 다짐받고 돌아온 것이다. 발표된 6개항의 합의내용에 대해 기대에 찬 논평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문제 해결의 중대 교두보가 될 북-미 정상회담까지 가시권으로 들어오고 있지만, 역시 그 실제 향방은 미지수다.

미국과 북한의 기본노선에는 대화 진행 내용상의 '전제조건'과 관련, 여전히 갈등요인이 내재돼 있다. 또한, 한반도 내부적으로는 과거에도 남북 7.4 공동성명 등 일시적 국민환호의 거대 이벤트가 돌출한 적도 있었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파국으로 끝났다. 북한정권의 이중적 행태와 관습적인 합의파기의 고질(痼疾) 탓이었다. 이번에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진정한 한반도 평화를 제대로 끌어낼 수 있을 것인지, 그 실상과 전망을 조감한다.

표면적 평화단초 6개항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대북(對北) 특별사절대표단이 서울로 돌아왔고, 이어 미국도 방문했다. 특사단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게 ‘한반도 비핵화(非核化) 로드맵’을 담은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김정은에 전달한 뒤 1박2일 동안 상호 논의를 벌였다. 비핵화 로드맵은 “대화 입구는 핵 동결, 출구는 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2단계 구상으로, 문 대통령이 지난해 제시한 내용이다.

이 대북 특사단은 귀환 후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으로부터 받아온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간 6개항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그 골자는 △첫째 4월 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제3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 △둘째 군사적 긴장완화와 긴밀한 협의를 위한 남북 정상 간 직통전화(핫라인) 설치 △셋째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 해소와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을 전제로 한 북한 비핵화 △넷째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북미 대화 추진 △ 다섯째 대화 기간동안 북측의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 중지 △여섯째 평창올림픽 정신을 이은 남측의 태권도시범단과 예술단의 평양 방문 초청 등으로 돼 있다.

하나같이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어온 난제들을 풀 열쇠나 다름없다. 그것도 북한으로서는 체제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간주해온 핵심적인 문제들이다. 외부세계가 예측한 범위를 넘는 큰 양보를 한것으로 일단은 받아들여진다. 남북정상이 평창 동계올림픽의 북한 선수단 및 대표단 파견 등을 통해 상당 부분 신뢰를 구축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 남한 특사단과 4시간12분 동안 만찬회담을 갖는 등 환대하면서, 북미회담이 열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보려 했다. 결국엔 북미회담 성사 가시권과 함께 남북정상회담 조기 개최도 사실상 확정, 한반도 '평화 모멘텀'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특히 북핵 해결의 초점이 되고 있는 북미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할 용의가 있음을 전례없이 선명히 밝혀, 트럼프 미 대통령의 수락을 받아냈다. 이와 함께 북한은 대화가 지속하는 동안 추가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적 도발을 재개하는 일도 없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조건부이기는 하나 일종의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으로 평가된다.
또한 현재 남한에서 이뤄지고 있는 한미연합군사훈련과 관련해서도 김 위원장은 '4월부터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면서 한반도 정세가 안정기로 진입하면 훈련이 조절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소식이다. 표면적으로는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대화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 단초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는 형국이다.

김정은 언급 명암  

그렇지만, 향후 한반도 안정을 낙관할 근거는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이제 겨우 비핵화 프로세스를 위한 물꼬를 텄을 뿐이다.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인 핵 폐기’라는 목표를 이루기까지는 갈 길이 멀고 험하다. 시작일 뿐이다. 다음 단계의 조치가 중요하다. 북측과의 합의 사항이나 김 위원장의 언급이 실제로 이행되는지 확인하는 절차부터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 대내적으로 ‘핵 무력 완성’을 외치며 강공 일변도로 나갔던 북한임을 고려하면, 이번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의지 천명은 처음이자 이례적이고, 전향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입장 변화로 보인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정상 간 핫라인을 설치해 정상회담 전 첫 통화를 하기로 한 것도 그렇다.

일단은, 기대치를 넘은 합의라고 평가할 만하다. 비핵화 프로세스의 물꼬는 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남북 관계는 물론 북-미 관계까지 동시에 진전시키겠다는 이번 합의는 오랜 대북 협상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강도인 것도 사실이다. 만약, 그대로만 이행된다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한 남북 관계의 진전뿐 아니라, 북-미 비핵화 대화 가동을 통한 대결 국면 해소로 북핵 문제 해결의 전기가 마련될 수 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꿀, 완전히 새로운 판이 짜일 수 있다는 기대도 완전히는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측면과 관련, 북측은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겠다고 ‘확약’했다고 한다. 앞으로 상호불가침 협정을 뛰어넘는 보다 구체적인 남북 간 군사적 신뢰 구축 합의가 나올 것임을 시사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최대 초점인 북핵에 언급, '무조건적 폐기'가 아니라 "대북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이라는 어려운 전제조건을 달고 나섰다. 따라서 이같은 김 위원장 발언 이후 파장과 행보가 어떻게 나타나게 될 것인지, 또 이 발언들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볼 대목이다. 일견 화해의 몸짓을 보였지만, 이번 비핵화 발언 역시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폐기해야 북핵을 폐기할 수 있다는 기존 논리와 맥이 닿아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이번 접촉과 관련, "수뇌상봉(정상회담)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만족한 합의’를 봤다"는 보도를 내놓으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통일전선부에 속히 정상회담 실무적 조치를 취하도록 ‘강령적 지시’까지 줬다"고 구체적으로 전하면서도, 아직까지 북한 매체에선 비핵화는 고사하고 핵문제는 물론 대미협상에 대한 언급 조차 전혀 없다.

북핵 전력(前歷), 실천만이 해법

이같은 북한의 자세에 대한 한.미 동맹의 대응방향은 이제 대북 압박과 대화의 강약조절, 그리고 북한과 미국의 대화내용 진전 여부에 따른 후속작업이 될 수 밖에 없게됐다. 그 열쇠는 김 위원장이 밝힌 한반도 평화방안의 진정성과 구체적 실천여부에 달려있다. 특히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 북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정말 있느냐는 진정성은 매우 중요하다. 관건은 역시 김정은의 진정성이다.

그런 점에서, 실제 북한 보도기관들이 이번 합의 후에도 '비핵화'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오히려 북한 노동신문은 한발 더 나아가, 특사단의 김정은 면담 다음 날에도 ‘핵 무력은 정의의 보검’이라며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정의의 핵을 더욱 억세게 틀어쥘 것’이라고 보도를 내놓았다.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려면 핵 포기는 있을 수 없다는 모습까지 보였다.  
북한은 그동안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만 12번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그랬던 북한이 남한과 미국을 향한 조기 정상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건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외교적 관계 개선으로 돌파하려는 계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들이 많다. 국제사회의 북한 핵 도발에 따른 제재와 압박, 그 중에서도 경제 압박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도발에 이은 대북 제재, 유화 제스처에 따른 국제사회 지원 그리고 또 다시 도발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어 갈수도 있다는 배수진의 의도가 깔려 있는 건 아닌지, 항상 유의하며 주시해야 한다. 언제든 돌변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은 은밀히 핵개발을 지속한 떳떳하지 못한 전력(前歷)이 있다. 북-미 대화 중에는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겠다는 이번 약속 또한 핵개발 완성을 위한 시간 벌기 차원의 전술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여전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기에 향후 김정은의 태도 가변성에 대한 엄밀한 주시가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북·미 대화 내용상의 실질적 진전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북한에 대한 국제 제재가 계속 빈틈없이 이행돼야 한다. 김정은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대북제재는 병행돼야 마땅하다.
북이 핵을 포기해 미국·일본과 국교를 맺고 하루빨리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으로 나오는 것은 온 민족이 바라는 일이다. 그러나 북은 수십만 주민을 굶겨 죽이고 경제를 황폐화시키는 대가를 감수하고 핵을 개발해 왔다. 그걸 포기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다. 지금 급한 쪽은 남한이 아니라 김정은이다. 각 방면에서 궁지에 몰려 있다. 국제적 대북 제재가 이대로 이어지면 결국 체제 위협이 되고, 미국이 실제 군사 공격을 해오면 과정이 어떻든 결과는 자신의 몰락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북한정권은 알고 있다. 이제 살 길은 김정은이 이번 약속을 실천으로 옮겨가는 방도밖에 없다. 비핵화에 대한 전향적 조치도 구체적 실천으로 보여줘야만 문제해결의 객관적 단초를 비로소 확보케 될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 가시권

이에대한 가장 큰 측정 시점은 오는 5월로 가시권에 들어온 북-미 정상회담이 될 것이다. 이번 회담의 상징적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4월 말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5월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한반도 정세는 외형상 지난 2000년 상황과 흡사하게 전개될 조짐이다.

당시에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남북관계 해빙 분위기 속에서 북미간 정상회담이 추진된 바 있다. 이제 그 주인공이 당시의 '빌 클린턴-김정일'에서 '도널드 트럼프-김정은'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 때는 북미정상회담이 불발되면서 '절반의 해빙'에 그쳤지만, 올해는 그 한계를 넘어 근본적인 한반도 정세전환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받게 됐다.

특히 그동안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가 진전되면서 '말의 전쟁'을 넘어 전쟁위기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가팔랐던 북미 관계가 두 정상의 만남을 매개로 극적인 정상화 발판 마련으로 돌아설 수 있을지가 핵심 관건이다. 또 북미가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비핵화 방안에 대한 사전 실무 협상에 들어갈 것인지도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 성사는 그동안 비핵화를 완강히 거부하던 김 위원장이 남한 대북 특사단을 통해 비핵화 의지를 처음으로 밝힌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제안을 했고,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함으로써 이뤄지게 됐다. 일단 김 위원장의 제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수락한 모양새이기 때문에 회담 장소도 김 위원장의 '안방'인 평양이 유력해 보인다.

김 위원장의 태도가 이처럼 돌변한 것은 북한으로 흘러들어 가는 돈줄을 바짝 죈 유엔 안보리의 최근 대북제재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지속적인 대북압박에 마침내 북한이 반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즉, 북한이 대외관계 방향의 대전환을 선택한 배경으로는 주력 수출품 차단, 외교관계 축소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압박 강도가 과거와 차원을 달리할 정도로 높아진 점이 우선 거론되고 있는 국면이다. 따라서 향후 북미간 정상회담의 절차상 진전과 실제 회담내용에 따라 북핵 문제에 대한 처방 여부는 더욱 새롭게 검증, 수립되어 나갈 것이다.

▲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회의실에서 '김정은 핵실험중단 약속 발표' TV를 보고 있는 민주당 공보실 직원들. ⓒ뉴시스

3차 정상회담과 1,2차 실패교훈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의 중요도와 상징성도 마찬가지다. 회담 장소부터가 그렇다. 남북 분단 최초로 북한 최고지도자가 남측 지역을 방문하게 될 뿐 아니라 중립지대 판문점, 그것도 우리 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열리는 것도 처음이다.

북한은 최고지도자의 안전 문제를 국가의 최고 목표로 삼는다. 지금까지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모두 평양에서 열린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정상회담에 관한 한 김정은의 자세는 상당히 '실용적'으로 보이며, 매우 적극적이다. 신년사에서 밝힌 이른바 ‘남북관계 대전환’ 방침에 따라 정상회담 개최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도 이번 우리 특사단에 대한 파격적 환대로 보여줬다.
정상 간 핫라인을 설치하기로 한 것도 군사적 우발 사태 같은 긴급 상황의 경우 양측 최고지도부 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풀어 나가겠다는, 그런 자세의 일환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번 정상회담이 남북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한반도 평화 정착을 촉진할 수 있는 회담이라면 환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11년 만에 남북 정상이 만나 한반도 평화를 약속하고 이행에 나선다면 그 의미는 남북한 현대사에서 각별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섣부른 정상회담에 따른 겉치레 평화무드 합의로 귀결될 경우 정부가 핵무장을 완성하고자 하는 김정은의 방패막이가 돼주는 상황으로 휘말려들고 말 가능성도 높다. 핵문제가 풀리지 않는 남북 정상회담과 관계 개선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그런 관점에서 과거 1.2차 남북 정상회담의 실패 선례는 큰 교훈을 남긴다. 1차 정상회담 전 북한이 청구서를 내밀자 당시 김대중정부는 5억달러를 줬다. 이후 북한이 몰래 핵 도발을 계속하면서 남남갈등의 불씨가 된 건 주지의 사실이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으로 열린 남북 정상회담 역시 마찬가지다. 이른바 10·4선언은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육로로 군사분계선을 넘어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난 뒤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이 선언 역시 그 후 북한의 잇딴 도발 폭주로 사실상 뭉개져 버렸다.

그런 전철을 이번에는 답습해선 안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두 차례의 정상회담 실패 전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번에야 말로 남북관계 발전과 교류협력이 다시는 현상변경되는 일이 없도록 아예 제도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으로 하여금 핵과 미사일을 제거하는 의지와 일정을 밝히도록 하는, 실질적 '북한 핵 회담'이 돼야 하며 향후 그 일정까지 제도화시켜 국제적 합의로 고착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은 양보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지금은 북한 핵무기가 미국 본토까지 위협하는 긴박하고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대화하더라도 제재 완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게 미국 등 국제사회의 다짐이자 약속이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해결방향이 전제되지 않는 한, 남북 정상회담은 무의미 해질 가능성이 높다. 정상회담을 했는데도 비핵화 문제에 아무런 진전은 없고 대북 포위망에 구멍이 생긴다면 동맹 균열과 남남 갈등이란 후폭풍만 일으키게 될 뿐이다. 이를 깊이 인식, 정상회담에 대비해야 한다.

미-북갈등 위험요소

그런 점에서 미·북간 실제 대화내용은 더욱 주목된다. 이번 남북합의에서 김정은은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북핵 해결의 내실이 담보되지 않은 한 그 대화자체도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미국 정부가 이번에 탐색적 차원에서 미·북 대화에 나서기로 한 것이라면 김정은은 '북미대화'란 외형적 틀을 이용, 미국의 공격 압박에서 벗어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대북 제재를 이완시키려 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렇게되면 한국민과 국제사회는 또 한 번 북에 속아 넘어가게 된다. 우리 국민에겐 최악의 상황이다.

미국은 그동안 비핵화를 전제하지 않는 북-미 대화에는 나설 뜻이 없다고 밝혀왔다. 북핵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던 과거 전철을 다시는 밟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번에 김정은이 핵·미사일 동결과 북·미 간 비핵화 의제라는 결심을 표명한 이상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응할 근거가 없지는 않다고 볼 수 있겠지만, 문제의 핵심은 비핵화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입장 차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과 체제 안전 보장이란 전제와 단서를 놓고 미국과 북한 간에는 큰 이견과 논란이 진행돼 왔다.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해야 북미대화를 본격 진전시킬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군사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을 먼저 요구하는 ‘선 보상 후 폐기’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북한의 '선보상' 요구란 다시말해 북·미 불가침협정, 북·미 수교 등을 의미한다. 그래야만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선후 관계가 서로 다르다.

결국, 그것은 북한이 실제로는 '핵보유국 지위를 갖고 미국과 대화하겠다'는 자세다. 북이 이런 기본방향의 연장선에서, 한미동맹 폐기 및 주한미군 철수와 자신들의 핵 폐기를 맞바꾸자고 나오는 것이라면 문제해결은 더 난망해질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위험요소가 내재돼 있다. 이는 북미대화를 섣불리 낙관할 수 없는 이유다.

美 對北불신 조치와 한미공조

실제, 미국은 한국 대북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한 최근까지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나 대화의 진정성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에도 “25년 동안 대화해왔지만 북한은 합의 다음 날부터 핵 연구를 시작했다”며 전임자들의 실패를 꼬집었다.

이와함께 한국 특사가 평양에 있던 지난 5일, 미국은 북한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사건을 맹독성 신경작용제 VX를 이용한 북한 소행으로 결론짓고 추가 제재 조치를 내렸다. 비핵화는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며 설령 북-미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제재와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다. 이런 ‘압박 속 대화’ 기조는 오는 5월 이후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미.북간 수차례에 걸친 핵 개발 중단 약속이 파기되면서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핵미사일로 나타난 터라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핵ㆍ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았던 북한의 전력 때문이기도 하다. 이른바 “CVID 원칙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백악관 발표는 이 같은 기류를 반영한다. 완전하고(complete), 검증 가능하며(verifiable),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 핵 폐기(denuclearization)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한국 특사단의 트럼프 대통령 방문에 앞서 백악관은 “미국과 한국은 남북관계가 비핵화와 함께 진전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대북 압박 캠페인을 통해 함께 협력하고 있다”고 거듭 다짐했다. 대북 압박·제재 기조가 미국 대북정책의 근간임을 재확인했기에 향후 한국 정부가 이를 약화시키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된다.

외형상 북·미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여건은 일정 정도 마련된 셈이다. 이제는 비핵화 접점 찾기에 나서야 한다. 미국만이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에도 특사를 보내 남북 접촉 결과를 설명하고 남북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국제적 기류조성을 도모해 들어가야 한다. 

북핵 문제는 이제 최대 변곡점을 맞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현재의 미국정부 대응자세로 볼 때, 만약 북미대화가 틀어져 버린다면 미국에서는 북한에 더 이상 기댈 것이 없다는 강경론이 득세할 것이 뻔하다. 가뜩이나 트럼프 행정부 내 협상파가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코피 전략’ 같은 군사옵션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것은 우리 정부가 북핵의 완전 폐기라는 최종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한시도 방심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미 대화의 실마리가 제대로 풀려야 남북정상회담도 모양 좋게 열릴 수 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선순환을 이룰 수 있도록 더없는 외교 역량이 요구된다. 

非核化 합의실패 전례 

과거 숱한 남북간 합의 실패사례들은 한국 정부의 외교역량을 더욱 환기시킨다. 그동안 남한과 북한간, 또는 국제사회와 북한간에는 핵과 상호관계에서 수많은 합의가 있었다. 그때마다 우리 정부는 '마침내 평화의 길이 열렸다'는 식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곧 이어 터졌나온, 북한이 보여 온 합의 불이행 전례들은 수시로 남한과 국제사회를 아연실색케 했다.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1993년 1차 북핵 위기 때부터 시간끌기용 협상을 벌이며 핵 개발을 계속했다. 2003년 2차 북핵 위기 뒤에는 6자회담을 하면서 핵실험을 준비하기도 했다. 북한은 이번에 “대화하는 동안 추가 핵실험 등 도발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과거 전례를 볼 때 유엔 결의에 따른 국제제재로 어려움을 겪자 지원을 얻어내고 제재를 완화해보려는 속셈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 한·미 공조의 틈새를 벌리려는 전략일 가능성도 있다.

이번에 남한 특사단에 밝힌 '군사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전제조건의 논리는 북한의 핵 개발 사실이 외부에 알려졌던 1990년대부터 해왔던 말이다. '군사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을 '평화체제'라는 명분 아래 한미동맹 파기와 주한미군 철수의 동의어로 줄곧 사용해 왔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이 발표한 '정부 대변인 성명' 역시 비핵화의 전제로 주한미군 철수를 분명히 하고 있다. 김정은은 한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을 것이다. 실현 불가능한 조건을 내거는 것은 핵을 포기할 뜻이 없다는 의지를 반증하는 것에 다름없다. 2005년 9·19 합의에서도 북은 심지어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약속하기도 했다. 그래놓고 불과 1년만에 첫 핵실험을 저질렀다. 당시 9·19 합의문을 보면 아직까지 북한 비핵화가 안 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이번에 김정은이 밝혔다는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것도 전임 김정일이 국제사회를 기만할 때 사용해온 수법에 불과하다. 비핵화를 언급했다고 해서 대화의 조건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제야 말로, 지난 25년의 북한 비핵화 실패를 더 되풀이해서는 안 될 시점이다.

남북합의 파기史

정치 군사적으로 과거 북한의 거듭된 남북합의 파기 역사는 그 교훈을 근본적으로 검증케 한다. 

지난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이 발표 되었을 때 국민들은 경악과 흥분과 감격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념적 대립과 함께 북한의 남침에 따른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적대감이 팽배했던 남북한이 조국통일의 원칙을 설정하고 대화개시에 합의한 것은 실로 역사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성명 발표후 북한의 행태는 말 그대로 파기 그 자체였다. 성명발표 직후부터 그 이면에선 남침용 땅굴을 파고, 무장간첩 남파와 판문점 도끼만행을 자행했으며, 금지하기로한 상호비방 방송을 3개월만에 재개하는 등 성명정신 파기를 일삼았다.

그로부터 45년, 남북관계는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가. 대립과 긴장과 대화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통일을 위한 실질적 성과와 변화는 전혀 없었다.

남북은 1992년 2월19일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발효 시킨후 수많은 합의서를 교환했다. 그런데도 화해·협력·교류·핵문제중 어느 한 분야에서도 가시적 진전은 없었다.그 때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서 규정된 상호핵사찰이 제대로 이행만 되었더라면 북한 핵문제는 그토록 국제적으로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의 '합의파기'는 그 후에도 점입가경이었다. 2013년 3월에는 급기야 정전협정 백지화 등 남북불가침에 관한 기존 합의를 모두 폐기하는 것은 물론, 비핵화에 합의한 1992년 남북공동선언도 파기하겠다고 나섰다. 당시 그 행위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2094호 채택에 반발하는 의도적 행동이었다. 중국조차 이 안보리 결의안에 찬성했고, 북한을 포기하고 한반도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소리가 중국 고위층 내에서도 공공연히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려는 목적도 있었다.

당시에도 북한 정권의 국내 상황은 사실 최악이었다. 대내적으로는 주민들의 생활과 의식이 장마당 경제 등을 통해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이런 측면들이 북한으로 하여금 벼랑 끝 전술을 찾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한국으로선, 북한과의 대화가 결국 공수표가 되어버린 형국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의 햇볕정책이 북한 정권의 호전성만 키워 주었다는 비판론이 일어났던 것도 그런 연유였다. 결국, 북한 정권이 붕괴되기 이전에는 핵 포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전망들을 대두케 했다. 북한의 '합의파기'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다.

이렇듯, 북한은 남북 양측의 책임있는 당국자 간에 약속된 사안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제는 북한과 어떤 협의를 하더라도, 과연 언제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할지 회의감부터 들게 됐다. 구체적 일정까지 합의된 사안들을 손쉽게 파기함으로써 그들 스스로의 신뢰기반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이번 약속 역시 시간끌기용 전술이나 말장난에 불과할 것이라는 우려가 일각에서 거칠게 대두하고 있는 것도 그런 역사적 배경 탓이다.

역사적 경고와 발전승화 주도력

'북핵 문제' 해결은 남북한간 신뢰를 좌우하는 문제일 뿐 아니라, 지금 국제적 중대 현안이다. 한국은 인내와 유연한 대응으로 북측과의 접촉과 대화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역사적 반복사례 처럼 다시 '신뢰'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 이번 합의에 대한 북측의 의도를 재평가, 대응방향을 새롭게 수립치 않을 수 없다.

물론, 일단 시작된 남북대화인 만큼 북핵 폐기 협상으로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북으로서도 실제 그 길밖에 살길이 없다. 정부는 남북대화의 목적이 북핵 폐기라는 사실에서 언제나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북이 끝내 실질적인 핵 폐기 구체화 행동에 응하지 않을 때의 대책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엄중한 안보위기 상황을 고려, 단호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이제, 북한은 진심으로 40여년전 온겨레에게 희망을 주었던 7·4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더이상의 망상을 떨쳐버리고 당연한 핵폐기로 평화의지를 공인받을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할 때다. 오랫동안 깨져버린 신뢰를 환골탈태 회복해 내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만, 떳떳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주변국과 협력할 수도 있고, 남한과도 경계와 경쟁대상이 아닌 협력의 대상으로 공존공영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남한 내부 여야 간에도 이같은 민족 공영의 방향을 위해 남북 간 대화 전모를 소상히 공개, 보수 야당의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내 국민통합 부터 이루는 과제가 중요하다.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외형적 평화무드에 젖어들 때가 아니다. 북한의 철저한 합의 이행과 검증이 담보되지 않는 한 대북제재의 고삐를 늦추는 일이 결코 있어선 안된다. 자칫 남북대화가 오히려 북한에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는 시간을 벌어주게 하는 형상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북-미 대화를 수용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도 이를 경계해야 마땅하다.

30년 가까이 끌어온 북핵 문제,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한반도 냉전 상태를 종식시키고, 남북관계 역사를 바꾸여야 한다는 일대 민족적 분수령 앞에서, 우리는 다시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역사의 경고에 바탕을 둔 치밀한 대응으로 최근 남북 기류의 승화 발전을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