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룰 부수기①] 그들은 왜 ‘벽’을 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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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룰 부수기①] 그들은 왜 ‘벽’을 쳤을까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8.03.16 17:47
  •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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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 가능성 우려로 일각에서 펜스 룰 부각
무죄 추정의 원칙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일각에서는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여론을 통한 사회적 처벌’을 행하는 미투 운동이 또 다른 폭력성을 내재한다며 ‘펜스 룰(Pence Rule)’을 내세우고 있다 ⓒ 시사오늘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 사건에서 촉발된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던 성폭력을 양지(陽地)로 끌어낸 미투 운동은, 여성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이 만연(蔓延)했던 우리 사회에 경종(警鐘)을 울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여론을 통한 사회적 처벌’을 행하는 미투 운동이 또 다른 폭력성을 내재한다며 ‘펜스 룰(Pence Rule)’을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남성들은 왜 펜스 룰을 외치는 것일까. 그들의 말대로, 펜스 룰은 정말 합리적인 대응 방법일까. <시사오늘>은 1편에서 펜스 룰을 긍정하는 남성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2편에서는 펜스 룰이 여성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음을 짚어 봤다. <편집자주>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이 ‘젠더(Gender) 갈등’으로 옮아가는 모양새다. 미투 운동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남성들 사이에서 ‘펜스 룰(Pence Rule)’을 행동 준칙으로 삼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펜스 룰이란 現 미국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Mike Pence)가 과거 한 인터뷰에서 밝힌 결혼 생활 원칙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부인이 아닌 여성과는 단둘이 자리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펜스 룰은 온라인상에서 큰 비판을 받고 있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억압됐던 여성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기득권을 지닌 남성이 여성을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미투 운동을 내리누르려 한다는 논리다. 전문가들은 남성이 사회적 기득권을 쥐고 있는 상태에서 펜스 룰이 보편화된다면, 여성에게는 또 하나의 ‘유리 장벽’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지적이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펜스 룰은 미투 운동 자체에 대한 비판이나 기득권 상실에 대한 두려움의 발로가 아니라, 미투 운동이 필연적으로 내재할 수밖에 없는 부작용을 경계하는 태도에 가까운 까닭이다. ‘미투 운동의 취지에 공감하지만, 펜스 룰도 이해할 수 있다’는 양시론(兩是論)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 펜스 룰이란 現 미국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Mike Pence)가 과거 한 인터뷰에서 밝힌 ‘부인이 아닌 여성과는 단둘이 자리를 갖지 않는다’는 결혼 생활 원칙을 일컫는다 ⓒ 뉴시스

‘찍히면 죽는다’…무시되는 무죄 추정의 원칙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시사오늘>이 만난 사람들 중 미투 운동의 취지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그들은 크게 세 가지의 미투 운동 부작용을 지적하며, 펜스 룰이 ‘안전장치’에 해당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제점 세 가지는 첫째,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과 둘째, 처벌이 ‘여론 재판’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 마지막으로 문제점이 해결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미투 운동의 기본적인 작동 방식은 ‘문제 제기–확산–여론의 비판–사회적 처벌’이다. 여기서 특징적인 부분은, 가해자가 실명으로 지목되고 ‘유죄 추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실 확인이 끝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하면서 통상적으로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관행과 비교하면, 미투 운동의 ‘피고인’에게는 유독 가혹한 잣대가 적용되는 셈이다.

자연스럽게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증거를 통해 유죄를 증명해야 한다는 원칙도 무시된다. 일단 가해자로 거론되면, 무죄를 입증할 책임은 피고인에게 부과된다. 3월 12일 서울 신촌의 카페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사실 확인도 없이 이름이 나왔다는 것만으로 박살이 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솔직히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며 “순기능이 많다는 것은 알지만, ‘이거 정말 괜찮은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유죄 추정의 원칙’은 SNS와 결합해 전에 없던 파괴력을 냈다. SNS의 특성상, ‘문제 제기–확산–여론의 비판–사회적 처벌’이라는 매커니즘은 매우 신속하게 처리되므로, 미투 운동은 필연적으로 비가역적 성격을 갖는다. 이와 같은 신속성과 비가역성은 법적 처벌이 어려운 가해자들을 응징하는 긍정적 효과를 냈지만, 한편으로는 처벌을 받기 전 최소한의 반론권(反論權)조차 보장받을 수 없다는 공포감을 동반했다.

YK법률사무소 손병구 변호사는 3월 16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미투 운동의 긍정적인 면을 잘 알고 있고, 이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라면서도 “일단 유죄가 추정되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오히려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현실에서 사건이 발생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이뤄지는 미투에 대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무고한 피해자’를 줄여야 한다며, 무고죄 형량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등장했다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여론재판 식 처벌…반론권 보장 안 돼

언론에서 거론되는 몇몇 ‘무고한 피해자’들의 사례는 이런 공포를 강화시켰다. 2016년 10월, 자신을 피해자라고 밝힌 여성 A 씨는 박진성 시인과 ‘자의적이지 않은 성관계를 가졌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SNS에 올렸다. 이 게시물은 무차별적으로 확산돼, 박 시인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생활도 파탄에 이르렀다. 박 시인은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그 사이 박 시인의 삶은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결국 그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분노조절장애’ 진단을 받았고, 자살 시도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인의 사례는 ‘유죄 추정의 원칙’과 ‘신속성과 비가역성의 부정적 효과’라는 미투 운동의 부작용이 응축된 케이스다. A 씨의 ‘주장’은 곧바로 박 시인의 ‘유죄 추정’으로 연결됐고, SNS의 신속성은 박 시인의 삶을 빠른 속도로 짓밟아 놨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은 SNS가 망가뜨린 박 시인의 삶을 되돌려놓을 만한 힘이 없었다. 온라인상에서 아직까지 회자되는 이 사례는 펜스 룰 옹호자들이 미투 운동의 어떤 측면을 두려워하는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런 흐름을 따라가면, ‘잘못이 없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해결책을 거부하는 펜스 룰 옹호자들의 사고 구조가 포착된다. 사실 관계를 다투기도 전에 유죄가 확정되고, 한 번 사건의 당사자로 이름을 올리면 인격적·사회적 추락을 피하기 어려운 미투 운동의 작동 매커니즘을 고려하면, 아예 여성과 접촉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는 결론이다.

표면적으로 이는 미투 운동의 결과에 대한 반동(反動)의 성격을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최소한의 반론권(反論權)이 보장되지 않는 미투 운동의 매커니즘에 대한 공포라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투 운동의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마저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로 펜스 룰을 꺼내드는 배경이다.

이에 대해 손 변호사는 “지금 같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의 사회적 분위기와 여론몰이가 심해진다면 미투 운동을 가장한 무고가 남발될 수 있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전 현상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면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을 파렴치한 범인으로 몰아가서는 안 되고, 수사기관이나 법원 역시 남성과 여성의 진술을 모두 신중하게 비교해 수사나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이럴 때일수록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무죄 추정의 원칙을 잘 지켜야 미투 운동이 더욱 건전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고, 미투 운동으로 인한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미투 운동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으려면, 기본적인 원칙을 잘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 뉴시스

‘성(性) 대결’ 프레임…‘회피’ 선택한 남성들

앞서 제시한 위험성에도, 미투 운동이 계속해서 파괴력을 키워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미투 운동의 순기능이 역효과를 크게 능가한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투 운동이 본질적으로 ‘권력에 대한 대항’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미투 운동의 ‘삭제’보다는 ‘수정’ 쪽에 초점을 맞춰 왔다.

하지만 펜스 룰 옹호자들은 언젠가부터 ‘수정 가능성’마저 사라졌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투 운동의 순기능이 강조되면서, 역효과에 대한 지적은 그 자체로 금기시되는 사회 분위기 탓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곧 약자이므로 미투 운동은 곧 여성 운동’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진 뒤부터, 남성들은 미투 운동에 대한 발언권을 상실했다고 토로한다.

“이제 와서 미투 운동을 권력 갈등이라고 하는 것은 웃긴 이야기예요. 미투 운동이 남녀 갈등으로 흘러갔을 때, 남자들이 미투 운동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고 하면 여자들이 뭐라고 했나요. 우리 사회에서 남자는 권력이고 기득권이니까 남자의 지위가 높고 낮고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고요. 그냥 남자라는 이유로 미투 운동의 타깃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펜스 룰을 한다니까 이제 와서 권력 갈등이니 본질을 흐리지 말라고요?” 3월 13일 신촌에서 만난 또 다른 대학생의 말이다.

3월 5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너희들의 시대는 끝났다’는 성명에서 “남성연대의 온갖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용기 있는 말하기는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인 연대로 ‘남성’들의 강간문화를 끝장낼 것이다”라고 했다. 이 선언을 본 남성들은 미투 운동이 더 이상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인식했다. 강력한 파괴력을 갖는 미투 운동의 창끝이 남성을 향한 시점에서, 남성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펜스 룰 옹호자들의 입장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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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2018-03-17 15:50:35
이런 기사를 써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제 마음을 대변해 주시네요. 떳떳하지 못 해서 펜스룰 지키겠다가 아니라 내가 아무리 떳떳해도 무고의 희생양이 될수 있다는 이유 때문임을
분명히 해두고 싶은데, 기사들이 전부 잠재적 성범죄자들이나 펜스룰 하는 거라고 비꼬는
논조 밖에 없어서 답답했는데, 펜스룰을 지킬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정확히 진단하고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보통남 2018-03-17 02:34:12
이미 이전부터 남성의 발언권은 죄다 없애고, 맨날 공부하라니 그놈의 썩을 젠더 감수성타령.. 처음부터 대화할 생각은 없고 자신네들 이익만 추구한 모습에 이미 예전에 남성들 생각은 돌아섰을겁니다. 표현만 안할뿐이지. 애당초 군대도 안가는 주제에 그 문제는 꺼냈다하면 지겹니 쪼잔하니.. 자신들의 불편은 어떠한 작은 것도 참지 못하면서 엄청난 평등문제인 군대는 묻혀있습니다. 그런데 남성들의 협력없이는 불가능한 평등을 지네들끼리 이뤄낼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두고보세요. 결국은 부메랑이 되서 돌아올겁니다

MGTOW 2018-03-16 18:40:29
용기 있으시네요..이 국가의 남성기자들 중에서 제일..남자기자 이름 기억하게 되는건 처음일듯..

진짜 2018-03-16 18:56:09
무고뗌에 펜스인데 지금껏 개소리만하던 기사만보다 이거보니 시원하네요

오유빈 2018-03-16 18:23:59
이제서야 객관적인 가사가 나오는구나 ㅡㅡ
암튼 감사합니다 펜스롤이 왜 보각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