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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식의 正論직구]"강릉시, 구시대 폐습 형상화한 조형물로 웃음거리 자초"
홍장고사와 주인공 홍장 상상 미니 인터뷰
2018년 03월 20일 15:20:50 김웅식 기자 212627@hanmail.net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웅식 기자)

왕조시대의 폐습이 반영돼 있는 설화를 아무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수용해 향유한다면 비난 받을 일이다. 설화는 전승과정에서 구연자나 채록자의 의식이 가미돼 윤색되기 마련이다. 조선시대 설화를 수집 채록한 사람들은 거개가 한학을 공부한 사대부들이었다. 신화, 전설, 민담 등 설화를 받아들일 때에는 당대의 사회상을 고려하고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를 해석해 내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수령과 기생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홍장고사(紅粧故事). 여기에 등장하는 목민관 박신과 조운흘은 조선시대 실존 정치가로 둘 다 소실(첩)을 둔다. 일부다처 신분제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고위 벼슬아치가 소실을 둔다는 것은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구시대적 폐습이다. 강릉시는 일부다처 남성중심의 폐습이 주테마인 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조형물을 관광지에 설치함으로써(시사오늘 19일자 보도) 전국적인 웃음거리가 돼 버렸다.

   
▲ 홍장고사의 주인공 홍장이 박신과 사랑을 나누었던 장소인 경포호. ⓒ인터넷커뮤니티

시공을 뛰어넘어 홍장고사 주인공 홍장과 상상 속 미니 인터뷰를 진행해 봤다. 근 두 달 동안 홍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안찰사 박신과의 사랑 이야기가 설화로, 소설로, 조형물로 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지속해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와 같은 기생이 후궁이나 양반 사대부의 소실이 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에요. 연산군 때 후궁이 된 장녹수, 윤원형의 첩이 된 정난정 정도가 생각나네요. 제가 안찰사 박신과 사랑을 하고 1년 뒤 한양으로 따라가 소실이 된 게 당시에 큰 화젯거리가 됐고, 그것이 채록되면서 생명력을 가진 것 같아요.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리던 저의 사랑 이야기는 서거정(1420~1488년)이 ‘동인시화’를 찬술할 때 제 시조와 함께 기록됐어요. 관리와 기생 간 애정 스토리는 당시 양반 사대부들이 즐겨 향유하는 주제였어요. 그래서 애정소설이 많이 지어졌죠. 제 이야기 홍장고사는 18세기에 들어 한문소설 ‘홍장전’으로 변신하게 되잖아요. 책이 많이 팔렸겠죠.

현재 경포호 산책길에 박 안찰사와의 사랑 이야기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제 이야기가 조선시대에 화젯거리였는데 21세기에도 화제가 될 줄은 몰랐어요. 제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니까요. 체험적 사실이 설화로 전승되면서 문자로 기록되면서 양반 사대부들의 흥미가 가미되고 윤색되기도 하죠. 그래서 설화를 맹목적으로 수용할 게 아니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눈이 있어야 할 거예요. 겉면 너머 그 이면도 읽을 줄 알아야 하겠죠.

홍장고사 설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만든 조형물을 공공장소에 전시하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에요. 후손들이 의도치 않았겠지만, 구시대 남성 중심의 폐습을 떠올리는 조형물은 차라리 없는 게 나아요. 조선왕조 일부다처 신분제는 거대한 벽(권력)이었어요. 천민 기생 홍장이 그런 시대적 한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갔을까 한 번쯤 생각해줬으면 해요. 

시작(詩作)에 능한 시조작가이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외람되지만 시 한 편을 추천해 주신다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다음 호)강릉시 '황당 조형물' 취재 단상(斷想)

담당업무 : 산업부 소속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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