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식의 正論직구]공무원 불륜을 자랑스럽게 홍보하는 강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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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식의 正論직구]공무원 불륜을 자랑스럽게 홍보하는 강릉시
  • 김웅식 기자
  • 승인 2018.03.21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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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황당 조형물’ 취재 단상(斷想)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웅식 기자)

▲ 시간이 나면 도서관을 찾는데,  책을 통하면 동서고금 어디든 오갈 수 있다. ⓒ 광진정보도서관

강릉 경포대 해변을 지난해 여름에 이어 올해 또 찾았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도서관에서 '이제 뭘 하며 살지' 고민하다 머리를 식힐 겸 해서 아내와 함께 강릉으로 향했다.

쌀쌀한 겨울 바람이 경포대 해변을 휘감아 도는데 호젓했다. 횟집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경포호 산책길을 느릿느릿 걸었다. 앞쪽에서 귀엽고 앙증맞아 보이는 조형물들이 줄지어 우리를 반겨 준다. 품이 많이 든 조형물이란 생각을 했다. 조형물 안내글을 읽으며 걷는데, 이야기 마무리가 왠지 이상하다. '음악 소리가 공중에서 떠온다' '신선의 무리' 등 상당히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설화라는 게 전승되면서 윤색되기 마련이다. 체험적 사실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채록자나 향유층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설화 내용을 100% 사실이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경포호 산책길 조형물은 중앙 벼슬아치가 지방에 파견 근무를 와서 불륜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조형물 전시로 뭘 말하려고 하는지 그 목적을 알 수 없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마찬가지. "박신이 미혼인가?" "마누라가 있으면 나쁜 놈인데" "그럼 총각이면 별 문제가 없나?" 서인(西人)의 영수인 정철(1536~1593)이 <관동별곡>에서 ‘박신과 홍장의 사랑이 야단스럽다’고 한 것이 기억났다.

고위 벼슬아치와 기생 간의 러브 스토리는 조선시대 설화와 애정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다. 그만큼 양반 사대부들이 즐겼다는 이야기다. 일부다처 남성중심의 생활상이 투영돼 있는데, 그런 작품 대부분은 한학을 배운 사대부 지식인층이 생산했다. 

홍장-박신 설화는 요즘 말로 하면, 중앙부처 공무원이 파견 근무지에서 아내 몰래 어떤 여성에게 빠져 애정행각을 벌였고, 복귀 송별회 자리에서 속칭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처럼 속임을 당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현실성이 떨어진다. 체험적 사실은 설화의 주인공 홍장과 박신이 기약 없는 이별을 앞두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설화에도 '박신은 눈물이 눈에 가득하였다'로 나온다. 강릉부사 조운흘의 연출 아래 홍장이 애인을 속이고 놀린다는 건 희화화(戲畫化)된 표현이다. 양반 사대부들은 관기 홍장의 사랑을 왜 웃음거리로 전락시켜 놓았을까?

인터넷 포털에서 홍장고사를 검색해 보면 ‘이야기가 별로네’라는 댓글이 보이고, 옛 문헌 목민심서에도 설화 내용이 나오는 걸로 언급돼 있다. 목민심서가 어떤 책인가. 알다시피 다산 정약용이 목민관이 지켜야 할 지침(指針)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책이다.

‘그래, 다산 같은 분이 박신과 홍장의 야단스러운 사랑을 소개하려고 붓을 들진 않았을 것이다.’

예감은 맞았다. 목민심서를 펼쳐보니 바로 1권에 해당 내용이 나왔는데, 역시 대학자 다산다웠다. 홍장고사의 내용을 거론하고 난 뒤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는데, 목민관으로서 몸가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박신과 조운흘을 질책하고 있었다. 역시 목민심서(牧民心書)였다. 목민심서가 21세기 공무원 필독서로도 자리잡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담당업무 : 논설위원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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