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현 변호사의 Law-in-Case>
스크롤 이동 상태바
<안철현 변호사의 Law-in-Case>
  • 안철현 변호사
  • 승인 2010.12.14 14: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계약서의 오해와 진실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고, 서로간의 의사전달이 왜곡되는 경우 또한 많다. 이와 마찬가지로 쌍방 계약을 체결하면서 서로의 의사를 명확히 하지 못해 곤란을 겪는 경우나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래의 사례를 보고 독자들이 또 하나의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필리핀 현지법인 PINNACLE DEV'T CORP는 세부에서 풀빌라를 신축해 분양하는 사업을 하는 건축주다. 정 모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주식회사 유니컴이 위 사업에 광고를 맡기로 하면서 필리핀 현지법인으로부터 계획설계업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있는 동부건축사사무소를 소개해 줬다. 그래서 2009년 10월26일 필리핀 현지법인과 동부건축사사무소 사이에 용역계약이 체결됐다.

한편 주식회사 에코는 시공을 맡게 되면서 그 즈음 회사명을 주식회사 피나클코리아로 변경하고, 위 공사와 관련한 한국에서의 업무를 대행했다. 그러나 건축사사무소가 계획설계업무를 더디게 진행하며 별 진척이 없자 피나클코리아는 여러 가지를 문제 삼으며 계약해지통지를 했다. 여기에 화가 난 건축사사무소는 정씨, 유니컴, 피나클코리아를 상대로 용역대금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필리핀 현지법인에 대해서는 필리핀에서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위 3당사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건축사사무소가 실제 계약당사자인 필리핀 현지법인이 아닌 다른 당사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계약 당시에 필리핀 현지법인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에 뭔가 담보할 수 있는 묘책을 고민했다. 그래서 평소에 호형호제하고 지내며 계약이 성사되도록 다리를 놔줬던 정씨를 계약서상의 당사자란에 집어넣도록 유도했다. 그래서 계약서의 건축주란에 필리핀 현지법인을 넣고, 정씨를 공동건축주로, 직책은 피나클 서울지부장으로, 주소는 정씨가 운영하던 유니컴의 주소로 기재하여 날인하게 했던 것.

한편 건축사사무소가 소송을 제기하기 전 유니컴과 피나클코리아에게 용역대금을 지급해 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내자 위 두 회사는 애매모호하긴 하지만 마치 자신들이 위 계약의 당사자인양 또는 책임을 일부 부담하겠다는 내용의 답변을 보냈다. 그래서 건축사사무소는 정 씨를 채무인수자 또는 보증인으로서의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유니컴은 내용증명을 통해 책임을 인정했다는 이유로, 피나클코리아는 필리핀 현지법인과 동일한 회사라는 것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으로부터는 그 어느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먼저 정씨의 경우 계약서에 서명·날인할 때 자신도 용역대금을 책임지겠다는 의사로 그렇게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뿐 아니라 정씨는 그 공사의 공동건축주도 아니었거니와 피나클 서울지부는 존재하지도 않았음은 물론 주소지도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의 주소로 작성했다. 계약서 자체도 건축사사무소에서 미리 작성해 간 것이었다.

피나클코리아는 위 공사의 시공을 맡으면서 필리핀 현지법인과 유사한 상호로 변경했을 뿐 주주도, 경영진도 전혀 다른 별개의 법인이었다. 한편 유니컴도 건축사사무소의 용역대금청구에 마치 자신이 책임이 있다는 듯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있으나 정씨 개인이 운영하던 광고회사일 뿐 책임을 부담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회사다.

만약 건축사사무소에서 필리핀 현지법인 외에 다른 누군가가 책임을 부담하게 할 의도가 있었다면 계약당사자를 명확히 하여 계약서를 작성했어야 옳다. 그렇게 했더라면 반대로 정 씨가 설사 책임을 부담할 의사가 없었더라도 보증의 의사가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정씨의 입장에서도 아무 생각 없이 계약서에 서명·날인할 일이 아니다. 물론 당시에는 “껄끄럽긴 하지만 뭐 별 문제 있겠어?”라고 생각했겠지만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