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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이인제는 철새 정치인일까?
<기자수첩> 철새, 노쇠한 패배자의 낙인(烙印)
2018년 04월 14일 08:00:18 한설희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 이인제의 별명은 ‘피닉제’다. 불사조를 뜻하는 피닉스(phoenix)에 그의 이름을 덧댄 멸칭(蔑稱)으로, 당적을 자주 바꿔가며 정치권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철새’인 그를 조롱하는 단어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이인제의 별명은 ‘피닉제’다. 불사조를 뜻하는 피닉스(phoenix)에 그의 이름을 덧댄 멸칭(蔑稱)으로, 당적을 자주 바꿔가며 정치권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철새’인 그를 조롱하는 단어다.

그의 정치 궤적엔 16개의 소속 정당이 있다. 당명 변경을 제외해도 총 8번이 자의적 이동이다. 특히 당내 경선에 불복한 탈당만 3번을 자행한 이력은 그의 철새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켰다.

한국은 신의(信義)를 중시하는 나라다.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산다’는 말이 있을 만큼, 의리는 사적 의무이자 공적 정의(正義)에 가깝다. 때문에 ‘변절자’에 대한 혐오도 짙다. 당적을 자주 바꾼 정치인 2위에 빛나는 이 전 의원 역시 이런 사회적 눈초리를 피해가기 어렵다.

그러나 사회 집단이 누군가를 미워해 그를 배제하길 원할 때는 분명한 이유가 필요하다. ‘철새라서 미워한다’고 하면 철새의 명명백백한 기준을 밝혀야 하는 것이 도리다.

철새란 무엇일까. 단순히 당적 변경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새누리당 의원 33명은 집단으로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이들은 ‘보수의 희망’으로 박수 받았고, 철새라는 비난을 피했다. 그러나 이들이 몇 달 후 한국당으로 복당하자 이들에게는 철새라는 손가락질이 쏟아졌다.

다른 예는 또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끊임없이 당적을 변경한 바 있다. 그는 통일민주당을 탈당하고 일명 ‘꼬마민주당’을 꾸렸으며, 후에 스스로 “용서할 수 없다”던 DJ의 국민회의와 합당하다가도 그들을 배반하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철새가 아니다. 사람들은 그를 신념의 정치인으로 부른다.

이들이 신의를 져버렸지만 용서 받은 이유는 단 하나다. 당장의 눈앞에 놓인 알량한 기득권을 좇아 당적을 옮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역주의 타파, 보수 재건 등 더 큰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길 위에 당적 변경이 놓여 있었기 때문에 자진해서 변절자가 된 것이다.

요컨대 철새의 기준은 당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 자신의 철학과 진영을 지켜나가는 것이라는 소리다.

   
▲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는 정당성을 가지는 합리화의 도구다. 이인제는 잦은 당적 변경을 품은 국민들이 선택한 정치인이다. 그의 행적은 투표를 통해 정당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뉴시스

그렇다면 이인제에게 붙은 ‘철새’란 타이틀은 당연한 걸까. 그는 지난 97년 신한국당 소속으로 15대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2등으로 낙선했고, 경선에 불복해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독자 출마했다.

이에 보수층 유권자들은 아직까지 그를 ‘대권에 눈이 멀어 보수를 분열시킨 철새’라고 비난한다. 그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DJ가 아닌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라는 시각에서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그는 당시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였다.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다음 대선에서는 틀림없이 보수당 후보로 추대됐을 것이다. 실제 15대 대선 당시 그는 소속정당 기반 없이 무려 19.2%를 득표하며 중도층의 존재감을 증명시켰던 사람이다. 보수표에 중도표를 흡수할 수 있는 카드를 보수당이 자진해서 버릴 리가 없다.

그러나 그는 당권과 차기 대권을 모두 박차고 대선에 출마했다. 안전한 길 위에 놓인 기득권보다 가시밭길 위에 있는 야망을 쫓은 것이다.

이후 충청도 출신인 그에게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러브콜이 쏟아진 것은 당연하다. 충남과 대전 지역을 기반으로 김종필(JP)이 세운 자민련은 ‘차기 당권’과 ‘대권 후보’를 전제로 입당을 권했지만, 그는 자신과 아무 연고가 없는 호남당, DJ의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16대 총선에서 자민련의 텃밭인 논산에 출마해 현역 김범명 의원을 꺾고 당선됐다. 지역주의 정당의 기세를 대폭 꺾은 파괴력 있는 행보였다.

그리고 2002년 그는 다시 대선 경선에 불복한 탈당을 선언했다. 이미지가 중요한 정치인으로서는 선택하기 어려운 길이었다. 이는 야당에도, 여당에도 속할 수 없는 혈혈단신 행보였다. 위태로운 모험이요, 기득권을 버린 용기였다.

이렇게 많은 선택들이 ‘기득권 포기’로 귀결됐지만 그는 철새의 대명사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그는 민주당 2선, 민자당 1선, 자민련 1선, 무소속 1선, 자유선진당 1선으로 국회의원만 총 6번을 한 최고 중진 의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는 정당성을 가지는 합리화의 도구다. 이인제의 잦은 당적 변경. 그의 행적은 투표를 통해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의 철새라는 낙인(烙印)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가 역사의 패배자이기 때문이다. 철새는 97년 경선·대선과 2002년 경선 등 큰 선거에서 모두 패한 노년의 정치인에게 찍힌 주홍글씨다.

정치사회는 기본적으로 세(勢)싸움이다. 싸움에서 패한 후 생존이 최고 가치가 된 약소 세력에게는 자비가 없는 곳이 바로 여의도 정치권이다. 상처 입은 패자의 언어는 역사로 쓰여지지 않는다. 역사적 패자는 대한민국 정치 기술(記述)에서 탈락되어 망각되거나 승자의 이념으로 짓눌릴 뿐이다.

다시, ‘철새’ 이 전 의원이 오는 6·13 충남지사 선거에 출마한다. 이번엔 유일 후보로 추대됐기에 당적을 바꾸진 않을 것 같다. 그가 승자가 되면 철새 낙인도 사라질까. 역사만이 답을 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 출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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