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권시동’ 걸자 요동치는 친이계-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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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권시동’ 걸자 요동치는 친이계-野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0.12.22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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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친이계 이미 무너졌다”‥김무성 “개각필요”
박근혜 전 대표 공청회 ‘친이-친박’ 대거 몰려
한나라 초선 23인 당론거부…친이계 핵심 포함
진보진영, 복지 어젠다 뺏기자 ‘박근혜 때리기’
우리 군의 연평도 해상사격훈련으로 남북 간 군사대치가 최고로 달해 있었던 지난 20일 오후. 외신들과 국민들의 눈은 연평도로 향해 있었지만 여의도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대권 ‘대세론-대망론’의 주인공인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에게 쏠려있었다.

‘참 나쁜 대통령’, ‘대전은요’ 등 평범한 말 한마디로 여의도 정가를 뒤흔들었던 박 전 대표가 처음으로 자신이 발의한 법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자 2011년을 불과 보름 앞둔 여의도 정가의 권력지형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MB정부 출범 이후 세종시를 제외한 4대강, 미디어법, 예산안 날치기 처리 등에 대해 여전히 침묵을 지키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 점에 비춰보면, 박 전 대표가 이날 ‘사회보장법 전부개정을 위한 공정회’을 연 것은 그야말로 이례적이다.

정치권 안팎에서 이 같은 박 전 대표의 행보를 두고 사실상 대권시동을 걸었다고 관측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간 친박계 내부에선 박 전 대표의 대권행보 시점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 현기환 의원은 공개적으로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우리 캠프에서는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그런 반성이 있었기 때문에 (박 전 대표가)내년 초 대권행보를 시작할 것으로 본다”고 말한 반면, 익명을 요구한 친박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가 내년 초부터 대권 행보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야권이 박 전 대표를 공격하면 할수록 대세론은 역시 ‘박근혜’라는 말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조기 대권론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박 전 대표는 왜 친박계 내부의 ‘조기 대권론자’들이 예상한 내년 1월보다 한 달여 빠른 시점을 택해 본격적인 대권시동을 걸었을까.

지난 2007년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를 세우는 박 전 대표의 2007년 한나라당 대선경선 공약)정책은 사회양극화 등 참여정부의 경제실책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대두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보수계층의 표심을 흔들 수 있었지만 현 시점에서 ‘박근혜식 복지’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일종의 도박에 가까운 일이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지난 8일 한나라당은 예산안 날치기 처리 과정에서 결식아동급식예산과 영유아 예방접종비 예산을 전액 삭감한 반면, 만사형통의 신조어를 만들어냈던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예산은 약1400억 원 증액시켰다.
 
또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 예산의 0.3%에 불과한 700억 원의 무상급식 예산을 두고 시의회와의 대화를 거부하며 사실상 파업을 선언했다.

물론 ‘침묵의 정치’라는 특유한 정치행보를 걷고 있는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 처리나 결식아동급식예산·영유아 예방접종비 예산 전액삭감, 무상급식 등에 대해 모르쇠 정치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대표는 복지관련 공청회를 개최했다. 그것도 헌법과 개별법 등에 기초한 현행 사회보장법의 선언적 조문을 바꾸는 ‘사회복지법 전부개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결국 여야가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인한 북풍(北風)으로 낡은 색깔론에 골몰돼 있을 때, 박 전 대표는 복지라는 진보진영의 ‘생활밀착형 이슈’를 단숨에 선점했다.

▲ 20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박희태 국회의장이 참석     ©뉴시스

심상찮은 친이계, 과연 무슨 일이?

“일각에선 친이계는 이미 무너졌다. (혹은)없다, 이미 해체된 지 오래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 사안에서 단일대오 형성 같은 것이 안 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김황식 前)감사원장이 총리가 돼 3달간 감사원장 직이 공백이다. 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지식경제부 장관도 교체 예정 부서로 공무원들의 안정적 업무가 어렵다는 여론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안으로 감사원장 등을 빨리 임명해 주기 바란다.”

전자는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이 21일 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친이계가 다수인 한나라당에서 (공천)제도 개선이 잘 될 수 있겠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답한 내용이고 후자는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김무성 원내대표가 한 발언 중 일부다.

남 의원의 발언은 넓게는 일부 친이계 인사가 친박계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좁게는 적어도 친이계의 내부결속이 약해졌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또 개각은 통상적으로 국면전환이 필요할 때 쓰였다는 점에서 김 원내대표가 친이계 내부의 동요를 달래기 위해 청와대에 개각 촉구 메시지를 보낸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 정광용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대표는 지난 10월 1일 PBC라디오<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친박계 의원들이 친박으로 넘어오려는 친이계 의원들을 블로킹했다”며 “친이계 의원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면 그 분들 때문에 박 전 대표에게 가는 게 어렵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한나라당 내부적에서는 MB發 검풍, 즉 청목회 사정수사와 개헌 등을 두고 친이계 내부단속과 MB충성파의 옥석 가리기를 위한 명분용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상황이다.
 
이는 오래 전부터 청와대와 친이계 주류가 친이의 친박 갈아타기를 우려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 20일 박 전 대표의 공청회에는 박희태 국회의장과 안상수 대표, 친이계 장광근·김기현· 강승규·고승덕·나성린 의원 등을 비롯해 70여명의 친이-친박의원들과 400여명의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그야말로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하는 규모로, 사실상 미래권력으로 상징됐던 박 전 대표가 현재 권력으로 일시 귀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날 친박계인 박희태 국회의장은 축사를 통해 박 전 대표를 유력한 미래권력으로 치켜세우며 “박근혜 전 대표는 복지는 돈만 갖고 하는 게 아니라고 선언했다. 돈과 사회서비스의 병행을 통해 사회복지의 절반을 채우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참 대단하다”면서 “오늘은 유력한 미래권력 박근혜 전 대표가 한국형 복지의 기수로 취임하는 날”이라며 낯 뜨거운 ‘근혜어천가’를 연발했다. 

친박계 의원 관계자는 박 전 대표의 정책 행보에 대해 “MB정부 출범 이후 친이-친박이 대립하자 야당과 언론이 두나라당이라고 비판, 그간 친박계 의원들의 모임 자체가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 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이렇게 전면에 나서면 친박계 의원들의 정치보폭이 넓어질 수 있다. 상당히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무된 친박계와는 달리 친이계 내부는 매우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대다수 친이계 의원들은 계파 결속력 약화에 대해 손사레를 치며 강하게 부인했지만 이미 친이계 내부의 조직력 약화는 쉽게 감지되고 있다.


▲ 왼쪽부터 한나라당 구상찬, 김성식, 김세연, 홍정욱, 김성태, 황영철, 정태근 의원.     © 뉴시스

실제 지난 15일 23명의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성과 결의>라는 제목의 성명서 발표를 통해 “의원직을 걸고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자성과 결의> 성명서에 참여한 의원들이다. 이날 성명서에는 4선의 남경필·황우여, 3선의 권영세·이한구·정병국, 재선의 신상진·임해규·진영, 초선의구상찬·권영진·김선동·김성식·김성태·김세연·김장수·배영식·성윤환·윤석용·정태근·주광덕·현기환·홍정욱·황영철 의원 등 23명이 참여했다.

성명서에 참여한 의원들의 계파를 보면 황우여 의원 등 중립파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정병국·임해규·정태근 의원 등의 친이 핵심층도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친이계 내부 역시 만만치 않은 동요가 있음을 암시했다.

12월 22일 현재 한나라당의 의석은 171석이다. 만일 물리력 동원을 거부한 23인이 당론에 따르지 않을 경우 한나라당은 국회 과반석에 못 미치는 148석에 불과하기 때문에 내년 초 예정돼 있는 한미 FTA 비준 등의 난항이 불가피하다.

그래서였을까. 김 원내대표가 이례적으로 인사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연내 개각을 촉구했다. 하지만 MB정부는 그간 개각 때마다 ‘좁은 인재풀’과 ‘강부자-고소용’ 등 인사 난맥상에 갈팡질팡한 모습을 연출, 인사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이다.

특히 현재 공석인 감사원장에는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백용호 정책실장·김경한 전 법무부 장관 등이, 국민권익위원장에는 박형준 전 정무수석·김경한 전 법무부 장관·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거론되고 있다.

또 교체가 유력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는 이동관 전 홍보수석·박형준 전 정무수석·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주호영 여의도연구소장 등이, 지식경제부 장관으로는 김종훈 한미 FTA 통상교섭본부장·조환익 코트라 사장 등이 하마평에 올라 있다.

지금까지 거론되고 있는 개각 인사는 대다수 친이계 핵심이자 친정부 인사다.
 
청와대가 2011년도 예산안에 대해 날치기 처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친정부 인사를 개각에 포함시키는 것은 그 자체가 부담이다.
 
그런데도 김 원내대표는 연내 개각을 주장했다. 개각으로 인해 MB정부가 국정주도권을 야당에게 뺏길 수 있고 자칫 4년차 레임덕을 맞을 수 있는 상황에서 왜 김 원내대표는 개각 촉구 발언을 했을까.

이는 김 원내대표가 친이계 인사들의 전면적 개각 등용을 통해 청와대에 힘을 실어주고 친이계 내부의 결속력을 다지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결국 박 전 대표의 조기 대권시동 역시 결속력이 약해진 친이계의 느슨한 연대 연장선장에 있는 셈이다.
 

▲ 왼쪽부터 국민참여당 이재정 대표,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 민주당 손학규 대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창조한국당 공성경 대표.     © 뉴시스


진보진영, ‘박근혜 때리기’ 본격화
“MB가 친환경 녹색성장이라는 어젠더를 제시했을 때 깜짝 놀랐다. 물론 MB정부의 녹색성장은 녹색이라는 근원적 의미인 사회적 형평, 인간과 환경의 공존이라는 결여돼 있기 때문에 일종의 회색이지만 MB측근들의 이슈 선점 능력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당시 진보진영이 많이 당황했다.”

지난 2008년 8·15 경축사에서 MB가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녹색산업과 성장의 선순환 정책을 내놓자 진보신당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실제 MB는 2008년 ‘저탄소 녹색성장’에 이어 2009년 8·15 경축사에서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 그리고 올해는‘공정한 사회’와 ‘정치의 선진화’를 새로운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그러자 그간 중도정당을 표방한 민주당은 중도 어젠다를 MB정부에 뺏기자 중도노선을 폐기하고 진보노선 강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좌클릭’에 동참했다.

MB에 이어 이번엔 박 전 대표가 2012년 대권을 앞두고 그간 진보의 어젠다였던 복지화두를 선점하자 자유주의 정당인 민주당부터 진보정당인 민노당·진보신당 등이 ‘박근혜 때리기’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21일 국회에서 가진 의원총회 비공개 발언을 통해 “우리가 왜 박근혜 의원을 대표라고 하느냐. 그냥 의원으로 불러라. 박 의원의 성역화를 우리가 인정할 필요가 없다”며 박 전 대표에게 견제구를 날렸다.

전병헌 정책위의장도 이날 의총에서 “박근혜 복지론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사회 양국화, 저출산·고령화, 사각지대의 빈곤, 청년실업 등 구조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라는 점이 확인됐다”면서 “박 전 대표의 복지론은 속빈 강정형, 빈수레형 복지정책”이라고 꼬집었다.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는 22일 CBS라디오 <변상욱의 뉴스쇼>에 출연해 박근혜 복지론과 관련, “복지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사실 빈곤층이 많아졌기 때문인데, (박 전 대표는)이런 상황에 대한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면서 “사회양극화를 일단 완화시켜 복지수요를 줄이는 게 더 중요한데, 고용문제·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한 대안이 전혀 없다”고 비난했다.

이재영 진보신당 정책위의장은 “박근혜식 복지는 보육·교육·직업훈련·보건 등 생애주기 전반에 대한 사회서비스를 강조하고 있는 반면, 노인·장애인·여성·한부모가족 및 다문화가족 등의 욕구에 대해서는 저소득층의 지원(공공부조)을 통한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며 “말은 거창하지만 다시 잔여적 복지로의 회귀”라고 비난했다.

우위영 민노당 대변인도 “박 전 대표가 그동안의 주장처럼 소득세 최고세율의 현행유지-법인세 인하를 주장한 채 종부세와 양도소득세에 대한 원상복구를 회피한다면, 한국형 복지는 재원마련에 대한 대책이 없는 위장복지”라며 “결국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는 가짜복지, 부자들 세금 있는 대로 깎아주는 친재벌 위장복지에 의한 서민호도에 불과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실제 그랬다.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줄푸세 정책을 주장했던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의 부자감세에 대한 야당의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지자 소득세 최고세율 유지-법인세 인하를 골자로 하는 감세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반항구적이고 대기업을 위한 법인세에 찬성하고 있는 상태에서 복지를 어젠다로 제시한 것은 그자체가 넌센스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박 전 대표가 생애주기에 따른 수요자 중심의 복지를 강조했지만 이를 위해선 보다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박 전 대표는 수요자 중심의 복지라는 총론만 제시한 채 각론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야권과 시민사회단체, 국민들이 박 전 대표에게 MB정부의 부자감세에 대한, 예산안 날치기와 복지예산의 대거 삭감에 대한 입장표명 요구가 잇따르는 이유다.

과연 박 전 대표는 유럽의 사민주의가 갖고 있는 인간과 복지의 조화를 중시하는 문화적 요구를, 21세기 창조적 미래자본인 복지를 통해 그간 주류에서 소외됐던 빈곤층을 위한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까. 이제 박 전 대표가 그간의 침묵을 깨고 답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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