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정치인에게 외모는 중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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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정치인에게 외모는 중요할까?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8.04.22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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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가 쏘아올린 이미지 정치의 사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 외모를 중시한 영입 형태는 DJ-YS 모두 활발했다. 이들은 선거 직전“미모의 젊은 여성 율사(律師)를 데려오자”며 몇몇 후보를 영입한 바 있다. ⓒ뉴시스

1960년 9월 26일 오후 8시 30분, ‘이미지 정치’ 시대의 새로운 막이 열렸다.

이날 미국에선 역사상 첫 TV 대선 토론이 진행됐는데, 이 토론의 여파로 젊은 신예 정치인 케네디는 ‘정치 거물’ 공화당의 닉슨을 꺾고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당시 라디오 중계를 들은 사람들은 닉슨의 우위를 점쳤지만, TV중계를 본 사람들은 케네디의 압승을 확신했다. 잘생긴 케네디의 얼굴이 나이든 닉슨과 대비되면서 시청자들을 현혹시켰기 때문이다.

인간은 종종 타인의 외모로부터 그 사람의 능력과 인성을 추론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행위들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타인의 겉모습, 체격, 의상 등 전반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대상을 평가하고 대상에 대한 태도를 형성한다.

정치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다. 결국 선거에서 후보자의 이미지는 유권자의 선택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인이 된다. 특히 TV뿐 아니라 SNS와 다양한 고화질 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정치 사회에서 우리는 후보자의 외모를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됐고, 따라서 외모에 현혹돼 오판(誤判)을 내릴 가능성도 더 높아지고 말았다.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국민회의 총재일 당시 15대 총선을 앞두고의 일이지요. DJ는 당에 젊은 여성 정치인을 입문시켜야겠다며 사회 각계의 걸출한 여성 인사 리스트를 뽑아오라고 말했어요. 제가 여러 명을 뽑아오니 ‘이 사람이 제일 예쁘다’라며 A씨를 접촉하라고 하더군요. 정치인, 특히 여성 정치인에게 있어 외모가 중요하다고 여긴 모양이에요.”

작년 9월, 당시 DJ의 측근이었던 정대철 민주평화당 고문이 <시사오늘>과 만나 이와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가 말한 A는 현재까지도 활발한 정치 활동을 펼치고 있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이런 영입 형태는 DJ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15대 총선 직전 “미모의 젊은 여성 율사(律師)를 데려오자”며 김영선 전 의원을 영입한 바 있다.

YS는 지난 2011년 당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나경원 의원이 그의 자택을 예방(禮訪)하자 이렇게 격려하기도 했다.

“반드시 당선되리라 믿어요. 인상이 좋고 누가 봐도 멋있는 여자라고 생각하므로 일단 점수를 따고 들어갈 겁니다. 외모가 상당히 중요하더라고요. 나도 과거에 유세가 끝나고 나면 따라다니는 사람이 엄청났었지요. 하하.”

외모의 중요성은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더 엄격한 잣대 탓에 여성 정치인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비단 여성 정치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오세훈 전 시장 역시 잘생긴 외모로 인한 높은 호감도로 공천을 받았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지난 2006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당 내부에서는 민주당의 강금실 전 법무장관을 대적할 상대로 오세훈을 내세우며 ‘그가 30~40대 여성에게 인기가 높다’는 분석을 덧붙이기도 했다.

▲ 후보자에 대한 지식이 전무할 때, 유권자들은 소속 정당과 후보자의 식견보다는 대중매체로 전달되는 후보자의 용모, 말투를 포함한 외양적 이미지에 더 큰 관심을 가진다. 외모를 내세운 정치인은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유권자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고, 때론 그의 ‘시그니처 정책’ 없이 유권자들을 현혹하기도 한다. ⓒ뉴시스

그렇다면 한국 선거에서 정치인의 외모가 중요해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몇몇 학자들은 87년 제13대 대선을 그 시작점으로 보기도 한다. 당시 각 후보 진영은 홍보를 위해 광고 대행사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그 영향으로 92년 14대 대선부터는 TV를 통한 후보자의 이미지 제고가 정치권의 관심을 끌었다.

조경섭의 학술지 논문에 따르면, 당시 YS는 정직한 이미지, DJ는 부드러운 남성의 이미지, 정주영 후보는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미디어에서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이때 군사 독재에 지친 국민들은 YS의 이미지에 끌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제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전국적인 스타 정치인이 대거 출몰하는 대선 또는 총선과는 달리, 지방선거는 인지도가 낮은 후보자가 많다. 투표율이 낮은 이유기도 하다.

그리고 후보자에 대한 지식이 전무할 때, 유권자들은 소속 정당과 후보자의 식견보다는 대중매체로 전달되는 후보자의 용모, 말투를 포함한 외양적 이미지에 더 큰 관심을 가진다. 외모를 내세운 정치인은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유권자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고, 때론 그의 ‘시그니처 정책’ 없이 유권자들을 현혹하기도 한다. 지방선거에서 ‘이미지 정치’가 더 판칠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이다.

중요한 결정은 어렵다. 그 결정이 내 고장의 4년을 결정하는 선택이라면 더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어려울수록 꼼꼼히 해 내야 하는 것이 선거다. 다산 정약용이 주창한 ‘공렴(公廉) 사회’, 사적 가치를 멀리하고 공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청렴한 공직 사회를 위해선 민주 시민들이 공직자들을 ‘잘 뽑고 잘 감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가장 치열했던 민주당 내 서울시장·경기도지사·광주시장 경선이 마무리되면서, 6·13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윤곽이 점점 완성되고 있다. 공은 이제 시민에게 넘어왔다. 정치인의 외양만 본 쉬운 판단이 아닌, 토론이나 유세과정 전반을 꼼꼼히 분석한 ‘어려운 판단’, 그것은 민주 시민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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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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