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케치]사찰 탐방① 산사(山寺)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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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스케치]사찰 탐방① 산사(山寺)의 봄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18.04.23 20:36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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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문화 유산을 찾아서…구례 화엄사와 하동 쌍계사 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명화 자유기고가)

봄이 무르익었다. 남도 섬진강 언저리에서 매화와 산수유, 벚꽃이 화려한 축포를 터트린 후, 개나리 철쭉 라일락 등 꽃 행렬이 펼쳐지다, 봄은 지리산 자락의 산사(山寺)에 까지 타고 올라갔다.

불교를 받아 들여 숭배하던 고구려, 백제 시대부터, 통일 신라와 고려에 이르까지 한민족 역사엔 오랫동안 불교가 번성했다. 그럼에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속엔 불교적 색채가 깊이 스며 존재해 왔다.

석가탄신일을 한달여 앞두고, 민족의 토속 종교처럼 정착해 내려온 불교 문화 유산을 찾아 불교 유적지를 향한 여행을 떠나 본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 지르는 섬진강 인근, 지리산 자락의 3대 사찰로는 구례 화엄사와 천은사, 하동 쌍계사를 꼽는데, 이번엔 화엄사와 쌍계사의 봄과 수많은 국보와 보물, 연등제를 만나러 가 보자.

▲ 화엄사 입구 겹벚꽃. ⓒ정명화

초봄 화엄사 가는 길의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과 홍매화 등은 벌써 자취를 감추고, 겹벚꽃(겹사꾸라)만이 완연한 봄을 지키고 있었다. 지리산을 타고 내려와 흐르는 계곡 물 소리와 어우러져 더욱 맑고 순수하며 화사해 보였다.

화엄사

▲화엄사 일주문. ⓒ정명화

 화엄사는 구례읍에서 약 5km정도 떨어진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천년고찰로, 544년(백제 성왕22) 인도 승려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화엄경의 두자를 따서 화엄사라고 이름을 붙였다는데,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졌으나 인조때 벽암선사가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7년만에 완성됐다고 전해진다. 

사찰에 들어서는 첫번재 문인 화엄사 일주문의 현판은 서예에 능했던 조선조 14대왕 선조의 서자였던 의창(義昌)군이 썼다고 적혀 있다.

▲ 금강문 ⓒ정명화

일주문 다음에 있는 금강문은 사찰의 중문으로, 여기서 포인트는 계단이다. 이 계단을 유심히 보면 큰 하나의 암석 덩어리에서 깎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엄사가 5대 사찰에 드는 연유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입구 계단부터 사찰 전반에 걸쳐 굉장히 정성을 기울여 세워졌음을 추측할 수 있는, 하나하나가 진기하고 보배로운 문화재임을 감지하게 된다.

▲ 천왕문. ⓒ정명화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여느 사찰처럼 화엄사에도 형형색색의 연등이 걸려 있다. 

▲ 화엄사 소나무. ⓒ정명화

여기에 경내의 소나무까지도 그 선이 매우 아름다워 마치 예술 작품같다. 그리고 화엄사 요소요소에, 특히 유명한 홍매화까지 연식이 300년이 넘을 정도로, 천년고찰에 어울리는 역사를 자랑하는 고목들이 즐비해 있다.

▲짧은 보제루 기둥. ⓒ정명화
▲ 보제루 내부. ⓒ정명화

화엄사는 보제루에도 특별함이 엿보인다.  지방 문화재인 보제루는 승려나 신도들의 집회용인 2층 누각 건물로, 대개는 그 밑을 지나 대웅전으로 들어서게 되지만, 화엄사의  보제루는 1층의 기둥 높이를 낮게 만들어 옆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장식을 배제하고 단청도 하지 않아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 범종각. ⓒ정명화

화엄사의 범종각과 운고각. 화엄사는 특이하게 입구 누각인 보제루 좌우에 범종을 위한 범종각, 북을 위한 운고각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보통 사찰에는 1층에 범종, 2층에 북이 있는 누각을 세우는 것이 보통이라는데 화엄사만은 특이하다.

▲ 서오층석탑(통일신라 9세기말~ 10세기초), 높이 640cm. ⓒ정명화

대웅전과 각황전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 이 탑은 보물 제133호로, 12지신과 여덟무리의 신들, 사천왕이 함께 새겨진 드문 예로서, 1995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한 유물 47점이 탑속에서 발견되었다.

▲  연등이 가득 달린 대웅전 앞마당. ⓒ정명화

대웅전앞에 석가탄신일을 기념하여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등이 걸려 있다. 이 시기가 되면 불자들과  승려들의 움직임이 매우 바쁠 것이며, 사찰을 찾는 관광객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 대웅전. ⓒ정명화

화엄사 대웅전은 보물 제299호. 〈사적기〉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6년 벽암대사가 중건했다고 한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높은 석단 위에 남향으로 세워졌다.

▲ 각황전 앞 석등. ⓒ정명화

각황전을 바라보며 각황전 앞 왼쪽에 위치한 이 석등은 높이 636cm로 국보 제12호다. 기단부·화사석·상륜부를 모두 갖춘 완전한 형태의 팔각석등으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석등 가운데 가장 크다.

▲각황전. ⓒ정명화

화엄사 각황전은 국보 제 67호로, 현존하는 국내 중층불전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각황전은 본래 장륙전(丈六殿)으로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3층 7칸으로 건립하였으며 내부에는 화엄석경(華嚴石經: 화엄경 원전을 엷은 청색 돌에 새긴 것, 보물 제1040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장륙전은 임진왜란 때 5,000여 칸에 이르는 화엄사의 전각들이 대부분 불에 타면서 함께 소실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장륙전은 1702년(숙종 28) 중건되었으며 2층 7칸으로 전보다 층수가 줄어들었다. 완공 후 숙종은 자신이 직접 쓴 ‘각황보전(覺皇寶殿)’이라는 편액을 내려 이때부터 각황보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원통전. ⓒ정명화

마주 보이는 원통전 옆과 각황전 사이엔 지금은 꽃이 다 떨어진, 그 유명한 흑매화나무가 가지만 앙상한 채 자리하고 있다. 초봄 매화피는 때엔 화엄사 각황전보다 이 매화가 단연 인기 최고인 주인공이다.

지나간 봄날의 흔적, 내년을 기약하며…

 

쌍계사

▲ 쌍계사 입구 계곡. ⓒ정명화

지리산 구비구비를 거쳐 의신에서 쌍계사 입구, 십리벚꽃길을 따라 화개장터까지 흘러 내려가는 맑은 계곡물이 섬진강으로 합쳐진다.

▲ 쌍계사로 들어가는 석문. ⓒ정명화

19번 국도따라 당도한 화개장터에서 십리벚꽃길로 들어서 계속 올라가면 하동 지리산 자락에  쌍계사가 자리 잡고 있다.

쌍계사 입구엔 쌍계, 맞은 편엔 석문이란 한자가 써 있는데, 신라 최고 문장가로 알려진 고운 최치원이 썼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 ⓒ정명화

매표소를 지나면 만나는 쌍계사 입구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계곡과 거대한 숲 길을 따라 연등 행렬이 곱게 줄을 지어 있다.  화개 십리벚꽃길에서부터 이어지는 쌍계사까지의 행로는 아름다운 길로 손꼽히는, 천연기념물이라 할 수 있겠다. 

▲쌍계사 일주문. ⓒ정명화

쌍계사는 723년(성덕왕 2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선사가 당에서 귀국하여 육조혜능의 정상을 모신 뒤 처음 옥천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그 후 840년(문성왕 2) 진감선사가 당에서 차 씨를 가져와 절 주위에 심고 중창하면서 대가람(규모가 큰 절)이 되었다. 쌍계사는 886년(정강왕1)에 그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1632년(인조)에 벽암선사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형적인 산지 가람배치로 남북측 선상에 금강문, 천왕문, 팔영루, 대웅전(보물 제 500호) 등이 일직선으로 있고, 대웅전의 좌우에 설선당과 요사가 보존되고 있다.

화엄사에 국보급 문화재가 유독 많다면, 쌍계사는 고유의 국보물과 함께 주변 자연 경관의 산수가 보물 못지 않게 예술이다.

▲ 9층 석탑. ⓒ정명화

천왕문을 지나 팔영루 앞에 있는 9층 석탑은 백제나 신라의 석탑들과 형태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고산 스님이 인도 성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올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삼과와  산내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심사리 이과의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를 모신 곳으로, 비교적 최근인 1990년에 완성된 탑이다.

▲나한전 돌담. ⓒ정명화

대웅전 가는 길에 만난 봄날 정취 물씬 풍기는 돌담으로, 요즘 유독 한옥 황토담이나 돌담에 관심이 가는데, 이 또한 문화재라 아니 할 수 없게 고색창연하다.

▲대웅전. ⓒ정명화

쌍계사의 대웅전은 보물 제 500호이며 대웅전앞 진감국사탑비는 국보 제 47호다.

진감국사탑비는 신라 정강왕이 진감선사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앙모하여, 대사가 도를 닦은 옥천사를 쌍계사로 개명한 뒤 887년(정강왕 2년)에 건립한 것으로,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썼으며 승, 빈영이 새겼다고 한다. 

▲금강계단. ⓒ정명화

대웅전 뒤 화엄전 옆에 있는 쌍계사 금강계단은 최초의 금강계단인 통도사의 그것과 규모나 모양이 닮았다고 한다.

▲ ⓒ정명화

금강계단 옆 오른 쪽의 굴뚝처럼 보이는 낯선 구조물은 소대라 불리는 것으로, 제사를 지낸 다음 위패나 망자가 소지했던 물건 혹은 옷가지를 태우는 곳이란다.

▲ 삼존석불. ⓒ정명화

쌍계사 맨 뒤에 자리한, 금강계단 바로 다음에 위치한 이 석불은, 고려시대때 만들어진 걸로 추정되는 마애불로, 큰 바위에 두터운 돋을 새김으로 불상을 새기고 불상의 둘레를 깊이 파내었다. 우리 조상과 장인의 예술적인 재주와 손길에 절로 감탄해 마지 않게 된다.

▲ ⓒ정명화

끝으로 쌍계사 경내 앞쪽에 위치한 바위위에 뿌리인지 줄기인지를 내린 특이한 고목이 유독 눈에 띈다.

천년고찰의 묘미를 제대로 발휘해 나름의 고풍을 드러내는 천년묵은 나무, 생생한 산 역사로 손색이 없다.

이번 사찰 탐방을 하고, 면면히 내려온 아름답고 훌륭한 우리의 불교 문화 유산에 감탄하며 그 의의가 너무 커서, 앞으로도 불교 문화 유적을 찾아가는 사찰 탐방은 계속될 것이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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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여수) 2018-05-21 05:50:55
화엄사 경내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그림의 한폭으로 내 몸이 빨려 들어감을 느낍니다.
정갈한 소나무 한그루를 올려볼때 덤으로 보이는 푸른하늘빛을 보는 순간..
금상첨화라는 말이 절로실감이 남니다.
매년 석가탄신일에 다녀올 사찰을 미리 꼽아 두는데 올해에는 올초에 잠간 들른
구례 화엄사로 다녀 오기로 하였습니다.
구본무 회장님의 귀천을 맞은 달에..성불 하시길 기원합니다.

최규일 2018-05-01 11:29:43
개인적으로 사찰 탐방, 그중에서도 폐사지 답사를좋아합니다.
이번에 소개하신 화엄사, 쌍계사는 가보긴 했지만 자세히 보진 않았는데 기사 덕분에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되고 다시 가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쌍계사에 삼존마애불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실제 모습을 보진 않았지만 사진으로만도 예술성(?)이 있어 보이고 고려시대 조성된 것이라면 역사성도 충분할 텐데 국보나 보물로는 지정되지 않았나요?

저 개인적으로는 부산 석불사의 마애불도 참 좋아합니다.

좋은 여행 글 감사합니다.

문영진 2018-04-24 06:31:42
이번 봄 존경하는 선배와 함께 화엄사를 다녀왔는데도 이 기사를 보니 내년 봄 절정의 매화를 보러 화엄사를 다시 찾아가보고 싶네요

이혁기 2018-04-24 04:39:07
쌍계사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조만간 한번 가봐야겠네요.
일상스케치를 늘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