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서희의 통큰 담판과 남북정상회담
[역사로 보는 정치] 서희의 통큰 담판과 남북정상회담
  • 윤명철 논설위원
  • 승인 2018.04.29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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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는 서희 장군의 국제 정세에 대한 깊은 통찰과 혜안을 필요로 한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 서희 장군은 거란의 침략으로부터 고려를 구한 영웅이다. 발해를 멸하고 동북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거란은 송을 무너뜨리고 중원의 패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송과 친선관계인 고려가 후방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송을 공격할 순 없었다. 거란은 고려를 먼저 손 보기로 작정했다. ⓒ뉴시스

서희 장군은 거란의 침략으로부터 고려를 구한 영웅이다. 발해를 멸하고 동북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거란은 송을 무너뜨리고 중원의 패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송과 친선관계인 고려가 후방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송을 공격할 순 없었다. 거란은 고려를 먼저 손 보기로 작정했다. 

거란은 993년 군대를 일으켜 고려를 침략했다. 고려의 군대는 난적 거란의 군대에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황은 불리하게 전개됐다. 고려 조정은 패색이 짙어지자 항복파와 강화파로 분열됐다. 강화파도 서경 이북을 거란에 할양하는 굴욕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고구려를 계승해 옛 고토를 회복하겠다는 고려 태조의 웅대한 기상은 간데없고, 고려의 문벌귀족들은 ‘굴욕적인 평화’가 최우선 과제가 됐다.

고려의 지배층은 국가의 안위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형제국 발해를 멸망시킨 주적(主敵) 거란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가 더 중요했다. 결국 그들의 선택은 굴욕적인 강화였다.

하지만 서희 장군은 이들의 굴종(屈從)을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이 거란과의 담판에 나서겠다고 자청했다. 그는 거란의 침략 의도와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거란은 고려와의 장기전을 원하지 않았다. 오로지 송과의 결전을 앞두고 후방의 위협을 제거하고, 고려를 자신들의 속국으로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서희 장군은 거란의 속을 꿰뚫고 목숨을 걸고 담판에 나섰다. 거란의 소손녕은 “너희 나라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다. 고구려 땅은 다 우리의 소유인데 어찌해 너희 나라가 차지하고 있는가?”라며 기선을 제압하고자 했다. 이에 서희 장군은 “우리나라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며 “우리의 옛 땅을 되찾은 다음에 성을 쌓고 도로를 만들게 되면 어찌 친선 관계가 맺어지지 않으리오”라고 되받아쳤다.

적장 소손녕은 서희 장군의 기세에 눌렸고, 오히려 강동6주를 내주는데 합의했다. 고려는 한 치의 영토도 잃지 않았고, 현재의 평북일대에 새로운 전진기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서희 장군의 명확한 동북아 정세분석과 혜안이 고려를 구한 것이다.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남북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선언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다. 북한의 의도는 김정은 체제 안전 보장과 국제사회의 제재 해제에 있다. 우리는 목표는 한반도 평화다.

서희 장군처럼 국제 정세에 대한 깊은 통찰과 혜안이 필요한 이유다.

예를들어 이번 판문점 선언 합의문에는 서해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서해 NLL은 서해5도와 수도권의 안전을 보장하는 안보의 최전선이다.

만약 북한의 어선을 가장한 북한 해군 함정이 인천 앞바다에 출몰한다면 대한민국 안보는 풍전등화의 신세가 될 수도 있다. 평화를 향한 열정이 지나치다 보면, 이를 간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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