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작가 김승옥의 문학사적 의의
스크롤 이동 상태바
천재작가 김승옥의 문학사적 의의
  • 박지순 기자
  • 승인 2009.08.10 14: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0년대에도 그의 작품 읽을 이유 있다
 
▲ 문학동네에서 펴낸 김승옥 소설 전집     ©시사오늘

최초 한글세대 작가, 후세 문인들에게 절대적 영향
30년대 이상과 더불어 한국문단 양대 천재 평가

1930년대의 이상과 60년대의 김승옥은 한국문단의 양대 천재로 꼽힌다. 이상이 작품을 발표한 기간은 30년대에 국한됐고 젊은 나이에 요절해 사후 70년 가까이 지난 현재 그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충분이 검토되고 일정 방향으로 정리가 된 듯하다.
 
이상은 한국 문단에서 유례가 없는 난해한 시를 발표해 활동 당시에는 기인으로 불렸고 정신이상자 취급도 받았지만 서구의 선진 문학 사상을 누구보다 일찍 접하고 이해한 천재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같은 천재라도 김승옥은 이상과는 여러 모로 다르다. 단명했다는 점과 문단에 분파를 만들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이상이 김승옥보다는 일견 보다 천재적인 것 같기도 하다. 김승옥도 이상만큼은 아니지만 창작 활동에 종사한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재학 중이던 1962년 단편 ‘생명연습’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한 후 1979년 실질적으로 마지막 작품이라 할 ‘우리들의 낮은 울타리’ 발표를 끝으로 더 이상 작품을 내 놓지 않았다. 1981년 4월, 김승옥이 간증을 통해 여러 차례 밝혔듯 ‘하나님의 손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종교적 계시를 체험한 후에는 신앙에만 몰두해 오고 있다.

김승옥의 문학을 현재에도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에서 천재성이 발견돼서이기도 하지만 부지불식 중에 후배 문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최초의 본격 한글세대 작가인 김승옥은 창작에서는 천재이면서 문학사적 영향력에서는 ‘대가’라는 이중성을 지닌 세계 문학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인물이다.

독자와 시대와 만난 행복한 작가 

 기자는 김승옥을 직접 만나 그의 문학이 출발할 당시의 상황과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생명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지 들어보기 원했지만 김승옥의 건강이 허락하지 않았다. 몇 해 전 중풍으로 쓰러져 재직하던 세종대 교수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현재는 말을 자유롭게 못 해 쪽지에 메모를 해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고 한다. 기자가 만난 세종대 국어국문학과 김종욱 교수는 김승옥 연구에 조예가 깊으면서 김승옥의 후임으로 세종대 교수가 된 묘한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김 교수는 김승옥과 60년대라는 시점의 상관관계에 대해 “독자와 시대와 작가의 행복한 만남”이라고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김승옥이 이상과 달리 ‘행복한 천재’인 이유도 ‘3자 대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승옥은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해방과 동시에 전남 순천에 정착해 살았는데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우리말이 서툴렀다고 한다. 그가 해방된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한글을 배운 한국문학계의 ‘순수 혈통’을 시작한 작가라는 사실이 간과돼서는 안 된다.
 
김 교수는 1950년대 중요 작가인 손창섭과 장용학을 ‘한글을 모르는 세대’라고 규정했다. 1950년대 이전 작가들에게는 일본어가 국어였기에 독학으로 배운 한글로 작품을 썼어도 ‘이중어 세계’의 틀을 벗어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김승옥의 작품은 이전 세대에서 발견할 수 없는 ‘문장의 충격적 묘사’로 등단과 동시에 문단을 석권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1960년대가 김승옥을 낳았는지 김승옥이 우연히 그 시대에 작품활동을 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제2차 근대화’로 명명할 수 있는 1960년대를 정확히 포착한 데서 김승옥의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격동기를 거칠 때 살기는 힘들지만 작품의 수준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며 “일제시대가 제1차 근대화라면 4·19 이후는 제2차 근대화라고 보면 된다”고 부연 설명했다.

김종욱 교수 “김승옥 작품 현재에도 읽을 이유 있다”

김승옥의 대표작으로 이견 없이 지목되는 ‘무진기행’의 주인공 윤희중은 돈 많고 배경 좋은 과부와 결혼해 제약회사 간부가 된 인물이다. 그는 전무 승진을 앞두고 아내의 권유에 따라 잠시 머리를 식히러 고향인 무진(霧津, 무진은 실재 지명이 아닌 가상의 공간이다.)에 갔다가 무진의 명물인 자욱한 안개를 만나며 괴로웠던 청년기를 떠올리게 된다.
 
자살을 꿈꾸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골방에 갇혀 있는 동안 윤희중이 만난 사람들은 속물이 돼 버린 동창생 세무서장 조, 후배 박, 상경을 꿈꾸는 시골학교 음악 선생 하인숙이란 여자다. 이들은 대개 속물적 인간관계로 맺어져 있으며 윤희중은 하인숙과 잠깐의 사랑을 나누고 서울로 다시 올라온다는 줄거리다. 급격한 산업화 시대에 인간의 허무함을 무진기행 만큼 날카로운 동시에 무관심한 듯 표현한 작품은 김승옥이 아니면 도저히 쓸 수 없었을 듯싶다.

김 교수는 동시대 작가인 김승옥과 이청준을 비교하며 이청준이 오랜 세월 작품을 발표하면서 변모의 과정을 거친 반면 김승옥은 등단 당시의 한 모습으로만 일관했다고 평했다. ‘60년대 풍’을 고집한 김승옥의 작품을 2000년대에 읽을 이유가 있을까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 김 교수는 확답을 못 했다.
 
그는 과거 문화 영역에서 권력을 행사하던 문학의 시대는 끝나고 그 중심이 영화로 이동하면서 미적 기준이 민주화, 하향평준화 됐다고 지적했다. 문화의 자본 종속의 결과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김승옥의 작품을 4·19세대 최대의 문제작인 ‘광장’과 대조하며 관념적이지 않고 쉽게 읽힐 수 있는 장점은 현재도 유효하다고 진단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