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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파토스(pathos) 정치를 자극하는 역대 대통령 호감도 조사
2018년 05월 13일 16:49:00 한설희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 정치 지도자가 가진 호감도의 허망함은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과거 호감 부문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렸던 인사다. 이제 유권자들은 더이상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구체적인 업적을 근거로 정치인의 능력을 판단해야 한다. ⓒ뉴시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중을 설득하는 세 가지 방식으로 에토스(ethos)와 파토스(pathos), 그리고 로고스(logos)를 제시했다. 발화자 개인의 인격을 강조하는 에토스와 청중의 욕구와 정서를 자극하는 파토스는 감정적인 설득에 무게를 두는 반면, 로고스는 합리적인 논증에 기초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에토스·파토스를 강조하는 지도자가 국민들의 이데올로기를 조종하고 감성을 자극해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로고스를 중시하는 지도자는 논증을 통해서만 설명되는 비전을 제시하는 셈이다.

이 파토스는 한때 리더십과 접목돼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바로 지금은 잠잠해진 ‘감성 지수(EQ)’ 열풍이다. 리더십에 있어 지능 지수(IQ)는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성적과 관련 없는 EQ가 필요하다는 이 주장은 사교육계와 청년들의 취업 시장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이 주장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저널리스트 대니얼 골먼은 그의 저서를 통해 지도자의 EQ가 리더십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표적으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을 ‘EQ 신화’의 예시로 들었다. ‘지성은 2류, 기질은 1류(A second-class intellect, but a first-class temperament)’로 평가받던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된 까닭은 바로 그 기질, 즉 친근감으로 무장한 그의 감성 능력 덕분이라는 것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파토스와 이성을 자극하는 로고스 모두 장단점이 있겠지만, 파토스에만 쏠린 지도자는 국민의 생각을 편협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국민 의식을 유아기적 본능인 호불호(好不好), 좋고 싫음의 감정에만 묶어두기 때문이다.

파토스에만 몰두한 차기 지도자들은 대중의 표를 얻기 위해 실현 가능한 공약을 제시하고 현 제도의 미비함을 지적하는 대신, 속된 말로 ‘감성 팔이’에 열중한다. 사회 전반에 흐르는 대중들의 분노와 고단함을 자극해, 대중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좋고 싫음’에 지배되도록 만든다.

당연한 수순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최대 관심사인 정당과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비호감을 사지 않기 위해 귀에 발린 말, 일명 ‘증세 없는 복지’와 같은 허구성 공약만 남발하게 된다. 멀리하고 싶은 ‘디스토피아 정치’의 일면이지만, 선거철 대한민국과 닮은 모습이기도 하다.

   
▲ 여론조사라는 명목으로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전·현직 대통령 호감도 조사’는 유권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파토스 정치의 절정이다. ⓒ뉴시스

그러나 멀리 해야 할 이 ‘감성 팔이’ 정치에 오히려 휘발유를 끼얹는 존재가 있다. 여론조사라는 명목으로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전·현직 대통령 호감도 조사’다.

리서치뷰가 뉴시스의 의뢰로 지난 3월 31일~4월 1일 여론조사를 한 결과, 문재인 대통령은 36%의 높은 지지율을 얻어 박정희(27%), 노무현(19%), 김대중(7%), 김영삼(3%), 이명박·박근혜(2%) 전 대통령을 높은 차이로 앞섰다(전국 성인남녀 1000명 대상, ARS 자동응답시스템 RDD 방식 진행, 무선 85%·유선 15%,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응답률 3.4%).

이 순위를 결정하는 질문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당신이 박정희·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일곱 명의 전·현직 대통령 중 가장 호감 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각 대통령이 일궈낸 제도적 성과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이, 개인적 감정만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 오로지 호불호가 지배하는 세계, 파토스의 영역이다.

이 조사는 매번 높은 관심을 받고 널리 유포된다. ‘문재인이 박정희를 이겼다’, ‘문재인·김대중·노무현 등 진보 대통령들의 지지율이 박정희·이명박·박근혜 등 보수 지지율을 더블스코어로 앞선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보수보다 진보 대통령을 뽑는 것이 낫다’는 식의 어설픈 논증 관계도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리고 이 재생산의 굴레에서 대통령들의 성과는 논의되지 않는다. 이를 의식한 대통령과 차기 지도자 후보들은 뚜렷한 성과보다 이미지 정치에 몰두한다. 매스미디어가 크게 발달하면서 정치인들이 스스로를 홍보할 수 있는 통로가 많아지면서, 이러한 이미지 전략도 심화됐다. 이념이나 정당 간에 차별화된 정책을 통한 경쟁은 묻히고, 특정 정치인의 어색한 눈물이, 혹은 누군가의 공허한 분노가 연일 헤드라인에 오르며 유권자들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현실이다.

결국 유권자들은 정치인에 대한 실질적 정보보다 그가 겉으로 어떻게 보이는지, 즉 정치인의 이미지에 따라 표를 행사할 확률이 높다.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나 검증된 능력 없이, 오로지 전략적인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사람 좋아 보이는’ 누군가가 정권을 쟁취할 뿐이다.

정치 지도자가 가진 호감도의 허망함은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과거 정치인 박근혜는 정서적인 호감 부문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렸다. 지난 2007년 그는 ‘분야별 존경하는 인물’을 뽑는 <시사저널>의 설문에서는 2위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3위인 이명박 대통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으며, 심지어 2009년 진보 시사지 <시사in>의 100호 특집 여론조사에서도 무려 30%의 지지를 얻어 8%를 얻은 유시민 전 장관을 제치고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 1위’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므로 유권자들은 이젠 구체적인 사실을 근거로 정치인의 능력을 판단해야 한다. 정치인이 과거 정치인이나 행정가로서 달성했던 업적과 가시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그의 역량을 평가해야 한다. 한국의 정치 문화도 이미지 중심의 단발성, 휘발성 정보 수용보다는 다양하고 심층적인 정보를 확산하고, 유권자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스스로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 첫 단추를 ‘전·현직 대통령 업적 호감도 조사’로 끼운다면 어떨까. 단일 문항으로 대통령 개인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업적에 대한 심층 평가로 여론 조사 문항도 바뀌어야 한다. 이젠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 김영삼의 ‘금융 실명제’, 김대중의 ‘남북정상회담’, 노무현의 ‘과거사 진상규명’, 이명박의 ‘4대강 사업’ 등 각각의 대표적인 성과를 놓고 유권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여론조사부터 파토스 정치의 시대를 끝내고, 로고스 정치의 시대에 가까워질 때다.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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