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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스케치] 지리산의 사계① 바래봉과 팔랑치 철쭉제
꽃분홍으로 물든 지리산 능선
남원 운봉 바래봉, 팔랑치 철쭉 축제와 갖가지 야생화 천국
2018년 05월 14일 20:41:28 정명화 자유기고가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명화 자유기고가)

지금 삼천리 금수강산 대한민국 산야는 활력이 넘치다 못해 온통 초록빛 파도가 넘실댄다.

이렇게 봄이 무르익어 화려한 마지막을 장식할 즈음 지리산으로 향했다. 그곳은 다양한 야생화 천국인데다 최대 철쭉 군락지라 5월이면 거대하고 향긋한 분홍빛 융단을 사뿐이 즈려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24회 지리산 운봉 바래봉 철쭉제가 4월 21일부터 5월 20일까지 지리산 바래봉 기슭과 허브밸리 일원에서 개최중이다.

   
바래봉 가는 길 철쭉. ⓒ정명화

철쭉 향연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내려온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즐비한데, 필자는 남원 인월 지리산터미널에 하차하여 운봉으로 그리고 용산마을에서 바래봉을 향해 올랐다. 남원과 운봉, 인월간에는 시내버스가 15분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어 대중교통으로 지리산 트래킹이 충분히 가능하다.

   
▲ 바래봉 삼거리. ⓒ정명화
   
팔랑치 산철쭉. ⓒ정명화

 '철쭉이 얼마나 피었나요?' 철쭉의 개화 정도를 알기 위해 지리산국립공원 사무실에 수차례 연락을 했다. 친절한 담당자는 아직 꽃망울도 맺히지 않았어요. 하단엔 피기 시작했어요. 진달래는 피었어요...등등 답변을 해줘 실시간 지리산 철쭉의 동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가봐야 정확한 현주소를 알 수 있기에 상춘객들은 철쭉 절정의 개화기에 맞춰 산행을 나서기가 쉽지 않다.

 특히 올핸 봄이 빨리 찾아와 개화시기가 빠를거라 예측됐지만, 일기가 들쑥날쑥하다보니 지리산 철쭉은 변화무쌍한 날씨에 부대끼고 느긋하기 찍이 없어 기다림의 진수를 맛보게 했다.

 기대를 안고 찾아간 바래봉은 철쭉이 거의 다 지고 사라져 멀리서 정상만 바라본 후 팔랑치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리산 탐방로 안내. ⓒ정명화
   
팔랑치에서 바라본 바래봉, 저멀리 바래봉이 보인다. ⓒ정명화

봄이면 온갖 야생화들이 피어나고 5월엔 철쭉의 분홍빛으로 화사하게 물드는 지리산...

지리산은 언제부턴가 나에겐 숙제같은 산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필자는 교가속에 '지리산 정기받아 우뚝선 학원~ '하는 지리산이 병풍처럼 드리운 고장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렇기에 지리산과의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겠다.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면서 지리산은 묵묵히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가까이 다가왔다 하는 존재로 잊고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어린 시절 할머닌 손녀딸을 데리고 당신의 삶을 풀어내곤 하셨는데 그 이바구속에 등장하던 강렬한 산 '지리산'이다.

할머니 이야깃속 지리산의 첫인상이자 이미지는 두렵고 무서운 존재였다.     

지금이야 지리산 연관검색어가 지리산 둘렛길 내지는 지리산 등산코스같이 평온하기 그지없지만, 내머리속 지리산하면 떠오르는 첫번째 연상 단어는 빨치산(partisan)이었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쳐 굴곡진 역사를 두루 거치며 사신 할머니는 유독 6.25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무엇보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휴전이 되었음에도 퇴각하지 못한 빨치산들이 지리산 구비구비 숨어 있다 인근 마을에 식량보급품을 찾아 하산한다는 것이다. 영화 남부군이나 여타 드라마에서 극화되어 영상으로 보아 짐작하듯이 말이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밤은 무서웠다. 작은 마을의 밤은 도시와 달리 정적이 흐르고 간간이 멀리서 보이는 불빛뿐 거의 적막강산과 다를 바 없었다.

고향집이 있던 읍내까지 빨치산이 내려오기도 하여 편찮으셨던 할아버지를 모시고 지리산과는 최대한 떨어진 근동의 친척집으로 피난을 가곤 하셨다고...거기서도 가마니포대를 몇겹씩 덮고 그 아래에 숨어들 계셨단다.  

   
빨치산의 근거지였던 지리산. ⓒ정명화

지금 보면 참 평화롭고 끝없이 관대한 모습인데, 과거 역사속 얼마나 치열하고 상처가득한 곳인가. 선혈로 낭자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종지나물(미국제비꽃).  ⓒ정명화
   
선갈퀴. ⓒ정명화

하산한 팔랑치에서 팔랑마을로 내려 가던 중 만난 야생화. 입산하기 쉽게 정비되어 있는 용산에서 올라간 길과 달리 이 길은 아직도 야생의 자연생태계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다양한 야생화를 만날 수 있었다.

   
▲ ⓒ정명화

 맑은 물이 흐르듯이 시간도 흐르고, 자라면서 지리산 자락의 명소를 놀이터 삼으면서 지리산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다.

 봄이면 십리벚꽃 구경과 여름 방학엔 쌍계사, 의신 계곡의 맑은 물에서 물놀이하며 지리산은 점점 편안해지고 든든하기 까지 했다. 

 하지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대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품어 안고 침묵하는 지리산, 인적이 드문 코스인 팔랑치에서 팔랑마을로 간간이 들리는 산새 소리와 계곡 물소리를 친구 삼아 하산하면서 유독 생각이 많았다.

 지리산은 아픈 상처를 안고 이날까지 왔다. 이념의 굴레에 갇혀 동족끼리 총구를 겨누고 많은 희생자를 낸 빨치산들이 누볐을 무대, 그들이 깊은 산세의 지리산을 헤메며 어떠했을 지 무서우면서도 안타까운 기분에 착잡한 한편 인간적인 연민으로 가슴이 아려왔다.

 국내외 정세가 급속히 돌아가는 현 시점, 남북 회담과 한미회담, 그리고 북미회담까지 앞둔 이 상황에서 오르내린 지리산은 만감이 교차했다.

 남북이 해빙무드에 든 지금, 과연 지리산의 상처는 치유되는 그날이 올까.

 지난 아픈 시절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이 한반도에도 지리산처럼 완전한 봄이 정착하려나.

 열렬히 시청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마지막회에 여주인공 여옥(채시라 분)이 최대치(최재성 분)의 품에 안겨 숨졌던 지리산 설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갖가지 상념과 함께 설원의 지리산을 떠올리며 설경도 언젠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소망을 안고 이날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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