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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땠을까] 정치인 피습의 역사
민주화운동 시기, 목숨을 걸었던 양金
문민정부 이후 노골적 위협 거의 사라져
2018년 05월 17일 17:25:13 김병묵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정치인들의 수난시대다. 지난 5일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폭행당한 데 이어, 14일엔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피습 당했다. 정치인들은 공인(公人)이다 보니, 시대를 막론하고 그만큼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과거 한국 정치사엔 어떤 피습 사건들이 있었을까.

   
▲ 1969년 초산테러를 당한 후의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량. ⓒ김영삼 전 대통령 회고록

민주화운동 시기, 목숨을 걸었던 양김

군부독재 시절, 제도권 민주화운동의 선봉이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사선(死線)을 헤쳐 나가야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YS가 당했던 초산테러와 DJ 납치사건이다.

1969년 6월, YS는 국회에서 3선 개헌의 부당성을 알리는 대정부질의를 한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YS는 귀갓길에 상도동 자택 앞에서 차량에 초산이 던져지는 테러를 당했다. 괴한은 원래 YS의 뒷문을 열려고 시도했으나, 차가 움직이자 초산병을 던졌고 이 때문에 차량 페인트가 녹아내리기도 했다. 이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1973년 8월, DJ는 일본 동경에서 반(反) 박정희 집회 참가를 앞두고 피랍됐다. DJ는 감금됐다가 129 시간 만에 동교동 자택 근처에서 풀려났는데, 이는 한국 중앙정보부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미국 의회에서 그 사실을 폭로했고, 1987년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그 전말을 일부 증언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이후 노골적 위협은 거의 사라져

문민정부 이후 노골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의 테러, 특히 국가 권력이 개입되는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계란을 맞는 봉변이 간혹 벌어지는 수준이었다.

2001년 5월, 민주당 고문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서 노조 조합원들이 던진 계란을 맞았다. 당시 심경을 묻는 기자들에게 노 전 대통령은 “정치인들이 한 번씩 맞아줘야 국민 화가 풀린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였던 이듬해인 2002년 11월엔 ‘우리 쌀 지키기 전국 농민대회’ 연설 중에도 계란을 맞았지만, 연설을 마치고 내려왔다.

정치인 간 계란 투척사건도 벌어졌다. 2014년 9월, 안창수 창원시장은 김성일 당시 창원시 의원에게 본회의장에서 계란을 맞았다. 야구장 입지 문제로 인한 항의였다. 이로 인해 김 전 의원은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14일, 당시 상황을 담은 <왜, 시장에게 계란을 던졌을까>라는 제목의 책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존재한다.

2006년 5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지지연설을 하려고 이동하던 중 괴한이 휘두른 커터칼로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 박 전 대통령은 장시간의 봉합수술을 받았다. 이때, 수술 뒤 박 전 대통령이 깨어나자마자 했다는 ‘대전은요’라는 한 마디는 선거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이는 또한 군정종식 이후 흔치 않은 강력한 정치인 테러 사례로 기록됐다. 특별히 박 전 대통령을 노렸다기보다 주목받는 범행을 저지르고 싶었다는 범인은, 10년 형을 선고받고 2016년 출소했다.

특별히 화제가 됐던 계란 노무현 전 대통령도 민주당 고문 시절인 2001년엔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서 노조 조합원들이 던진 계란을 맞았다. 그는 당시 “노조원들의 심정 이해한다”며 그대로 맞았다. 심경을 묻는 기자들에겐 “정치인들이 한 번씩 맞아줘야 국민 화가 풀린다”고 답해 지지자들에게 인상을 남겼다. 후보 시절인 2002년 11월 ‘우리 쌀 지키기 전국 농민대회’ 연설 중 계란으로 턱과 입을 맞았으나 끝까지 연설을 마치고 내려온 일도 있었다.

외교관이 공격받은 사례도 있다. 2015년 마크 리퍼트 미국 주한대사는 2015년 3월, 한 강연회에서 괴한에게 과도로 습격을 받았다. 리퍼트 대사는 얼굴에 10cm 가량의 자상을 입는 등 5곳에 상처를 입었다. 리퍼트 대사는 병원으로 후송되는 중에도 ‘자신은 괜찮다’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은 범행 동기에 대해 미국 대사에게 항의할 일이 있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야권 정계의 한 소식통은 17일 <시사오늘>과의 만남에서 “정치인들은 크든 작든 정치적인 대표자이다 보니 책임소재도, 분노도 몰리게 된다”며 “어찌됐든 직접적 폭행 등은 문민정부 이후로는 찾기 어려웠는데 요즘은 좀 분위기가 이상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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