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살짝 가지 않고서는 정치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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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살짝 가지 않고서는 정치 못합니다”
  •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 승인 2018.05.2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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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호의 시사보기>정치인 평가 기준은 일반인 평가 기준과 다를 수밖에 없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요즘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와 남경필 경기도지사 후보 간 ‘자질론 논쟁’이 인터넷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필자도 몇 년 전 세간에 문제가 되고 있는 전화 통화 내용을 듣고 잠시 놀란 적이 있다. 용어의 선택이나 통화 당사자가 이 후보의 형수라는 사실이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통화와 관련해서 기자가 전화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통화 내용이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겠느냐는 것이었는데,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어서 별로 영향을 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도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은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악의적이건 아니건 정치인의 이중성은 정치환경에서 초래된 측면이 있다. 양면적 성향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도 정치를 하면서 차츰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현역 원로 정치인과 이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이 원로 정치인은 ‘살짝 가지 않고서는 정치 못합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가 갖는 속성 때문입니다’라고 정리해 주었다. 아직까지 어떤 ‘정치원론’에서도 보지 못한 정치인에 대한 설명으로, 정치인들의 심리변화를 분석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산책하는 김정은을 보면서 잔인하게 살해된 장성택과 공항에서 독살된 김정남을 떠올리는 사람들을 별로 보지 못했다. 언론은 회담 전까지 김정은을 비정상적인 폭군으로 기술하였는데 회담 후부터 소통 가능한 정치인으로 기술하고 있다. 일찍이 마키아벨리가 윤리의 영역에서 정치를 분리시켰지만, 정치인의 평가기준과 어떤 성향의 사람이 정치를 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악행인 것도 정치적 차원에서는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인데, 정치의 속성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경우 정치인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을 경우 본인도 가정도 그리고 공동체 모두가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일반인과 정치인으로서 요구되는 행위의 간극은 정치인이 도약하는 단계에서 커지는 경향이 있다. 껍질을 벗을 때마다 고통이 따른다. 주변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하고, 그 과정에서 매서운 비난과 도전을 받아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정치인들이 과거의 동지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스스로 배신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적폐청산이 진행되는 현 정권에서 ‘의리’는 ‘정의’와 공존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치권에서 의리를 논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모순이라는 것인데, 이는 정치의 시작과 함께 작동해 왔다. 다만 의식 속에 묻혀 있다가 필요한 시기가 되면 한 번씩 꺼내져 정치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사용될 뿐이다. ‘읍참마속’으로 행해지면 집단 내 누구도 배신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가족 공동체의 이해와 정치적 공동체의 이익이 충돌할 때 정치인은 정치적 공동체의 이익을 택한다. 삼국지 이야기를 하나 더 하면, 조조와의 싸움에서 위기에 몰렸을 때 조자룡이 유비의 장남 유선을 구해 가슴에 안고 돌아 왔다. 그런데 유비가 넘겨받은 아들을 땅바닥에 던지며 ‘이 못난 놈 때문에 하마터면 자룡 자내를 잃을 뻔하지 않았나’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조자룡은 감동해서 유비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유비의 부인이 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해야했을까? 오늘날 한국정치에서 정치인의 가족은 이러한 상황에 상시적으로 노출되고 상시적으로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래서 정치인은 집에서도 밖에 나가서도 죄인처럼 산다. 정치인들이 ‘갑’처럼 보이나 실제로 대다수 정치인들은 ‘을’로 산다. 정치인에게 은퇴 후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많은 정치인들이 가족을 위해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결혼식장에서 정치인의 아내가 딸에게 하던 말이 생각난다. “애야, 엄마처럼 살지 마라.” 정치인의 아내로 살아오면서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어디 정치인의 아내뿐이겠는가. 지난 70년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동적 과정에서 한국의 많은 아내와 가족들이 희생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어떤 정치인은 ‘저녁이 있는 삶’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사회가 안정화되면 일반인들은 사회 공동체의 이해보다는 가족 공동체의 이해를 더 중시하는 직업을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많은 직업에서 근무환경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환경은 변화의 맨 마지막이 될 것이다. 정치 지망생이 최고의 결혼상대로 정치적 목표를 같이하는 동지적 동반자를 찾는 이유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출사표를 내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세계가 선거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치세계에서 어떤 것이 악화이고 어떤 것이 양화인지는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 정치학 박사
-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 행정자치부 중앙 자문위원
-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
- 경희 대학교 객원교수
- 고려 대학교 연구교수
- 국민 대학교 정치대학원 겸임교수(현)
-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현)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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