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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正道경영과 재벌
구본무 LG회장이 던진 교훈 과제
기업풍토 취약…지배·경영구조 쇄신을
투명 전문화로 국제경쟁 혈맥 뚫어야
2018년 05월 26일 13:15:48 이병도 주필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이병도 주필)

지난 40여 년간 이른바 ‘정도(正道) 경영’을 실천하며 ‘존경받는 기업인’의 표상이 돼 온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떠났다. 대한민국 경제계의 큰 별이 떨어졌다.

현실적으로 그가 한국재계에 던진 시사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최근 대한항공 사태에서 드러났듯 재벌 일가의 ‘오너경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팽배한 가운데 구 회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사회적 책임)’의 귀감이라 할 만 했다.

요즘처럼 반기업 정서가 판을 치고 대기업과 재벌들에 대한 경원이 심한 시대에 LG만큼 ‘오너 리스크’가 적은 기업도 드물다. 겸손한 자세와 뛰어난 자질로 그룹을 이끈 경영인 ‘구본무’가 함축하는 바는 실로 크다.

시중의 화제가 단연 선거와 재벌개혁이 되고 있는 시기이기에, 재벌의 도덕성과 대기업의 역할에 대한 처방으로서의 의미가 새롭게 대두할 수밖에 없다. 한국 4대 재벌 가운데 처음으로 4세 경영에 들어가는 LG그룹 자체로서도 앞으로 향방의 디딤돌을 다시 놓아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재벌 명암 속 성공한 경영인

한국사회에서 재벌을 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재벌은 6·25 이후 산업 불모지였던 한국을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시킨 주역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권력과의 검은 거래, 편법 경영승계, 일감몰아주기와 사익편취, 황제경영, 협력업체 단가 후려치기, 비상식적인 갑질이나 일탈행위 등 온갖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부정적 시각이 더 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재벌 3세, 4세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선진국처럼 ‘소유·경영의 분리’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도 오래다.

좋은 경영은 조직문화를 바꾸고 기업을 성장하게 하는 동력(動力)이 된다. LG그룹은 형제간 재산 다툼이나 정경 유착 스캔들에 거의 연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표상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창업주 때부터 ‘인화 경영’을 사시로 내세운 LG는 단 한 차례의 불협화음 없이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순조로운 경영 승계를 해온 것이다.

더욱이 경영인 구본무의 ‘정도경영’은 실질적 치적과 기업문화의 각도에서 그 상징성이 실로 크다.

1995년 구자경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LG그룹 경영을 책임진 구 회장은 ‘변화와 도전, 정도경영’을 통해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성공적 CEO로 평가된다. 그의 취임 이후 LG는 말 그대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면서도, 도덕과 윤리경영의 측면에서도 고도의 성숙성을 축적시키는 데 성공했다. 한국 재벌사(財閥史)의 전례 없는 양면적 성공기록이다.

우선, 실적 면에서 그는 LG를 세계적 회사로 키워내 한국 경제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일등주의, 초우량 LG, 기술혁신 등을 최고의 경영 이념으로 삼으며 23년간 그룹을 이끌었다. ‘럭키금성’이었던 그룹명을 LG로 바꾸고 글로벌 무대로 진출, 취임 당시 30조원대였던 매출을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해외 매출은 10조원에서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성장시킨 국제적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2003년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지주회사체제로 전환,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배구조를 투명화한 것도 그의 혁신적 결단으로 꼽힌다. 새로운 업종분야의 개발로 ‘미래 먹거리’를 탄탄히 만들어낸 것 역시 구 회장의 뛰어난 안목이 빚어낸 결과다. 

도덕성 탁월

무엇보다 가장 뛰어난 것은 기업문화 측면에서 그의 탁월한 ‘도덕경영’이다. ‘정도(正道)경영’도 사실상 이 점이 핵심을 이룬다. 경영활동에 부당한 방법이나 편법을 동원하지 않고 윤리경영에 충실한다는 것으로 구 회장이 2005년 선포한 ‘LG 웨이(WAY)’의 대표 가치다. 이를 통한 확고한 신뢰의 확보로 탁월한 경영실적을 끌어냈다는 평가다.

꾸준한 사회공헌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 일환으로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하자’는 취지로 2015년 LG의인상을 제정했다. 지난해에는 그 일환으로 철원 총기 사고로 순직한 병사의 부모에게 사재 1억원의 위로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도덕 경영’은 그가 그룹을 이끌면서 이렇다 할 스캔들에 휘말린 적이 없었던 데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다른 국내 대기업들은 크고 작은 오너리스크로 흔들렸지만 LG그룹은 예외였다. 취임 초부터 LG공정문화추진위원회를 구성, 공정한 거래문화를 정착시키려 노력했다. LG가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것도 그 방책의 하나였다.

구 회장 ‘정도경영’의 실적은 역시 그룹사(史)가 증언한다. LG그룹에선 지난 1999년 LIG그룹을 시작으로 2003년 LS그룹, 2005년 GS그룹이 떨어져나갔지만 잡음이나 분쟁이 없었다. 특히 구 씨와 허 씨의 57년간 동업관계를 청산한 GS그룹의 분리는 재계에서 ‘아름다운 이별’로까지 불리며 한국 경제사에서 신선한 동업스토리로 남을 정도다. 형제 간이나 사촌 간 경영권 분쟁이나 오너 일가의 전근대적 갑질 횡포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재벌들과 LG가 뚜렷하게 대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 LG는 에너지 건설 유통 보험 등 핵심 사업을 떼 주고도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 글로벌 그룹으로서의 기반과 체질을 탄탄하게 다졌다.

그의 ‘정도경영’, ‘도덕경영’은 사람 중심의 경영, ‘인화(人和)’를 최고의 가치로 강조한, 재벌 총수 같지 않은 소탈한 모습에서 시작됐다.

육군 현역으로 군대에 가고, 그룹 계열사 과장으로 입사해 실무부터 익히기 시작한 것도 그 시절 다른 재벌 후계자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주말에 장례식장을 비서 없이 혼자 조문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고, 공식 행사나 출장을 갈 때도 수행원 한 명만 단출하게 대동하곤 했다. 자녀의 혼례는 ‘작은 결혼식’으로 치렀다.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도 그랬다. 연명 치료를 원치 않았고, 장례도 소박하게 이뤄지게 했다.

LG가 ‘인화’의 문화를 오랜 전통으로 보존하고 있는 것도 구 회장이 직원들을 대하는 배려와 존중의 자세가 큰 바탕이 됐다.

‘초 일류주의’ 공격경영

LG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 회장은 1995년 2월 50세에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외환위기 등의 파고를 넘어 전자·화학·통신 3개 핵심 사업군을 중심으로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켰다.

그룹 이름을 글로벌 감각에 맞게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꾸고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신규 사업은 시작하면 반드시 1등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세계 최고를 향한 의욕은 남달랐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가 “성공에 대한 확신과 열정을 보여준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화학, 디스플레이, 전자 계열사들을 세계 최정상급 회사로 끌어올렸다. 재임 기간 LG디스플레이의 대형 올레드(OLED),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은 글로벌 1등이다. 자동차 전장부품,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에너지, 바이오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차세대 성장 기반도 닦았다.

GS·LS·LIG·LF 등을 계열 분리하고도 이런 성과를 일궈냈으니 재계 안팎에서 대단하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이는 5·10년 후를 내다보며 과감하게 일을 추진하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끝까지 도전하는 특유의 ‘끈기와 결단’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경영 스타일은 수많은 경영기법이 한때 유행처럼 반짝하다 사라지는 풍토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며, 지금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움츠러들지 않고 투자와 인력양성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공격경영’이 거둔 값진 성과라 할 수 있다.

4세 경영 과제

이제, 그의 별세로 LG의 ‘4세 경영’ 체제가 막이 올랐다.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후계자로 지명된 외아들 구광모(40) LG전자 상무가 앞으로 전문경영인들의 도움을 받아 LG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동생의 아들로 2004년 양자로 입양된 구 상무가 경영권을 넘겨받아 창업자인 구인회, 2세 구자경, 3세 구본무에 이어 4세 경영체제로 들어선 것이다. 한국 4대 재벌(삼성·현대차·LG·SK) 가운데 4세 경영은 LG가 처음이다.

LG가(家)는 장자 승계가 시작되면 선대의 형제는 모두 경영에서 물러난다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형제간 재산권 다툼이나 경영권 분쟁이 한 번도 없었던 그룹인 만큼 승계 작업은 무난하게 진행될 것이다. 인재를 아끼고 연구개발(R&D)과 혁신을 강조했던 고인의 리더십과 ‘LG 웨이(Way)’를 계승한다면 더 큰 기업으로 거듭날 수도 있을 것이다.

LG의 4세 경영 이관에 있어서도 1차적 핵심은 역시 도덕성 부문이 될 수 있다. 구 회장이 보유한 지분이 구 상무에게 승계되면 상속세만도 1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업계는 추산한다. 상속 과정의 꼼수와 탈법으로 국민 신뢰를 저버린 재벌 그룹이 그동안 어디였는지는 일일이 거론할 필요도 없다. 어느 재벌도 보여 주지 못한 투명성과 도덕성을 이번 승계 과정에서도 LG그룹이 잘 확인시켜 주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LG그룹에 재활력을 불어넣는 일이 급하다. 한때 주력 계열사인 LG전자는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언제까지 반도체 사업을 강제로 빼앗긴 핑계를 댈 순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는 도전정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외부 경영환경도 거칠다. 그렇지 않아도 문재인 정부는 재벌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상법도 바꾸고 공정거래법도 뜯어고치려 한다. 검찰은 LG그룹 총수 일가의 탈세 의혹도 파헤치고 있는 상황이다. LG ‘4세 경영’이 선대의 유훈을 어느 정도 받들며 역경을 극복, 순항해 나갈 수 있을지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지난 40여 년간 이른바 ‘정도(正道) 경영’을 실천하며 ‘존경받는 기업인’의 표상이 돼 온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떠났다. 대한민국 경제계의 큰 별이 떨어졌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재벌 지배구조 현실

그렇지만, 역시 구 회장이 남기고 떠난 ‘정도경영’의 메시지가 재계에 던진 교훈은 막중하다.

현재는 개혁 대상으로서 재벌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느 때보다 냉랭한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국민들은 근간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에 불려나온 대기업 총수들을 보면서 한때 국가경제를 견인했던 이들에 대한 자부심이 자괴감으로 바뀌었다.

폐습은 여전했다. 재벌들에서는 아직도 기업보다 총수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황제경영이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편법으로 경영권을 세습하려는 경향이 계속돼 왔다. 또 ‘검은 돈’의 부패관행도 근절되지 못하고 있으며, 경비 절감이란 명분 아래 무리한 납품단가 인하로 중소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 일도 있었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역시 대기업들에 일단의 책임이 있다. 재계 스스로 얼마나 개혁과 변신에 노력했는지 의문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제투명성위원회가 발표한 국가 부패지수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96년 27위, 99년 50위, 2001년 42위에 이어, 지난해의 경우 OECD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 부패 불감증 문화가 아직도 폭넓게 관행화돼 있는 한 선진국으로의 진입은 요원하다. 그 중에서도 재벌과 대기업의 경제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여전히 시대정신이 되고 있을 정도다.

검증은 곳곳에서 이뤄진다. 지난해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20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66.4%가 재벌 중심 경제체제가 나라 경제와 개인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해 재벌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반기업 정서가 심한 것은 대기업들의 책임이다. 정경유착과 분식회계, 족벌경영 등은 지금까지 많은 기업이 저질러온 허물이다. 정권으로부터 특혜를 누리면서 변칙적인 경영권 세습이나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부를 축적해온 영향이 크다.

최근의 대표적 사례로는, 온갖 갑질 행태에다 구차한 탈법 의혹으로 망가진 대한항공이 오버랩되는 것이 어쩔 수 없다. 내부 직원들의 옹호는커녕 퇴진 압박을 받는 총수 일가를 보면 경영인의 품위와 사회적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017년 대선 전에 쓴 ‘재벌개혁의 전략과 과제’란 보고서에서 “한마디로 재벌 체제는 총체적 난국이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재벌 3세는 도전정신을 상실했다”고 지적한 것도 이를 거듭 상기시킨다.

사실, 좋은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정답은 없다. 총수 일가가 전면에서 그룹 경영을 이끌어 가는 ‘오너경영’에도 적잖은 장점이 있다. 한국이 단기간에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는 원동력이 오너경영이었다고 주장하는 경제 전문가들도 많다. 오너경영은 총수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장기적 안목에서 기업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 데다, 신성장 분야에 대한 신속하고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영권의 박탈 가능성이 거의 없고 마땅한 견제 장치도 없어 경영 횡포로 흐를 수 있다. 구조적으로 독단적이고 불투명한 의사결정, 사익추구, 불법·탈법 행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선의건 고의건 오너가 잘못 판단했을 때 기업에 미칠 리스크가 너무 큰 게 사실이다. 우리는 그 폐해를 대한항공 사례에서도 충분히 봤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국내 기업들은 주력 산업에선 후발국에 밀리고 신성장동력 산업은 선진국에 선점당하면서 샌드위치 신세에 놓여 있다. 유엔의 세관통계 데이터베이스(컴트레이드)에 따르면 반도체와 자동차 등 10대 수출품목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10년 9.0%에서 2012년 8.1%, 2014년 8.0%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미래 성장을 좌우하는 4차 산업혁명 적응도도 낮다. 미국 5위, 일본 12위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25위다.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언제 간판을 내리게 될지 모른다. 노키아와 소니, 모토로라의 몰락이 이를 잘 말해준다.

현대차 사례 위험지수

최근의 현대차 사례는 한국 기업들이 처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정부의 거센 지배구조 개선 압력과 단기수익을 노린 헤지펀드의 공세 사이에 끼여 오도가도 못 하는 신세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이 무기한 보류된 것도 이때문이다. 미국의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격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동안 추진해왔던 지배구조개편안을 주주총회 1주일가량 앞두고 철회한 것이다.

아직도 삼성그룹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한 회사로 합치면서 합병비율을 불공정하게 산정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현대차그룹이 똑같은 의혹 속으로 걸어 들어간 형국이다. 이는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투명성과 공정성의 문제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외국의 헤지펀드가 한국의 간판기업인 현대차그룹의 목을 쥐고 흔든 큰 사건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한국의 대형 기업들이 외국계 헤지펀드의 쉬운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들은 허점이 많다는 것을 이번에 보여줬고, 헤지펀드들은 공격하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끼게 됐다. 제2, 제3의 엘리엇이 나타날 수 있고, 이들에게 당하는 제2, 제3의 현대차그룹이 또 나올 가능성도 크다.

기업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선진국에선 기업이 처한 환경과 경쟁여건 등에 따라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주주들이 기업 주식을 계속 보유한다면 그 자체로 좋은 지배구조로 ‘시장’이 평가한다. 반면 한국에선 정부가 앞장서 ‘지배구조에 정답이 있다’며 방향과 속도에까지 압력을 넣는다. 경영권 방어수단은 다 막고 손발 묶은 채 싸우라고만 한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맞서야 할 간판 기업들이 정부의 지배구조 압박 속에서 온 역량을 투입해야 하는 게 정상일 수는 없다.

현대차그룹 뿐 아니라 한국 대기업들이 진정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그 방법은 합병 비율 등에서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잘못된 타성

과거의 공과는 오늘에도 새삼 교훈과 과제를 던진다. 재벌 그룹이 그동안 국가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공로를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식회계를 비롯한 각종 비리와 정경유착 등 ‘추한 기억’ 또한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선거를 앞두거나 대형 비자금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불법 자금을 조성하거나 제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되풀이해 왔다. 그러나 끝내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최근까지도 불법자금을 활용해온 게 사실이다.

지난 2006년 참여연대의 한 공개기록은 이를 웅변한다. 재벌 총수 일가의 편법 주식거래를 통한 자산증식 내용은 공분을 얻을 만했다. 38개 재벌그룹의 계열사 250곳 중 64곳에서 전체 거래의 28%인 70건이나 ‘문제성 거래’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성 거래는 삼성, 현대차, LG(분사 이전), SK 등 4대 재벌그룹을 필두로 중·하위 재벌그룹에서도 광범위하게 자행됐다. 주주의 이익이나 기업가치 제고는 뒷전이고, 총수 일가의 사익 채우기에 혈안이 됐었다는 지적이다. 재벌개혁에 대한 국민적 여망을 확연히 저버렸던 것이다.

재벌 총수 일가의 문제성 거래는 부의 편법 세습이 종착점이다. 이들은 사업의 기회를 빼앗아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회사 기회 편취, 발주 물량 등 몰아주기식의 지원성 거래, 계열사 보유주식을 총수 일가에 헐값에 넘기는 부당주식거래 등 온갖 수법을 다 썼다. 물론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했다. 문제는 부의 편법 세습과정이 재벌그룹 전반의 불문율로 고착되고 있었다는 사실과 대기업들이 총수 일가의 사금고화로 치닫고 있다는 측면이었다.

재벌史 폐해 실태 

현대사에서 재벌의 파행이 남긴 폐해는 실로 컸다. 분식회계로 회삿돈을 빼돌려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심지어 생활비와 유흥 등 호화사치를 하는 파렴치 행위가 속출했다. 그런 행위가 국민들의 반기업정서 확산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의 직접적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 파행은 지난 1991년 10월 ‘한보그룹 사태’ 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한보그룹은 집권세력의 가장 강력한 비호를 받는 집단이었다. 정태수씨가 이끄는 한보라는 재벌이 국민을 우롱하면서 분통을 터뜨리게 하는 방법에는 끝이 없었다. 정권의 존립을 뒤흔든 ‘수서’ 추문의 주인공인 정태수 씨, 천문학적인 은행빚을 쓰고 있는 한보의 실질적 소유주 정 씨가 사건의 와중에도 35억여원짜리 집을 또 짓고 있다는 당시 보도는 국민을 울분으로 몰아넣었다.

대물림 경영이 토착화된 우리 현실에서 형제끼리 진흙탕 싸움을 벌인 재벌기업 때문에 우리 사회가 겪었던 ‘재벌 환멸’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15년 창업주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휘하 신동주·동빈 형제의 경영권 다툼, ‘롯데사태’를 지켜본 국민들은 실망감을 넘어 분노까지 표출해야 했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선 롯데 제품 불매운동까지 거론될 정도였다. 오너 일가의 잘못된 행동이 기업 이미지와 매출에 악영향을 주는 ‘오너 리스크’로 까지 연결됐다.

이 사건은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공론화시켰다. 신 총괄회장 일가는 국내 계열사 지분이 전체의 2.41%에 불과했지만 얽히고설킨 순환출자로 80여개 계열사를 지배했다. 이처럼 지배구조가 불투명해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이 일어난 것이었다. 황제경영·일본기업 비판에다 정부 특혜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반(反)롯데 정서가 확산되고, 롯데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자 정부가 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금융감독원 등 관련 기관을 총동원해 롯데그룹 지배구조와 거래관행을 조사한 것도 부담이 됐다.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사면초가였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당시 롯데 사태는 대표적으로 보여줬다.

2003년 2월 재계 서열 3위인 SK그룹 총수의 구속도 관행처럼 되다시피 했던 재벌 총수의 부당내부거래 등 불투명한 기업 활동을 여실히 드러냈다. 당시 SK㈜ 최태원 회장은 그룹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이 보유한 주식 가격 부풀리기를 비롯, 부당내부거래 지시 등 각종 탈법을 저지른 혐의를 받았다. 멀쩡한 계열사들은 총수의 지시 한마디에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이러한 탈법 행위를 통해 총수의 경영권은 강화됐을지 모르지만, ‘작전’에 동원된 계열사의 주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손실을 감수해야만 했다.

2006년 11월, 종업원 3만6000여명에 매출 11조원을 기록한 재계 서열 10위 안팎의 거대기업이었던 남중수 KT 전 사장의 구속도 그러했다. ‘투명 정도 경영’을 외치며 갖가지 경영자상을 휩쓴 그가 뒤에서는 ‘검은 경영’을 했다는 데 실망치 않을 수 없었다. 칭송받던 기업인의 몰락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그때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다 적발된 기업은 입찰에서도 제외되는 등 최근 선진국의 기업윤리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잊을만하면 터지는 이 같은 한국 대기업 오너들의 비리는 기업윤리 제도의 취지를 무색케 할 정도였다.

지배구조 개선책

따라서 아무리 재벌가의 후계자라도 경영권을 넘겨받기 전에는 능력과 자질을 검증받아야 한다. 기업 총수에 오른 오너가 경영에 실패했을 때 그 피해는 해당 기업을 넘어 국민에게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오너의 권한과 책임은 무한대에 가깝다. 많지 않은 지분으로 사실상 그룹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만큼 남다른 윤리의식과 도덕성으로 무장해야 함이 필수다. 오너의 잘못된 판단과 비윤리적 처신으로 종업원들의 실직은 물론 국가경제까지 휘청거리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오너경영과 전문경영 체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마땅하다.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한 치의 탈법도 없어야 하며, 민주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룹의 신성장사업 결정 등에서 오너의 역할은 실로 막중하다. 3, 4세 경영체제로 넘어오면서 오너의 경영 능력에 따라 기업의 부침이 심하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 이후 대기업들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등 잇따른 친노동 정책에 보조를 맞추면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새로운 경영 환경에 직면해 있다.

중요한 것은 기업 운영이든, 지배구조 개편이든 공정성을 철저히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당연한 이 가치가 최대의 경영권 방어 무기다. 정부도 재벌그룹 지배구조개편 추진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 짧은 기간에 성과를 내는데 몰입한 나머지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데만 급급해서는 재벌개혁을 제대로 이뤄낼 수 없다.

재계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은 이제 경영의 중요한 핵심 요소가 됐다. 기업의 첫 번째 존재목적은 이윤추구이지만, 사회공헌활동을 소홀히 해서는 지속성장이 불가능하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일수록 발전 속도가 빠르다는 실증적 연구보고서는 수도 없이 많다. CSR는 사회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기업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재계의 적극적인 CSR 활동은 기업 이미지를 개선시킬 수 있어 반기업 정서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포스코 사례

무엇보다 정치바람으로부터의 독립은 관건이다. 최근 포스코의 화려한 변신과 귀환은 그 성공사례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그간 포스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논란에 휘둘렸고 임기 중에 뜬금없는 CEO교체가 이뤄지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이전의 방만한 확장경영도 그로 인한 부작용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를 제대로 극복, 눈부신 실적으로 돌아왔다.

포스코는 지난 24일 콘퍼런스 콜로 진행된 기업설명회에서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매출액 60조6551억원, 영업이익 4조6218억원, 순이익 2조9735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대비 매출액은 14.3%, 영업이익은 62.5% 늘었다. 순이익은 전년보다 183.7% 급증했다. 영업이익은 6년 만에 최대치고 매출액은 3년 만에 60조원대로의 복귀다. 권오준 회장의 리더십에 힘입은 바 크다. 포스코에서 잔뼈가 굵은 공학박사 출신의 권 회장은 2014년 취임 이후 4년간 150건에 달하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국내외 계열사를 80여개나 줄였다.

지난해 5000억원대 영업손실을 냈던 포스코건설도 흑자 전환(3004억원)에 성공했다. 특히 비철강부문 영업이익이 2016년 100억원대에서 1조927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에너지, 정보통신기술(ICT) 등 여러 부문에서 고르게 실적이 개선된 결과다. 해외철강 부문 합산 영업이익도 4763억원으로 전년보다 3배 이상 늘어났다.

정도 경영, 안정 속에 변화를 추구한 권 회장의 리더십은 바람직한 노사관계로 이어졌고, 하청업체와의 상생 동반성장의 결과로도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형 성장의 모델로도 꼽힐 만하다.

윤리·투명경영이 열쇠

이 같은 ‘포스코 성공’에서도 잘 나타나듯, 지금 우리 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기업구조개편과 개혁이며 기술혁신과 인력개발을 위한 노력이다.

전문경영인을 과감히 발탁해서 기업운영의 합리화·능률화를 기하고 중간 관리층의 전문성과 능력위주의 인사혁신, 그리고 생산직 근로자를 노사동반자로 인식해 근면성과 책임감 있는 노동윤리를 정립하는 일 등이 가시화되어야 한다.

실천력을 높이기 위해선 외국처럼 기업 내부고발제를 도입하는 등 윤리강령이 강제력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정부차원에서도 미국처럼 기업의 윤리경영 정도를 평가하는 제도를 만들고, 우수기업에 대해선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 봄직하다.

기업입장에선 윤리경영이 비록 단기적으론 기업의 이윤에 저해요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론 기업의 신뢰를 향상시키고 장기적인 이윤창출로 이어진다는 점을 직시, 윤리경영의 실천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제 LG 구 회장이 남긴 명실상부한 ‘정도 경영’의 업적을 교훈으로 삼아 대한민국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게 경제계와 정부가 할 일이다. 재계는 투명경영과 건실한 지배구조 구축, 진정한 주주 중심 경영의 필요성을 더욱 깨달아야 할 것이며, 정부는 이른바 ‘재벌 개혁’이 기업 활동을 옥죄거나 대중심리에 편승한 대기업 때리기로 흘러선 곤란함을 주지해야 한다.

재벌 개혁의 관건은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고 투명·정도 경영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면 된다. 정부가 할 일은 공정한 시장 룰을 만들고 반칙하는 기업은 엄벌에 처하면 될 것이다. 정확한 실천이 중요하다.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그 위기 극복의 최전방에 기업들이 서야 한다. 신산업에 대한 선제적 투자와 고용 창출로 막혀 있는 경제 혈관을 뚫어주는 게 기업이 할 일이다. 관행이라는 미명 하에 행해졌던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투명 경영과 정도 경영으로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해야 마땅하다.

결국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일이 중요하다. 몇몇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재벌은 거의 대부분이 창업자의 2세나 3세다. 선대 창업자의 초심으로 돌아가 정도경영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투명경영에 진력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의 기초체력이 강해지고 균형도 잡힌다. 재벌 개혁의 자정 노력이 그만큼 요구된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만이 지속적인 발전을 담보받을 수 있는 시대이다. 정도경영을 하지 않아 국민의 사랑을 잃은 기업들은 자연 도태될 수밖에 없다. 기업이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때 비로소 기업 종사자들이 더욱 열심히 일하고, 그래야만 국부가 확대되고 국가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

최근 격화하고 있는 노사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침체된 한국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도 기업의 윤리경영과 투명경영은 매우 절실하다.

재벌 총수도 지배권 강화보다는 ‘선량한 관리자’로서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해달라는 것이 LG 구회장과 이 시대의 주문일 것이다.

정도경영과 경영혁신에 성공한 기업들에게는 불황이 적용되지 않음을 현대사는 보여준다. 정치논리에 경제문제가 왜곡되지 않고, 올바른 기업가 정신만 지속해 나간다면 아무리 극심한 불황이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재벌개혁에 관한 법과 제도는 이미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 셈이다. 이제 문제는 진정한 자각과 실행 뿐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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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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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철 2018-05-26 17:04:56

    돈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 무었인지?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겠지요. 부의 승계 자식들이 ! 공수래 공수거 저승갈때는 차비 안받아요. 스태이크 먹다가 목에걸리는 것보다. 보리밥에 나물먹는게. 행복해요,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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